언제부터인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아마 여러가지 작은 이벤트들로 아 나이를 먹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겠지만... 오늘 아침.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잠깐 사이, 옆의 거울 속에 비친, 내 뺨에 '아직도' 남아 있는 베개자국 만큼 절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겠나 싶다. 이제 정말 피부에 탄력성이라는 건 남아 나지 않은 건가.

 

이눔의 탄력성을 회복하려면 우째야 하나...를 잠시 생각했는데, 흠. 방법이 그닥 없구나 에잇. 그만 생각하자. 그러고는 그냥 버스에 올라타 자버렸다. 잠도... 예전엔 좀 무리해도 5시간 정도 자면 거뜬 해졌는데 요즘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기 일쑤이고 다음날 출근하는 버스에서도 머리를 창에 부딪히며 자주어야 하루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 이것도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겠지.

 

어제 그제 회사에서 지독하게 굴었다. 너무나 화가 났고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그래서 휴가 다녀온 가뿐한 마음은 바로 날려버려졌고. 그리고 어제 마무리가 되었으나 그런 마무리는 진정 상처다. 도대체 사람들 마음 속에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인 거냐. 이게 말이 되냐. 를 두고 어제 그제 내내 속이 아플 정도로 배신감과 실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피부에는 탄력성이 떨어지고 자도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것도 맞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내가 이제 '연륜'이라는 게 쌓였구나 를 느끼는 가장 정점은 오늘 아침의 기분 같은 거다. 어제 그제 그렇게 화를 내고 버럭 거렸지만, 오늘 아침 출근하는 마음은... 그래 세상 별 거 있니. 그러려니 하자. 이래 봐야 나만 손해지. 그냥 차분하게 지내자구. 라는 자기위로가 담뿍 먹힌 상태라는 거다.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술 퍼먹고 몇날 며칠을 뿌루퉁하게 지내고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도 풀리지 않는 피부와 피곤처럼, 에너지가 이젠 모자라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낮아진 에너지 준위가 내 일상을 평화롭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냥 버티며 지내보자 라는 마음도 먹게 해주고. 나이 먹는 게 늘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껴본다. 물론 나이 먹는 건 기본적으로는 쓸쓸하고 슬픈 일인 듯 하지만.

 

커피 한잔에 오늘을 시작해본다. 그래. 이런 시기에는 그저 자기안에 침잠하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고 후일을 도모하는 게 제일이다. 날뛰고 해봐야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 때는 몸을 내맡기고 마음의 열을 한껏 내려 지내는 것이 방법이고 말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이거다. 경주 갈 때 가볍게 읽으려고 들고 갔다가 없는 시간에 <Axt> 읽느라 펴보지도 못하고 고이 도로 가지고 올라왔었던 책이다. 이제 읽어야지 하고 펴들었던 게 일요일 밤이었는데, 어제 그제 펄펄 뛰느라 마음이 진정이 안되어 아직 몇 장 못 읽었다. 이번 주말 되기 전에 쭈욱 한번 읽어봐야겠다.

 

 

 

 

 

 

 

 

 

 

오늘자 네이버 이영미 칼럼에 야구인 조계현 KIA 코치의 이야기가 실렸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09

 

많은 이야기들이 실렸지만 말미에 중국 도연명 시인의 글을 인용한 게 마음에 와닿는다.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다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

 

고마운 글귀다. 마음에 새겨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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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8-2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귀거래사를 외우려고 낑낑거리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런 구절도 있었던가 싶습니다. ㅎㅎㅎ

비연 2016-08-25 10:59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첨 보는...^^;;;;; 근데 상황이 상황이어서 그런지 마음에 콕 박히네요~

cyrus 2016-08-2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면 새벽 일찍 눈이 떠집니다. 일찍 자도 일찍 일어나는 패턴에 나이 먹어서 기력이 떨어진 몸이 쉽게 피곤해지고... ㅠㅠ

비연 2016-08-25 12:53   좋아요 0 | URL
흠... 전 일찍 자도 늦게 일어나는...ㅜ 기력이 딸려 몸이 침대에서 안 떨어진다는...
근데 cyrus님은 저보다는 한참 젊으실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카스피 2016-08-26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새벽 3시쯤 자서 아침 7시 반에 일어나는데 역시나 오전에는 졸립더군요^^;;;

비연 2016-08-29 08:15   좋아요 0 | URL
새벽 3시! 우왕... 전 11시쯤부터 꾸벅꾸벅이에요. 야행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드니 이젠 야행성이고 뭐고 없이 그냥 졸려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