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설치되었다. 사실, TV를 보는 경우는.. 야구 볼 때 빼고는 별로 없어서 안 사려고 끝까지 버텼는데... 일단 마루가 너무 텅 비어 허전하고, 또 하나는, 집에 사람 소리가 안 나니 적적하다 뭐 이런 이유로 포기하고 구입을 했다. 그게 오늘 들어왔다. TV 설치했으니, 케이블도 해야지. 야구를 보려면. 뭐 그렇게 해서 BTV도 설치하고. 구색을 다 갖춘 꼴이 되었다.
오늘은, 새로 달린 (벽걸이다) TV로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 축구를 보았다. 좋은 화질에, 노트북보다는 훨씬 큰 화면으로 보니 보는 맛이 나는 건 사실. 무엇보다 사람의 소리가 들리니 이제 '집같다' 라는 느낌이 크다. 집에 있으면 소리가 너무 없으니 내가 혼자 독백을 할 수도 없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가 되지 않은 다음에야) 라디오를 틀거나 음악을 틀거나 해서 그 적막함을 무마하곤 했는데, 역시 TV에서 나는 끊임없는 사람 소리가 집에 묘한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예전 직장에서, 30대 후반까지 혼자 살던 젊은 남자가 있었는데, 자취방에서 소주상을 차리고는 거울을 보고 건배를 외치며 먹는다고 했었다. 저런. 면벽을 그렇게 하시면 큰일 나십니다.. 하면서 크게 (비)웃어 주었더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좀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 사람은, 대학때부터 자취를 해서 근 20년 가까이 혼자 산 셈이니 집에 갔을 때 아무도 없는 방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게 참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니 거울을 보고 '쨍'을 외치며 술을 먹지. 그래서 집에 안 가려고 늘 사람들과 저녁을 함께 하고 싶어했었다. 저녁은 술자리로 이어지고.... 그 덕분에 꽤 재미있는 직장생활을 했었던 추억은 있다.
혼자 살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더니, 내가 딱 질색을 하던 그것도 슬슬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럴 생각이 일도 없지만, 혼자 쭈욱 살려면 뭔가 '온기'라든가 '생명의 움직임'이라든가 하는 것이 절실해질 때가 올 수도 있겠다 싶다. 그것도 안 되는 사람들은 로봇 모양의 기계를 앉혀 놓고 "외로와, 음악 틀어줘", "오늘 덥다, 에어컨 이쪽으로" 이렇고 있는 거지. 그런 광고를 보면 나는 사실 많이 섬짓하다. 저건 그냥 공식적인 독백 아닌가. 우리가 예전에 인형 붙잡고 놀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그리 단언해서 앞뒤 다 자르고 칼날같이 대응해서는 안되는 거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이유라는 것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상황에 가면 나도 그렇게 된다.. 가 정답이기도 하다. 나이가 젊을 때는 건강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허전할 틈도 없을 지 모르지만, 나이가 한살 두살 먹어가면 같이 말할 사람이 필요하고 같이 뭔가를 할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 사람이 필요한 것인데 주변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남아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요즘 몇 년만에 본방사수하는 '라이프'라는 드라마를 오늘부터 TV로 볼 수 있다는 게 작은 기쁨이다. 여기 오고 한달 동안 노트북으로 보느라 나쁜 화질과 작은 화면에 애먹었었는데, 이제는 대문짝만하게 하고 볼 수 있겠네. 아. 이 드라마 좋다. 혹시 요즘 드라마 뭐 볼 지 모르겠어요 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비밀의 숲> 작가가 지은 병원 드라마이고 조승우, 이동욱, 유재명, 문소리, 문성근 등등이 나오는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의사들의 감추어진 면면을 아주 예리하게 파고든다고나 할까. 병원이라는 조직이, 그 폐쇄된 조직이, 어떻게 기능을 하는 지, 그 안에서 인간 군상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 지, 혹은 하려고 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매우 재미있게 보고 있다.... 아... 혼자 사는 적적함과 TV 구입한 얘기로 시작해서 드라마로 끝내는 이 삼천포 신공이라니. 휘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