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인사이드 SE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 하비에르 바르뎀 외 출연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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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그것도 스릴 만점의 저공비행으로. 땅에 발이 닿을 듯 말듯, 어느 때는 엄지발가락으로 땅을 한번 박차고 가속을 붙여 아슬아슬하게 계곡 사이를 누비고 짙푸른 바다 위를 수평선을 보며 날기도 한다. 한참을 비행을 하다 잠에서 설핏 깨고 나면 속이 후련하면서도 못내 아쉽다. 다시 잠을 이어붙여 아쉬운 비행을 마저, 맘껏 하고 싶다. 하늘을 나는 꿈은 삶이 안겨 주는 참가상 상품 같은 그런 사소한 기쁨 같은 게 아닐까. 아주 잠깐 꿈속에서나마 맨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보렴, 하고 말이다. 대개의 꿈들은 현실도 허황됨도 아닌 뒤죽박죽의 우스꽝스런 스토리를 지녔지만 말이다. 

꿈속이 아닌 현실에서 눈을 감고 하늘을 나는 사람을 만났다. 몸뚱이를 움직여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없는 사내는 상상 속에서 하늘을 날아 바다로 향한다. 26년 전 다이빙으로 전신마비자가 된 라몬 삼베드로.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죽음이지만 그에게는 그 선택을 실현할 능력이 없다. 그리하여 마비된 몸뚱이를 건 그의 투쟁이 시작된다.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권리. 하지만 삶의 예찬론자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삶이라는 게 단지 팔을 움직이거나 뛰어다니는 데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세요. 삶은 뭔가 다른 것이지요. 삶이라는 것은 그 이상'이라고 삶의 예찬을 퍼붓는 라몬과 같은 전신마비 성직자의 설득은 '우리가 무얼 하길 원하나요? 그가 말을 못하도록 재갈을 물릴까요? 아니면 딸랑이를 흔들면서 잠을 재울까요?'라는 26년 간 그를 돌봐온 형수의 말로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들의 죽음'보다 아들이 '죽기를 원한다'는 사실에 더 고통을 느끼는 늙은 아버지의 초점 잃은 눈빛은 아들을 사랑하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살기 위해 죽으려는, 죽기 위해 살고 있는 눈물겨운 라몬의 모습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든다. 목 아래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를 달고 머리통 하나로 살고 있는 그에게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는 말은 법원 앞에 서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제 몸을 움직여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성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한없이 가볍고 또 허망하게 만든다. 그를 지탱하며 동시에 짓누르고 있을 그 말의 무게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느닷없이 얻어맞은 뒷통수의 얼얼한 아픔처럼 혼란스러웠다. 죽음을 선택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 갖는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보다 도통 어떤 삶이 의미를 갖는 것이고, 그 삶이 가진 의미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의무로 살아내는 삶과 자유의지로 택한 죽음은 어느쪽이 더 숭고한 것인가. 가치란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어떤 경우에서도 삶의 순간들과 죽음을 긍정하는 라몬을 지켜보자면 그가 그 상태로 삶에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걸까,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하여 라몬이, 로사가 다녀간 후에 장난스런 눈빛으로 곱아 있던 손가락을 움직이며 슬며시 몸을 일으켜고, 침대 바깥으로 걸어나와 침대를 밀어놓고 복도까지 물러나 전력질주로 도움닫기를 하여 창밖을 향해 날아오르는 장면은 한순간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로사의 아들의 말처럼 라몬은 꾀병이었던 거야?'라는 황당함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라몬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다는 데 대한, 그러니까 '아직도 당신은 삶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무거운 물음에서 고개를 돌리지 말라는 감독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느껴지는 당혹감이라는 거다. 로사처럼 관객은, 라몬의 금붕어처럼 꿈벅거리는 위트 가득한 눈을 들여다보며 그가 삶을 지속하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죽음의 선택이 주는 삶의 존엄을 받아들여 그를 돕는 사람은 로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말이다. 라몬의 삶과 죽음은 슬프지 않지만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니 그의 죽음에 눈물어린 박수를. 그 어딘가의 시공간에서 그가 바다를 향해 자유로운 비행을 할 수 있기를.  

우연찮게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본 후 이 영화를 보았다. '이번에야말로 세상의 끝인 줄 알았음'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도 또다시 '삶의 지옥'을 선택하는 마츠코와 라몬은 묘한 대조를 이루지만 결국 이 두 영화의 감독이 말하려는 바는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의미없네, 의미없네, 살아가는 게 의미없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이 말처럼 삶에 너무 큰 의미를 두려고 할 때 그순간 삶은 의무가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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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6-0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고 또 멋진 리뷰이옵니다
망설이다 극장에서 놓쳐버렸는데, 찾아 보고 싶어져요 ^^

superfrog 2007-06-0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이 영화 꼭 보세요. 정말 봐야 할 영화라고 꼽습니다.^^

2007-06-04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7-06-0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충일님ㅋ, 담에는 좀더 숭고한 날로 잡아볼까요? 일테면, 물의 날이라던가, 지구의 날이라던가, 말복이라던가..^^;;;

치니 2007-06-04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정말 잘 쓰시네요. 포스터가 제 취향이 아니라 접어놨던 영화인데 슬쩍 보고 싶어지는데요? ^-^

superfrog 2007-06-0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시디 케이스의 저 얼굴은 영화 전체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장면이에요.
일전에 카이레님도 쓰셨지만, '슬쩍' 말고요, 진짜 치니님도 꼭 보셨음 좋겠습니다.^^

superfrog 2007-06-0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틀이님, 히힛! 세 편 다 보셔도 절대 후회 안 하실 겁니다.^^

2007-06-16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7-06-16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저와 많이 공명했던 영화에요.
치기어리게도 죽음에 대한 답을 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닥치기까지 끊임없이 품고 있어야 할 생각이 아닌가 해요.
이 영화가 님께 어떻게 읽힐지 많이 궁금해요.
햇살과, 동반한 그늘처럼 조화로운 날들 보내시길.
풍경이 되었다는 표현, 맘에 들어요.^^

2007-06-27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29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왈로우 테일 버터플라이 (1disc)
이와이 슈운지 감독, 차라 외 출연 / 엔터원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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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산다는 걸 알게 된 직장동료 k와 함께 지하철역을 나설 때 '<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라는 영화 봤어요?'하고 k는 내게 물었다. 그 생경하고도 존재감 있는 제목 때문에 '<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하고 반문했다. 그때 k는 내게 영화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말해주지 않았다. 단지 <러브레터>를 만든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밖에. k는 그후 직장의 부조리한 상황에 발목이 잡혀 타의로 사직서를 내야만 했다. 그 일련의 상황들이 진행되던 어느날 k와 나는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 얘기를 했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네가 회사를 관둬야 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말에도 힘이 있었던 걸까. 그 순간의 말 그대로 k는 표면적으로는 자발적 사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말을 감수해야 했고  그에게 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렇게 k는 등떠밀려 회사를 관뒀다. <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는 내게 k와 함께 묶여 기억에 저장되었다.
며칠 전 <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저절로 k가 떠올랐다. 그사이에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를 본 나는 어리석게도 마시멜로 같은 말캉하고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의 화면을 기대했다. 맥주라도 한잔 마시며 소파에 널브러져 관절에 들어간 힘을 빼고 보는 영화를 기대했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그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 뺨을 발그레 붉히고 이입된 감정에 못내 행복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왠걸, 시공간을 알 수 없는 낯설고 거친 장면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옛날 옛날에... 그 도시는 이민 온 사람들로 넘쳐흘러 마치 그 옛날에 있었던 골드 러시와 같았다. 엔을 목적으로 엔을 파내려고 모여드는 도시, 그 도시는 이민 온 사람들을 이렇게 불렀다. "엔타운",이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영화는, 세기말적인 어두운 그림자가 뒤덮인 암울한 도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세상은 아름다워, 인생은 살아볼 만해!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세요.'하고 외치던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를 만든 그 감독이란 말야? 마치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환상적인 4월의 벚꽃의 오프닝을 만나리라 기대했던 예상을 감독은 보란듯이 깨뜨렸다.
법보다 주먹의 힘을 믿는 도시 엔타운, 빛보다 어둠이 익숙한 엔타운, 그곳에 어린 소녀가 이제 막 엄마의 시신과 이별한다. 소녀는 이리저리 떠넘겨지다 창녀 그리코에게 맡겨지고 그리코는 소녀에게 나비라는 뜻인 '아게하'라고 이름을 붙여준다.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문신인 나비를 본 아게하에게 그리코는 소녀의 가슴 언저리에 애벌레를 그려준다. 그렇게 그리코와 아게하의 엔타운 생활이 시작된다. 영화는 몹시 복잡하게 전개된다. 그리코 패거리는 어느날 사고로 죽은 그리코의 손님을 암매장하려다 그의 뱃속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발견하고 그것이 위조지폐를 만드는 데 쓰인다는 것을 알아낸다. 마술처럼, 1000엔을 먹은 환전기는 열장의 1000엔을 뱉어냈다. 마치 꿈처럼.
그리코 패거리는 도시로 나와 엔타운드림이라 할 수 있는 라이브하우스를 차리고 밴드를 만든다. 그리코의 연인 페이홍은 그리코에게 창녀짓을 관두고 이제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를 하라고 한다. 밴드가 꾸려지자 그리코는 밴드의 반주와 함께 노래를 한다. 마이웨이. 그들의 원죄의 근원이 되는 노래이자 엔타운들의 꿈의 결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 마이웨이. 그리코는 내지르는 목소리가 아닌 목 깊은 곳에서 감추고 움추리며 쥐어 짜내듯 마이웨이를 부른다. 마치 죄의식을 느끼는 듯한 이 장면은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부르게 만들면서도 뭔가 한구석에-그들의 꿈을 이루는 밑바닥에 범죄의 그림자가 깔려 있음을-꺼림칙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인상 깊은 장면이다. 라이브하우스 엔타운은 궤도에 올라 그리코도 유명세를 떨치지만 정작 페이홍은 그리코의 앞날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레코드 회사의 스텝들에 의해 불법체류자로 붙잡히게 된다. 그리코는 엔타운드림을 이룬 스타가 되지만 아게하는 상실의 날들을 보낸다. 그런 어느날 수순처럼 아게하는 그리코의 나비 문신을 시술했던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가슴에도 버터플라이 문신을 새긴다. 애벌레에서 탈피한 나비. 버터플라이 문신을 새기며 아게하는 어린 시절 창녀인 어머니가 손님을 받는 동안 화장실에 갇혀 있던 시간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내가 나비를 죽였을까요, 죽은 나비일까요. 변기 위에 서서 나비에게 손짓을 하며 엄마를 부르는 어린 아게하의 몽환적인 모습은 그녀의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녀가 애벌레에서 탈피하여 변태의 탈바꿈을 하는 극적인 순간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띤다.
가상의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엔타운들의 이야기인 영화는 암울하고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언어를 통해서도 나타내고 있다. 소통 부재인 바벨의 시대를 상징하려 했던 것일까, 국적불명의 영어와 북경어, 일어가 혼재되어 아게하의 입을 통해 이 사람에게 저 사람에게 옮겨지며 도달해야 할 곳을 못찾고 허공에 떠돌기도 한다.
엔타운의 한 소녀 아게하의 애벌레 그림에서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는 거대한 폭발과 하늘에 흩날리는 엔화 지폐 속에서 끝을 맺는다. 엔타운은 정녕 존재했던 것일까, 앞으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엔타운일까. 혼란스러운 세기말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꿈은 어떤 의미일까. 나비와 노닐던 장자의 꿈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슴에 새겨지는 낙인처럼 엔타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 그래서 더욱 엔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그들, 엔타운들. <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와 함께 떠오르는 k의 기억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엔화가 절대 가치인 엔타운, 그 엔화를 불에 던져버리는 엔타운들. 내게 두 부조리함은 그렇게 하나로 묶이게 되었다.  일련의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던 완성도 높은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지만 스틸 컷 하나로도 훈훈함을 느끼게 만든 이와이 슌지 감독과 연결시키기에 이 <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는 확연히 다른 선상에 있다. 초기작이라고 지레 짐작하기에는 그 완성도가 몹시 뛰어나 자료를 뒤적여보니 <러브레터> 이후의 작품이다.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러브레터>를 만들고 이어서 <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를 만들 수 있었을까. 감독에게 새로운 관심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와이 슌지 감독, '당신은 이제 세상을 순정만화로밖에 못 보는군요!'라고 비꼬았던 걸 용서해요. 그리고 <스왈로테일버터플라이> 같은 놀라운 영화를 다시 한번 더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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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9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6-10-1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운로드님, ^^ 님 방에 막 다녀왔어요.^^ 추천 감사! 꼭 보세요. 정말 잘 만든 영화에요. 이 영활 안 봤으면 이와이 슌지 감독을 영영 '순정만화' 감독으로 볼 뻔했거든요. 저렇게 색이 다른 영화를 연달아 만들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에요.

쎈연필 2006-10-1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배집에 갔다가 우연히 본 영화인데 제목을 기억할 수 없었거든요. 이와이 슌지가 만든 영화라기에 놀랐었지요. 마지막에 돈 던질 때, 옆에 있는 선배가 말하더군요. "젊을 때 만든 영화라는 게 맞네. 결국 돈을 던지고 싶었던 거야"

superfrog 2006-10-1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마님도 보셨군요!^^ 저는 제목이 하도 독특해서 한번 들으니 기억에 콱 박혔거든요. 근데요, 저 영화 젊을 때 만든 거긴 하지만 필모그래피를 보면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 사이에 있는 영화에요. 재밌지요?^^

blowup 2006-10-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의 <마이 웨이>를 정말 좋아해요. 이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 백방으로 수소문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노래방에서 혼자 연습이라도 해볼까 생각해 봤지요.
여러 번 복사를 거친 VHS 테이프의 정말 나쁜 화질로 보았는데,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지직거리는 불량 화면처럼 흐릿하게 저장돼 있어요.
다시 보면 어떨까, 궁금한데, 쉽게 손이 가지 않네요.

2006-10-19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6-10-19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씨네코아에서 해줄 때 지난 봄인가에 봤어요.
나비와 노닐던 장자의 꿈처럼, 아 정말 맞는 비유에요. 그런 느낌 딱 그 느낌.
이와이 슌지, 대단하다는 생각 들죠, 정말...

superfrog 2006-10-1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그리코가 차라군요. 지금에서야 봤어요. 차라라는 배우(배우만,인가요, 아님 가수?) 볼수록 매력적이에요. namu님처럼 저도 차라의 '마이웨이'에 홀짝 빠졌지 뭐에요. 그 묘하게 절제하면서도 몸속에서 끌어내는 듯한 그 창법. 다시 보면 시시한 영화가 있는 반면 한번 더 감탄하게 되는 영화가 있을 텐데, 아마 이 영화는 후자가 되지 않을까요.namu님이 노래방에서 연마하신 <마이웨이>는 어떤 색깔일지 궁금해져요. 꼭 시도해보시길.^^
머쓱님, 아, 그때 제가 잠깐 흥분을..^^;; 흥분 안했어요,라고는 했지만 약간 감정이 상하긴 했어요. 그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을 찍은 건데, 당사자이다보니 편하게 읽히지는 않더라구요. 더구나 그 상황에 대해서 좀 설명하고 싶기도 했구요.ㅎ
치니님, 개봉한 줄도 몰랐는데 운좋게 보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러브레터>를 예상하며 테이프를 돌린 제가 얼마나 황당했을지 상상되시죠? 이 감독, <4월 이야기> 봤을 때 에이, 했는데 이 영화 보고나니 존경스러워요.

blowup 2006-10-19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 겸 가수이고. 아사노 타다부라는 배우(피크닉에 함께 출연 후 결혼)의 아내죠.
너무 잘 어울려서 기쁘면서도 샘나는 사람들. 어둡고 조용하고 서늘한 에너지의 결합처럼 보여요.

mong 2006-10-1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다른 영화는 아무것도 안보고
이 영화에만 온통 마음을 빼앗긴 저같은 인간도 있답니다
저도 시네코아 특별상영때 보았어요...작년 봄 무렵 ^^
아...문득 아게하가 보고 싶네요~~

어룸 2006-10-1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드리려고 무려 로그인을!!!!!!!!!! ^ㅂ^)/

superfrog 2006-10-19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역시 배우 겸 가수였군요. 그 목소리를 영화에서만 들을 수 있다면 너무 아쉽지요. 어둡고 조용하고 서늘한 에너지의 결합이라니, 이거 너무 대단한 인생 파트너인거 아녜요?
몽님, 흐흐, 그렇군요! 저는 5, 6년 전에 제목을 듣고 이제서야 보게 됐어요. 늦게라도 보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해요. 너무 멋진 영화죠. 몽님은 은근 거칠고 하드보일드한 성향이세요, 맞죠?ㅎㅎ 저는요 영화 보고나서 아게하가 '아게하'라고 발음하는 거 따라해봤어요. 너무 이쁘고 섹쉬해서요..;;;
toofool님, 어머나, 무려 로그인에, 무려 추천을!! 감사해요! 좀 자주 얼굴을 내미세욤!^^

superfrog 2006-10-1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깜짝이야. 동시에 글 쓰고 있었네요.^^ 주인공 차라의 팬이 많더라구요. 기회 닿으심 보세요. 저는 아주 재밌게 봤어요. 별점도 후하게 다섯개..

2006-10-25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6-10-31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뜬금없이..;; 백만년 만에 들어와 보니 백만년만에 만나뵙게 되네요..ㅋㅋ

2006-10-31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03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6-11-0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프로 공감님, 자판 두들기며 혼자 씨익 웃고 있어요. 보이시나요?^^ 말씀드린 책은, 감히 제 생애 최고의 책이에요..

2006-12-31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싸움의 기술 (dts 2disc) : 아웃케이스
신한솔 감독, 백윤식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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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오로지 백윤식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좋은놈 같기도 하고 비열한놈 같기도 한,
내편인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 등돌릴 적인 것 같기도 한,
천하고수 같기도 하고 천하의 사기꾼 뻥쟁이 같기도 한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은 그가 만든 그만의 이미지이다.
정체를 도통 파악하기 힘들게 하는 저 그윽한 눈매와
송충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간질간질할 정도의 느끼함을 주는 저음은 
세상 매커니즘을 진즉에 파악해버린, 그로 인해 빛을 발하는 캐릭터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백윤식의 캐릭터가 아주 잘 살아 있는데,
그는 한마디로 하자면 양아치, 거창하게 말하자면 싸움의 고수인 오판수 역을 능글맞게 잘 해냈다.
크지 않은 키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이 몹시 잘 어울리는 그는
어느날 커다란 보스턴 가방을 한손에 들고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향해 외로운 고수의 진면목을 보여주고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진다.
영화에서는 제목 그대로 싸움의 기술을 잘 알려주어 1분만 연습한다면
실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기술들이 나온다.  
상대의 식칼도 맨손으로 잡아 비틀어버리는 고수 오판수, 그가 가진 싸움의 기술의 핵심은
단번에 기선 제압. 비열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반칙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술집에서 시비가 붙었다면 나무젓가락을 날카롭게 반토막 내서 상대의 눈가를 단박에 찌른다.
순식간에, 전광석화처럼. 미처 상대가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뭐 이런 것이다.
붙잡고 뒹굴며 한나절 주먹질하며 피범벅이 되고 이빨이 댕강 나가는 게 아니라
아주 경제적인 손놀림만으로 구성된 단 한번의 필살기, 그게 고수 오판수의 생존법칙이다.

자신을 때린 사람을 되때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매겨진 랭크를 뒤집는다는 것,
이미 경험한 맞을 때의 공포를 넘어서기란 새로운 적의 기선제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난한 일이다.
그러기에 그 자리를 지키는 챔피언보다 도전자에게 더욱 갈채가 쏟아지는 것일 게다.  
물리적인 싸움과는 전혀 관련없이 면역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적의를 갖고 힘을 다해 공격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두려운 일이다.
주인공 고등학생 송병태는 허구헌날 숱하게 얻어 터지고
오판수의 도움으로 싸움의 기술을 연마하지만 좀처럼 주먹을 들어 상대를 치지 못한다.
왜? 그는 이전에 나를 때렸던 상대이므로. 이전에 나는 그에게 패했으므로.
정해진 서열을 뒤집기란 이처럼 어렵다. 
맞음에서 오는 공포를 가슴속에서 다지고 다져 폭발시키는 순간,
그때가 바로 지렁이가 꿈틀하는 순간이다.   
맞음의 공포를 공격의 공포로 이겨낼 수밖에 없는 정도에 다다른 것이다.
세상에 싸움이 어디 사내들의 주먹다짐뿐이랴.
생존을 위해 싸움의 기술을 익히자. 자, 우선 상대를 노려보자, 뚫어지게 노려보자.
그리고 상대의 인중을 향해 동전을 겨냥하는 거다. 세상을 향해, 비실거리기만 했던 미래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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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5-2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금붕어님, 오랜만이에요.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

superfrog 2006-05-2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발마스님, 저도 오랫만이에요,라고 할 줄 알았죠?^^
저는 자취는 없지만 유령처럼 님 서재 계속 보고 있었어요.ㅎㅎ
님도 재밌게 보셨군요. 발마스님만의 싸움의 노하우는 뭘까 궁금해집니다.
함께 본 남자가 심하게 감정이입을 하더라구요.ㅎㅎ

balmas 2006-05-22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그러셨군요. ^^;;
저는 될 수 있으면 싸움은 피하자는 쪽이라서 싸움의 노하우고 뭐고가 있을 것도 없지요. 너무 싱거운가요?? ^^;;

superfrog 2006-05-2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움은 피하자, 주의도 싸움의 노하우죠.^^
싱거운 듯 싱겁지 않은 게 발마스님만의 색깔이죠.
가끔 심하게 싱거울 때도 있지만요..ㅋㅋ

쎈연필 2006-05-22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감정이입 되더라구요. 너무 답답해서 짜증났지만 충분히 공감공감.
백윤식... 피똥 싸게 카리스마 넘치더군요...
참, 님의 리뷰 보고 나서 태풍태양도 보았더랬지요~^-^

superfrog 2006-05-2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마님, 그러셨군요..! 마구마구 캐물으니 3대 1까지 나오던걸요?ㅋㅋ 전설의 17대 1까지는 다행히 안 가더군요. 백윤식의 카리스마는 정말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소독해줄까?'에서 넉다운! 저는 그 짜증나는 긴 과정에서 폭력의 공포를 많이 느꼈어요. <태풍태양>은 혹시 실망하지는 않으셨나요? 칭찬 많이 들음 실망하게 되잖아요. 어그레시브 인라인만큼은 시원시원하죠?^^

mong 2006-05-23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장구치는 금붕어님, 오랜만이어요 ^^
아...저도 이 영화 보고 싶어하다 놓쳤는데 봐야겠네요~

쎈연필 2006-05-2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라인은 한번도 타 본 적 없지만서도
저 그 천정명이란 배우 착하게 생겨서 좋아하거든요^-^

superfrog 2006-05-2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감사..! 이 영화 보세요, 재밌어요..^^
몽님, 넵, 님 글 조용히 잘 읽고 있어요. 잘 지내시죠? 얼마 전 사두고 안 읽은 <현대미술의 상실>을 읽으려다가 리뷰를 검색해보니 님 글이 나오더군요. 읽고 나니 더 기대가 돼요.^^ 이 영화 보세요, 기타노다케시의 오마주도 좀 보이고 그래요.ㅎㅎ
또마님, 인라인은 못 타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뚫려요. 천정명, 눈빛이 참 이쁜 배우죠? 계속해서 잘 자라줬음 좋겠어요.^^

마태우스 2006-05-2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이거 보고 싶었는데 못본 영화죠. 요즘은 어찌나 빨리 간판을 내리는지...디비디도 없구....

icaru 2006-05-2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 그러다 피똥 싼다." 가 젤 먼저 생각나요!!

superfrog 2006-05-2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이 영화 빨리 내렸지요..? 저도 놓쳐서 쩌~기 어둠의 경로로다가..^^ 기회되심 보세요. 특히 남자가 더 감정이입을 많이 하더군요.
이카루님, 방금 님 방에 다녀왔어요..^^ 하하!! 내용도 그렇지만 그 얄미운 말투가 일품이죠..!ㅋㅋ '소독해줄게'도 멋졌지요?

2006-05-24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6-05-24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53에 속삭인님, 있자나요, 감사해요..ㅎㅎ 열심히 캐묻고 오겠습니다..! 녹취도 해가면서 말이죠.^^

2006-08-13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태풍태양
정재은 감독, 김강우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박찬욱 감독은 <달은...해가 꾸는 꿈> 이후로 알쏭달쏭 멋부린 제목은 짓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고, 이후 <삼인조>, <공동경비구역jsa>처럼 간단명료하게 영화 제목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 <태풍태양>처럼 간결하면서도 영화 전체를 꿰뚫는 제목이 또 있을까 싶다.
영화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에 대한 영화지만, 한번의 성공을 위해 수백번 넘어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수백번이 뭔가, 수백 수천번 넘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이곳저곳 부러지고 상처투성이에 목숨이 위태롭기까지 하다.
학교에서 정 맞지 않게 시간 잘 지키며 둥근돌처럼 살던 '소요'는 인라인을 타며 이것이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구석에서 혼자 인라인을 타던 소요가 '모기'와 '갑바' 패거리들과 조우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처럼 자연스럽다. 이제 소요는 꿈속에서처럼, 망상으로만 타던 인라인을, 땅 위에 발을 붙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인라인을, 도약을 배운다.
계단 난간 위를 맵시 있게 긁으며 좌르륵 내려오려면 셀 수 없을 만큼의 넘어짐이 있어야 한다. 난간타기가 도저히 성공할 것 같지 않아 한숨을 쉬는 소요가 모기에게 투정을 부리자 모기가 말한다. '나도 그래. 근데, 그러다 딱 돼. 어느 한순간에.' 모기의 예언 같은 말처럼 어느날 소요는 '딱 되는' 그 순간을 맛보게 된다.
영화는 태풍 속을 지나는 아이들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지금 지나는 여기가 태풍 속인지도 모른 채 편안한 걸음을 걷기도 한다. 어떤 이는 자유로움과 두려움 사이를 왕복하며 걸어간다. 어떤 이는 거센 바람을 강인한 표정과 굳은 심지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옆집아이처럼 평범한 소요는, 우리에게 묻는다.
'남들은 다 차를 갖고 우리에게 목발밖에 안 남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모기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아니.'
'비겁해요!'라는 말에 모기는 대답한다. '비겁한 거.. 나쁜 거냐?'
'누나는 형의 어디가 좋아요?' 한주는 대답한다. '야심이 없다는 거.'
영화는 모기와 갑바라는 대립된 두 인물을 보여준다. 갑바는 소요의 말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굳건히 버텨주는 형이다. 갑바는 국제대회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흔들림없이 앞으로 나간다. 앞뒤없이 설쳐대는 동생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것도 갑바고 그들을 다독이고 꾸짖는 것도 갑바다. 모기는 저하고 싶은 대로 사는, 말그대로 자유형 인간이다.  갑바에게는 꿈이라 할 수 있는 대회에 출전했지만 모기는 출발대 위에서 내려오고 만다. 이유는 갑자기 두려워져서. 두 사람은 친구이고 동료지만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눈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갑바는 이루지 못한 꿈을 간직한 채 현실의 벽을 넘지 '않고' 군대로 잠시 휴식을 떠나지만 모기는 지하철 유실물센터에 인라인을 맡긴 채 한강의 서강대교인지 성산대교인지 즘에서 한강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고는 강기슭으로 전력을 다해 이를 악물고 헤엄쳐간다.
세례의식을 치른 모기는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알 수 없다.  영화는 세례를 마친 모기의 인생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내'가 단지 두려우니까 무대 밖으로 뛰쳐나갈 수도 있다는 거, 반드시 모두가 그 태풍을 맞서고 영웅이 돼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 결국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모기와 갑바의 등을 지켜보며 태풍의 시간을 보낸 소요다. 평범했던 옆집아이 소요. 한주의 말처럼 천번쯤 사랑을 해도 천개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태풍도 태양도 인생에서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대다수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에 '그러다 딱 되는' 그 순간을 위해 넘어지고 넘어지다 널브러져 있는 그들을 쫓아내버리는 게 주된 일인 어른들에게 소요들은 긴긴 여름해를 하릴없이 무료하게 보내는 젊은것들이다. 물론 소요들은 '지나간 날들을 반성하지도 않았고 내일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앞길이 보이지 않는 태풍은 한번은 거쳐가야 할 시간이 아닐까. 여름바람에 펄럭거리는 빨래를 바라보며 오후를 다 보내는 '나'와 '그러다 딱 되는' 그 한 순간을 위해 수백번을 넘어지는 '나'는 같은 사람이다. 목발밖에 남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는 '나'와 아프고 흉터만 남을 것 같은 일에 온힘을 모두 쏟는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태풍 속에서 길을 잃고 나가야 할 곳을 지나치거나, 중도에 이 길이 아님을 알지만 지금 당장 태풍을 피하기 위해 다른 길로 접어든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태양이 뜬다. 알면서도 태풍이 더 강렬한 태양을 몰고 오는 것을 깨닫기란 왜 이리 힘겨운지. 태풍 뒤의 태양의 맛을 보기란 왜 이리 어려운지. 왜 '그러다 딱 되는' 순간 바로 직전에 멈춰버리고 마는 건지.
하지만 태풍의 한가운데에서 태양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니 나는 태풍도 태양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 속에서 버둥거리며 산다. 비겁한 거.. 반드시 나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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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6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6-05-0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러다 딱, 된다' 저한테도 절실한 한 마딘데.. 저는 태풍을 비껴가기만 하고 있으니 그냥 비겁한 인간이렵니다. 님은 태풍에 잘 맞서고 계시니 그 '딱 되는' 순간이 목전에 왔을거에요, 분명! 힘내시랍!^^

치니 2006-05-0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이 영화 흥행 못한게 못내 아쉬웠던 정도로만 감상을 적었던 기억에 비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리뷰. 추천!

superfrog 2006-05-0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영화 속 아이들 참 반짝거리죠? 다들 어찌나 멋지게 슝슝 인라인을 타는지.^^ 저는 <고양이를 부탁해> 감독인줄도 모르고 봤어요. 배우들 연기는 아쉬운 점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시원한 장면들 덕에 용서가 되요.ㅎㅎ

chaire 2006-05-0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 멋진 영화죠? 영화만큼이나, 간만에 만나는, 진솔하고 투명한 님의 리뷰도 매력적! 음. 태풍태양의 냄새를 맡고 싶어집니다. 넘어지는 것조차 못하는 인간 올림.^^

superfrog 2006-05-0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레님, 넘어지는 기술이 가장 어려운 거 아니겠어요..? 제대로 넘어져야 툭툭 털고 일어날 힘도 생기겠죠..^^ 님 말씀처럼 변증법의 꼭지점, 소요 만세!ㅎㅎ

누에 2008-02-12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영화를 보고 무언가 말하고 싶어했었는데... 대신 superfrog님 글 추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