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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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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뜻 고를 땐 두 가지의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내가 예전에 감명깊게 보았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실제 인물이 이 책의 저자라는 점이 신기했고 또 하나는 그냥 그렇게 조금은 특이한 인생을 산 사람이구나 라고만 알았던 그녀가 어느날 알고 보니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작가였다는 사실에 놀라서였다. 더더군다나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영화의 원작이 이 소설집 중의 하나로 버젓이 담겨 있다는 것도 흥미를 끌었고.

읽고 나니, 이건 흥미에만 그칠 건 아니구나 싶었다. 덴마크 태생인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참 힘들지만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았고 작가로서의 데뷔도 중년이 넘어선 나이에 이루어졌음에도 그녀의 소설에 담긴 내용들은 하나같이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쉬운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우화적인 재미와 신비로움이 배여 있고 위트와 유머가 존재하며 지적인 깊이도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나까지도 어느 신화 속이나 저만치 떨어진 역사 속에 자리한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녀의 이야기는 매우 능숙했고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었으며 인생을 꿰뚫는 철학도 엿보였다.

소설집의 원제는 'Anecdotes of Destiny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로서 총 다섯개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다. 많이 알려진 '바베트의 만찬'과 '불멸의 이야기', '폭풍우', '진주조개잡이', '반지'가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불멸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세상과 격리되어 돈만 추구하는 한 노인이 사람들에게 구전되는 이야기를 현실화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는 줄거리인데, 인간 군상들 가운데 얽힌 운명의 끈과 이야기는 이야기일뿐, 현실로 만들어졌을 땐 또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내용은 현실인 듯 꿈인 듯한 몽상적인 분위기가 매우 짙은 그녀의 작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보여졌다. 그 밖의 소설들도 하나같이 주옥같다.

작가는 살아 있을 때 이야기를 매우 잘 했다고 한다. 북유럽의 여러 민담이나 이야기들의 명맥이 희미해지고 출판업이 흥하던 시절에 이야기라는 주제를 들고 나온 그녀는 오히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환영을 받았으나 모국에서는 많이 냉대를 당한 모양이다. 낡은 전통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그녀의 이야기들 속에는 맑은 울림이 느껴지고 그래서 읽는 동안 많이 행복했다.

옮긴이의 말 중 저자인 이자크 디네센이 미국의 강연회에서 말했다는 소갯말이 인상깊다. 아마도 이 말이 그녀가 자신이 글로써 나타내고자 했던 바를 압축해놓은 게 아닌가 싶다.

'까마득히 오랜 역사를 지닌 한 종족이 있습니다. 나는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그 종족의 후예로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한량들인 이 종족은 현실 세계에 발붙이고 열심히 사는 정직한 사람들 틈에 앉아서 그들이 좋아할 만한 또하나의 세계를 지어냅니다.'

힘들고 지칠 때 한번쯤 꺼내들어 그녀가 만들어낸 '또하나의 세계' 속에 흠뻑 빠져보기를 권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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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9-1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리뷰 당선작^^
 
독초콜릿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75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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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라 하면 대개 항상 핵심을 찌르지 못하는 경찰들과 출중한 한 명의 탐정이 등장하여, 끝까지 범죄의 트릭을 해결하지 못하는 듯 하다가 탐정이 극적인 반전과 함께 해결책을 제시하는 구성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홈즈니 뤼팽이니, 에르큘 포와로, 마플양, 엘러리 퀸 등등의 탐정들이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그들의 명석한 두뇌와 분석력, 매력적인(?) 성격이 소설 전반에 걸쳐 도드라지게 나타나기 때문이고.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기존의 추리소설에 대한 관념을 불식시키는 秀作이라고 본다. 처음에 고르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산만하고 명쾌한 논리를 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심을 품었으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과 같은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6명의 범죄연구회 회원들이 하나의 미결 사건을 두고 각자의 논리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추리라는 것도 그 사람의 직업과 가치관 등을 투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6명 전부 다른 범인을 두고 그것에 맞는 정황과 심리적 분석을 시도하는 내용이 매우 독창적이었고, 실제 범인인 사람이 자신의 범죄를 완결시키기 위해 몰아가는 방법도 교묘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 부분에서의 추리가 조금 허술하지 않았나 하는 것으로 충분한 앞뒤 정황을 설명하기 보다는 심증적인 면에 치중한 것 같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존의 추리소설의 맹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지적하고 탐정이 아닌 사람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개성에 따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괜챦았다.

끝의 단편소설이 불쑥 나와 조금 당황했는데, 이 부분은 빠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크게 잘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괜히 장수를 채우는 듯한 이미지만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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