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7월
절판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은 절경 속을 지나는 줄도 모르고, 같이 걷는 동료들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여행자들로, 우리가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 속에 둘러싸여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이란 건 그 목적지보다 함께 걷는 길동무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10쪽

... 이 영화는 가출한 열네 살짜리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시골에서 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려고 애쓰는 이야기다.
돈 한푼 없이 폐가에 숨어사는 그들은 사랑 하나만 가지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길게 갈 리가 없다. 남자아이가 시장에서 훔쳐온 생선 한 마리를 둘이서 나누어 먹는 식의 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남자아이가 마을 투우장에서 청소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꽉 들어찬 관중 속에 소녀의 모습이 있다. 막 시작된 소싸움에 자릴 박차고 일어나 열광하는 관중 속에서 소녀만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다. 경기의 피날레에 소가 죽임을 당하고 투우사가 퇴장한 다음, 다음번 시합을 위해 경기장 청소가 시작된다. 흥분이 사그라지면서 관중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는다. 그 속에서 소녀가 용감하게도 혼자 일어난다. 그리고 빗자루를 들고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소년을 향해 소녀는 환호하며 자랑스럽게 박수를 보낸다. 나는 이 장면을 떠올리면 갑자기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혹시라도 내가 경기장을 청소한다고 하면, 누가 그 많은 관중들 속에서 날 위해 일어나 줄까? 그리고 날 위해 일어서 준 사람을 나는 과연 그 소년처럼 소중해 생각해 줄 수 있을까? -168-169쪽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서 말이지, 누구 한 사람이 꼭 희생되어야만 한다면... 모두 구원받지 않으면 돼."-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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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5-08-0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스토리 출판사는 제발 책 좀 제대로 만들기를 바란다.
<일요일들>보다는 '그나마' 나아졌지만 이 책도 기본적인 띄어쓰기 오류가 숱하게 많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성의없이 만들어지는 걸 지켜보는 일은 몹시 불쾌하다.

어룸 2005-08-03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그럴땐 정말 원서로 확 읽어버리고싶죠?!!
띄어쓰기를 제외한 번역은 어때요? 읽을만한가요? 번역도 후지다면 전 패스하고파서...^^a

superfrog 2005-08-0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는, 원서는..;;; 학교 때 한번 f 맞고 4학년 때 재수강한 아픈기억이 있어서..쿨럭쿨럭..훌쩍! 흠, 번역은요, 저는 <동경만경> 번역한 분이 가장 좋지만 이 책도 그다지 나쁘진 않아요.^^;; 문제는 아주아주 기본적인 교정 오류들이 많이 눈에 띄어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에요. (패스하세요!^^)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구판절판


어느 날 저녁에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일할 때는 말 걸지 마슈! 뚝 부러질 것 같으니까.
-부러지다니, 조르바, 그게 무슨 말이오?
-또, <무슨 뜻이냐, 왜 그러냐> 하시는군. 꼭 애들 같이! 그걸 내가 무슨 수로 설명해요? 나는 일에 몸을 빼앗기면, 머리꼭지부터 발끝까지가 잔뜩 긴장하여 이게 돌이 되고 석탄이 되고 산투리가 되어 버린단 말입니다. 두목이 갑자기 내 몸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돌아봐야죠? 그럼 꼭 부러져 버릴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제 아시겠어요?-173쪽

사면을 내려가면서 조르바가 돌멩이를 걷어차자 돌멩이는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조르바는 그런 놀라운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에서 가벼운 놀라움을 읽을 수 있었다.
-두목, 봤어요?
-......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212쪽

과오란 고백으로 반쯤은 용서가 된다고 합니다. -234쪽

내 딴에는 자기 위안의 한 경지에 도달했답시고 한번 과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조르바는 그 긴 팔을 쑥 내밀어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아버렸다.
-닥쳐요!
그가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385쪽

조르바가 한바탕 웃고는 말을 이었다.
-... 인간이란 참 묘한 기계지요. 속에다 빵, 포도주, 물고기, 홍당무 같은 걸 채워 주면 그게 한숨이니 웃음이니 꿈이 되어 나오거든요. 무슨 공장 같지 않소. 우리 대가리 속에 발성 영화기 같은 거라도 들어 있나 봐요.-393쪽

꺼져 가는 불 가에 홀로 앉아 나는 조르바가 한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 냄새가 나는 말들이었다.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한 그런 말들이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 내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432쪽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이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至高)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450쪽

-교장 선생, 이리 좀 오시오. 내겐 그리스에 친구가 하나 있소. 내가 죽거든 편지를 좀 써주시어,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해주시오. 그 사람의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잠깐만 더 들어요. 신부 같은 게 내 참회를 듣고 종부 성사를 하려거든 빨리 꺼지는 건 물론이고 온 김에 저주나 잔뜩 내려 주고 꺼지라고 해요. 내 평생 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직도 못 한게 있소. 아,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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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2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450 페이지!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진실이라면!

superfrog 2005-07-2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 저 단락에 얽힌 이야기 쓰려다가 스포일러라서 지웠어요..
아무튼 읽으며 계속 님이 생각났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그래서 어쩌란거냐..-.- 저도 몰라요..;;)

비로그인 2005-07-2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어억! 여름 휴가 때 계획해 둔, '도서초토화대작전' 목록에 당장 끼우겠슴돠!! 두근두근~

superfrog 2005-07-2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도서초토화대작전! 저도 당장 세우겠슴돠!!
(일년 열두달 세우고 있긴 해요..;;;)

어룸 2005-07-2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하루만 더 빨리 써주셨더라면 어제 장바구니에 요것도 넣는거인디!!! 안타깝슴당...쿠폰이 8월1일까지이니 그 전에 또 지르겠구만요...어흑!!! 똑 부러지는 거부터 다, 무척 맘에 듭니다!! ^^

icaru 2005-07-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93,,,, 432... 저도 이 부분은 밑줄 쫙 그었다는~*

superfrog 2005-07-2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oofool님, 또 지르세요!!^^ 뚝 부러지자구요!ㅋㅋ
icaru님, 복순이언니님으로 언제 돌아오실건가요?^^ 조르바 읽기 전에 '아, 귀여운 조르바'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는데요, 다 읽고 나니 저도 똑같이 귀여운 조르바,라고 하게 되더군요.ㅎㅎ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시모토 바나나나 요시다 슈이치의 글들을 읽을 때 느끼는 강한 울림은 한 가지,
이 어긋나버린 관계들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이다.
일상에서 아주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한 그 여자와 그 남자 들은 
상식이나 윤리의 잣대로는 난도질 당할 만한 관계가 되어도 사랑스럽다.
쉽사리 가해자나 피해자라고 재단할 수 없는 그들은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배신을 상대에게 저지르더라도 미워할 수가 없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나름대로 가슴이 아프겠지,라고 그 '가해자'의 손도 슬며시 잡아줄 수 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 실린 9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유사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여자는 자신의 일이 있고 자신의 세계가 있다.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일상에 파묻히지도 않는다.
상대에게 미소짓지만 진심으로 웃지 않는다,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
남자는 덩치만 큰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삼백안의 눈을 하고 귀염성 있는 웃음을 흘린다.
대체로 선량하고 친근한 외모와 성격을 갖고 주변에 스스럼없이 녹아들어 있지만
결정적으로 가장 배려해야 할 대상에게 배신의 칼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댄다.
언니의 아들인 조카와 관계를 갖기도 하고 독신의 삶을 견고히 하며 안전한 연애에 만족한다.
느닷없이 바람피운 이야기를 고백하다가 저녁밥을 달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아.. 이들이 너무나도 싫다, 정이 가지 않는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칼로 찌르고 난도질을 하던지, 아님 멱살을 잡고 싸워라.
그도 아니면 '그럴 수 있어'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던지!
연민과 이해의 눈빛을 보낼 수 있도록 하란 말이다.
일상이 깨진 그들의 작은 우주는 들여다볼수록 짜증만을 일으킨다.
사랑스럽지 않은 인간들을, 게다가 붕어빵처럼 닮은 유사한 인간들을 계속 봐야 하는 건 슬픔이다.
삼백안을 한 귀여운 얼굴의 덩치큰 아저씨는 이제 신물난다.

나이든 이 작가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글들은 뭔가가 벌어지려나 싶은 순간에 끝나버린다.
그 미완의 결말은 한계를 짓지 않는 아쉬운 끝이 아니라 어색하고 무책임한 결말이다.
이토록 예측 불가능한 결말을 지닌 단편을 무더기로 읽기에는 독자의 인내심이 부족하다.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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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3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07-2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
새벽별님, 반대로 남들은 툴툴거려도 혼자 좋아라 정신 못차리는 그런 작가도 있지요..ㅎㅎ

어룸 2005-07-2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랑도 안맞았어요!! 아...반가워라^^

superfrog 2005-07-25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oofool님, ㅋㅋ 안 맞다고 서로 좋아라하면 안되는데..^^;;;
담에는 열광모드로 맞춰보자구요!!ㅎㅎ

2005-07-28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07-2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딱님, 책은 안 맞았는데요, 영화는 몹시 보고 싶었어요. 결국 못 봤죠..ㅠ.ㅜ
음..님께는 어떨라나, 여튼 책보다는 영화가 낫다,라고들 많이 얘기하더군요..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구판절판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 다치거나 망가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시대가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을 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망가진 사람들의 내면에 끝끝내 망가질 수 없는 부분들은 여전히 온전하게 살아 남아 있었다. 뿌리뽑히고 거덜난 삶 속에서 삶에 대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은 늘 눈물겹다. 고난에 찬 삶을 통해서 말없는 실천에 도달한 그들의 삶은 성자의 삶처럼 보였다.
저무는 가을 논길에 경운기 한 대 지나간다. 늙은 남편이 운전을 하고, 수건을 머리에 쓴 늙은 아내는 적재함에 타도 간다. 늙은 부부는 하루종일 같은 밭에서 일해도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 돌아갈 때도 누가 먼저 가자고 하지 않아도 서로의 동작을 보면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안다. 저문 논길에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부부는 거룩해 보였다. 늙은 부부가 돌아가는 논길에 개 발자국 몇 개가 찍혀 있다. 시멘트가 마르기 전에 돌아다닌 극성맞은 개들의 발자국이다. 고단하고, 버려지는 삶 속에 인간다운 고귀함이 여전히 살아 있다. 여름의 여행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195쪽

슬픈 아우성
서울 지역에서 벌어지는 거리집회와 시위는 연일 150건이 넘는다. 200건에 이르는 날도 있다. 실체가 없다던 북파공작원들도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실체를 드러냈다. 미군이 가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미군 가지 마라"는 시위도 있다. 가장 고통스런 시위는 추방당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다. 노점상, 세입자, 철거민, 계약직, 해고자, 해고를 앞둔 파업 노동자들이 연일 거리에서 부르짖고 있다. 경찰 지휘부는 즉각 '경력대비'를 지시한다. '경력대비'란 경찰병력으로 해산시키라는 용어다. 추방당한 사람들의 아우성은 도로교통법 시행령의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다. 전경들이 그 아우성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한 곳에서 시위가 끝나면 전경 지휘관들은 부상자들을 점검하고 곧 다른 시위현장으로 이동한다. 봄이 무르익을수록 전경들은 밥 먹을 틈도 없이 바빠진다. 시장의 논리로 추방당한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거리에, 시장이 저들을 구원하리라는 복음이 울려퍼지고 있다. 추방은 이 사회의 오래된 문제 정리 방식이었다. 언론인을 추방하고, 교사를 추방하고, 노동자를 추방하고, 늙은이를 추방하고, 장애인을 추방해 왔다. 서울 거리에서, 시장의 힘으로 추방당한 사람은 하늘을 나는 새만치도 시장의 은총을 받지 못한다. '경력대비'가 있을 뿐이다. -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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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0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07-20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 배송완료는 됐는데 말씀이 없으셔서 어데로 사라졌나, 조금 걱정하고 있었어요. 잘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님도 건강하고 행복한 여름 나시길.^^
 
두더지 4 - 완결
후루야 미노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렛츠고! 이나중탁구부>의 작가인 후루야 미노루의 신작 <두더지>가 완결되었다. <시가테라>에 전력을 기울이기 위해 대충 끝낸 게 아니냐,라는 말도 있지만 일본과 동시에 한국에 발간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지금 이곳 저곳을 뒤져보니 2권과 3권 사이에 3년의 공백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이에 작가는 <시가테라>를 시작했다.)
하지만 <두더지>의 그 묵직한 무게감으로 보건대 절대로 대충 끝낼 수 있는 작품은 아닌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렛츠고!이나중탁구부>와는 작가가 같다는 것 말고는 유사점을 찾기 힘들다. 혹시라도 뛰어난 만화독법으로 <렛츠고!이나중탁구부>에서 볼 수 있는 노골적인 유머에서 고스란히 날이 선 현실의 냉혹함을 약간이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바로 그것이 작품 전체가 그 현실의 냉혹함과 선연한 날카로움으로 이루어진 <두더지> 사이의 잡아내기 힘든 유사점이라 할 수 있다.

단절과 폭력, 살인을 중심축으로 한 이 작품은 폭력과 살인에서 파생되는 두려움과 공포, 암울함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주어 읽다보면 숨이 막혀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다. 1권을 처음 읽으며 애초 스미다에게는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가 분명히 상식적으로 말하는 '파멸'을 택하리라는 예측은 쉽게 할 수 있다. 왜? 그를 둘러싼 그 절망이 도저히 누구의 힘을 빌더라도 떨쳐낼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물론, 친구의 힘으로도 혹은 허울 좋은 사회의 힘을 빌더라도 그의 깊은 절망은 어느곳에든지 따라다니는 이 외눈박이 괴물의 육중한 무게만큼이나 그를 짓누르고 숨막히게 하며 희미한 빛도 볼 수 없도록 온몸으로 그의 눈과 귀를, 입을 가리고 있다. 그럼에도 한두 권 읽어나가며 계속해서 속절 없는 바람을 했다. 제발 제발 누군가가 스미다를 구해내기를. 그가 구원받을 수 있기를. 마지막 장을 굳이 미리 들쳐보지 않더라도 스미다의 파멸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구원의 동앗줄이 내리기를 바랐던 나는 분명 천진하게도 낙관적인 시선을 지닌 어른이다. 해서 구름이 달을 가린 어두운 밤에 괴물을 대면한 그의 힘겹게 단호한 눈매에, 익숙한 절망의 말을 읊는 그의 마지막 말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역시... 안되는 건가..?
아무리 해도 무리야..? 그런가..?
정해진 거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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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7-0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리뷰라고 생각합니다. 리뷰는 이렇게 쓰는거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부리 2005-07-0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씨, 누가 추천했을까? 내가 1등으로 추천하려고 했는데...

부리 2005-07-01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댓글을 달고 추천하는 스타일과, 추천부터 하고 댓글을 다는 스타일. 전 첫번째 유형입니다.

부리 2005-07-01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단점을 말씀드리자면, 댓글을 달다보면 추천을 까먹기 쉽고, 추천을 미리 하면 댓글로 쓸 말이 없습니다.

superfrog 2005-07-0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깜딱이야.. 댓글이 주룩 올라와서 놀랐잖아요..!
부리님, 추천 감사드려요!^^
짱구는 이제 좀 쉬지 그래!ㅋㅋ

플레져 2005-07-0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엠마 5권을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 어흑~ 님의 만화 리뷰를 보니 엠마가 몹시 보고 싶어져요. 금붕어님의 리뷰에는 쿨과 핫 사이의 중간에 있는 듯. 제가 늘 부러워 마지않는 부분입니다...^^

미완성 2005-07-0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 잘 쓰세요..리뷰에 코멘트를 달려고 해도 할 말이 없고, 안달자니 추천한 거 자랑은 해야겠고, 역시 어족은 물이 많은 시기에 활개를 치는 건가요..

날개 2005-07-0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전 두더지 보면서 너무 답답했어요.. 4권으로 마무리한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ㅠ.ㅠ

superfrog 2005-07-0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엠마에 얽힌 슬픈 사연은 님 서재에서..^^;;; 저도 엠마가 보고 싶은데, 왜케 인연이 안 닿는 건지요.ㅠ.ㅜ
멍든님, 장마철이라서 그런가요..(헹, 무신 말씀! 님, 해장 잘 하셨지요?^^ 해장을 진즉에 잘 해놔야 나중까지 탄탄하게 몸이 버텨준답니다!)
날개님, 저도 보면서 어찌나 답답하던지요.. 4권으로 끝난 게 다행이어요..!^^

미완성 2005-07-02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전으로 해장 잘했답니다, 덕분에 흐흐~
참참, 코멘트 달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는 건 너무 잘 쓰셔서 농담하기가 죄송스러울 정도였다는 말이었어요오~~ 아아, 역시 과일은 인간의 언어에 능숙해지기엔 너무나 부족한 존재란 말인가..털썩. (__)
좋은 밤 되셔요~~ 이제 당분간 알코올은 안령~ -_-/~

superfrog 2005-07-02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장마철이라서 그런가요..' 요 말씀은 '어족은 물이 많은 시기에 활개를 치는'에 대한 쑥스런 말대꾸였구요, 괄호 안의 헹, 무신 말씀!은 '활개는 무슨 당치도 않습죠!'라는 뜻의 헹, 이었답니다..당최 쑥스러워서 말이죠..ㅋㅋㅋ 아이참, 제가 넘 많이 건너뛰고 댓글을 달았나봐요.;;;(님은 알코올과 안녕 하셨는데 저는 오늘 아주 반갑게 조우를 해서 어쩐답니까! 캔 3개를 비우고 교정을 봐도 일사천리, 이젠 음주교정이 일상이 돼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