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 네스뵈를 참말로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쓰는 해리 홀레 시리즈의 해리 홀레도 좋아한다. 그래서 관련 책이 나오는 족족, 바로바로 사서 집에 일단 쟁여 두어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인데 어쨌거나 누구에게나 그런 작가, 그런 책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해리 홀레 시리즈를 보면 볼수록 자꾸 괴로와져서 야단났다. 이번 작품도 그렇다. 제목부터가 <바퀴벌레>. 선듯 손이 안 가는 제목 아닌가 말이다. 이 책을 만약 서점에서 샀다면 제목을 누가 볼까봐 가렸지 않을까 라고 문득 생각해 보았다. 물론, 나는 알라딘에서 구매했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서도.

 

휴가의 첫날. 이 책을 벗한다는 즐거움에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었는데 말이다. 아. 읽는 동안 내내 괴로왔다. 방콕이란 분위기가 주는 압박감도 있었고. 여행지로서의 방콕은 매력만점의 도시임에 반해, 뭔가 사건사고와 엮이면 그지없이 어둡고 끔찍해진다. 다양한 인간군상. 다양한 죽음의 방법. 그에 따르는 다양한 범죄의 양태. 다양한 타락의 모습... 역시나 이 책에서도 그랬다.

 

해리 홀레의 여동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낯모르는 인간에게 성폭행을 당해야 했고, 어쩌다 날아간 방콕에서도 맞부딪히는 건 소아성애... 으. 글자를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그리고 바퀴벌레에 대한 비유들. 읽는데 밥맛이 막 떨어지려고 하는 걸 간신히...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 책 읽으면서 밥 몇 끼는 굶어야 했다. 꾸웩.

 

그리고 해리 홀레는 역시나 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는 사건을 확대 재생산한 끝에 치열한 몸싸움, 아니 몸싸움이 아니라 상대에게 찔리고 베이고 잘리고 눌리고... 하는 몸에 대한 강력한 학대를 당한 이후에야 상대를 '무찌른다'. 아무리 봐도 해리 홀레가 사건을 하나씩 거쳐갈 때마다 그 몸이 남아난 게 심히 의아할 정도이다. 인간의 몸이 그렇게 당하고도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머리도 여러번 세게 얻어맞거나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높은 곳에서 몸일 떨어지는 것은 부지기수이고, 칼로 쑤욱 찔리는 건 더 흔해빠진 일인지라, 해리 홀레의 몸은 아마 넝마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짐작해본다. 이 사람, 좀비? 프랑켄슈타인? 뭐 이런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

 

게다가 해리 홀레가 가까이 하거나 해리 홀레에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 - 특히 여성 - 은 언제나 거의 대부분 책이 끝나기 전에 하늘나라로 임하신다. 그러니까 해리 홀레가 지나가는 길은 시체의 더미가 깔리게 되고 그리고 나서 범인이라고 잡으면 이 넘을 아주 요절을 내 버리는 게 또 홀레 아저씨다 이거다. 괜찮은 거니, 해리 홀레? ㅜㅜ

 

그래서 이 책 <바퀴벌레>를 다 읽기까지 상당히 괴로왔음을 고백한다. 전혀 즐겁지 않았고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그냥 좀 메슥거렸고 많이 불쾌했다. 아직 시리즈는 계속 되고 있고 <바퀴벌레>는 심지어 해리 홀레 시리즈의 두번째인가 작품이다. 이미 진도가 많이 나간 시리즈는, 내용은 갈수록 잔인해지고 해리 홀레는 점점 마초스러워지고 살덩이와 핏덩이가 난무하는 장면이 더욱 흔해지고 있다. 이젠 겁이 날 정도.

 

요 네스뵈님. 이제 해리 홀레 그만 괴롭히면 안될까요. 꽃길은 아니라도 그냥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게는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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