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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시모토 바나나나 요시다 슈이치의 글들을 읽을 때 느끼는 강한 울림은 한 가지,
이 어긋나버린 관계들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이다.
일상에서 아주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한 그 여자와 그 남자 들은
상식이나 윤리의 잣대로는 난도질 당할 만한 관계가 되어도 사랑스럽다.
쉽사리 가해자나 피해자라고 재단할 수 없는 그들은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배신을 상대에게 저지르더라도 미워할 수가 없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나름대로 가슴이 아프겠지,라고 그 '가해자'의 손도 슬며시 잡아줄 수 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 실린 9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유사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여자는 자신의 일이 있고 자신의 세계가 있다.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일상에 파묻히지도 않는다.
상대에게 미소짓지만 진심으로 웃지 않는다,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
남자는 덩치만 큰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삼백안의 눈을 하고 귀염성 있는 웃음을 흘린다.
대체로 선량하고 친근한 외모와 성격을 갖고 주변에 스스럼없이 녹아들어 있지만
결정적으로 가장 배려해야 할 대상에게 배신의 칼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댄다.
언니의 아들인 조카와 관계를 갖기도 하고 독신의 삶을 견고히 하며 안전한 연애에 만족한다.
느닷없이 바람피운 이야기를 고백하다가 저녁밥을 달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아.. 이들이 너무나도 싫다, 정이 가지 않는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칼로 찌르고 난도질을 하던지, 아님 멱살을 잡고 싸워라.
그도 아니면 '그럴 수 있어'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던지!
연민과 이해의 눈빛을 보낼 수 있도록 하란 말이다.
일상이 깨진 그들의 작은 우주는 들여다볼수록 짜증만을 일으킨다.
사랑스럽지 않은 인간들을, 게다가 붕어빵처럼 닮은 유사한 인간들을 계속 봐야 하는 건 슬픔이다.
삼백안을 한 귀여운 얼굴의 덩치큰 아저씨는 이제 신물난다.
나이든 이 작가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글들은 뭔가가 벌어지려나 싶은 순간에 끝나버린다.
그 미완의 결말은 한계를 짓지 않는 아쉬운 끝이 아니라 어색하고 무책임한 결말이다.
이토록 예측 불가능한 결말을 지닌 단편을 무더기로 읽기에는 독자의 인내심이 부족하다.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