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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 - 더글러스 애덤스의 멸종 위기 생물 탐사
더글라스 아담스 외 지음, 최용준 옮김 / 해나무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모리셔스 섬을 아는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신은 모리셔스 섬을 만든 다음에 천국을 만들었다. 천국은 모리셔스를 본떠서 만들었을 뿐이다." 모리셔스 섬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은 살찐 비둘기다. 칠면조 정도의 무게를 지닌 이 비둘기는 무거운 몸으로 날기를 포기하고 과일이 풍부한 계절에 엄청난 양의 먹이를 먹고는 비축해둔 지방을 소비하며 메마른 계절을 난다. 이 비둘기는 녀석에게 해를 끼치는 육식동물이 없는 모리셔스 섬에서 한심하리만치 평온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1680년 경 한 네덜란드 이주민이 장난삼아 내려친 곤봉에 맞아 마지막 비둘기를 죽여버렸다. 이 새는 바로 지금은 멸종되어 볼 수 없는 도도(dodo)새이다.
양쯔강에는 돌고래가 산다. 점점 탁해져만 가는 양쯔강의 흙탕물 속에서 이 양쯔강돌고래는 퇴화되어 장님이 돼버렸다. 돌고래는 청각에 의존하게 되었고 놀랄 만큼 청각이 발달했다. 그러나 양쯔강에 무수히 많은 배들이 떠다니기 시작하면서 돌고래는 지옥을 맛보게 된다. 돌고래들은 배에 치이거나 프로펠러에 난도질 당하거나 어부들에게 잡혀 죽어가고 있다. 이제 남은 200여 마리의 돌고래는 불가피하게도 '자연적이지 않은' 보호구역 안에서 멸종 위기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좀처럼 구하기 힘들었던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더글러스 애덤스가 1985년 동물학자인 마크 카워다인과 함께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 탐사에 나섰다. 그들은 독자가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가볼까 싶을 만한 지명도 생소한 곳들을 다니며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 마운틴 고릴라를, 코모도 왕도마뱀을, 카카포를, 로드리게스 과일먹이박쥐를 만난다. 더글러스 애덤스 특유의 유머는 그들이 겪는 답사과정을 무척이나 유쾌하게 그려나가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일견 흥미로운 여행기나 동물관련 책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책은,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참혹하고도 서글픈 슬픔과 직면하게 한다.
지구라는 행성의 복잡하고도 정교한 생태계에서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동식물들을 멸종시켰다. 지금도 끊임없이 인간과 동식물의 생활터전을 사이에 둔 싸움은 계속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동식물이 멸종에 근접해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멸종을 앞에 둔 동식물을 보호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왜 그런 수고를 하는가? 양쯔강돌고래나 카카포, 북부흰코뿔소, 또는 단지 과학자들의 메모 속에서만 살고 있는 다른 종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중요하다. 모든 동식물은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부분이다. 심지어 코모도 왕도마뱀조차 섬의 섬세한 생태계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그렇다 할지라도 몇몇 종이 멸종되는 사건은 대기 온난화 현상이나 오존층 파괴와 같은 커다란 환경 문제와 비교해볼 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이 아무리 신속하게 회복한다 할지라도 그 회복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그 한계에 접근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두워질수록 우리는 더 빠르게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웰빙을 부르짖는 인간들의 '자연' 혹은 '친환경'이란 개념은, 인간, 그것도 현재 자신에게 가해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환경적 문제들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지극히 이기적인 수단일 뿐이다. 지구의 어느 외진 곳 숲속에서 소리도 없이 멸종되는 종들이 생겨나든지 알 바 없이 인간의 손에서 비롯된 '비자연적' 현상들의 돌파구로 오염되지 않은, 낭만적이고 청결한, 인공적 자연만을 찾아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지구의 입장에서 가장 나쁜 바이러스는 바로 우리 인간들이며 인간이 망가뜨리고 있는 자연계는 고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진 유기체로, 균형을 어지럽히는 것들을 제거하리라는 것을. 인간은 자연이 파괴되면 지구가 멸망하리라 생각하지만 멸망하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인간이 이 행성에서 발붙이고 살기 위해서는 마다가스카르손가락원숭이와 양쯔강돌고래와 야생커피나무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개 종에 불과함에도 지구의 지배자라 착각하는 오만불손한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