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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기술 (dts 2disc) : 아웃케이스
신한솔 감독, 백윤식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는 오로지 백윤식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좋은놈 같기도 하고 비열한놈 같기도 한,
내편인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 등돌릴 적인 것 같기도 한,
천하고수 같기도 하고 천하의 사기꾼 뻥쟁이 같기도 한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은 그가 만든 그만의 이미지이다.
정체를 도통 파악하기 힘들게 하는 저 그윽한 눈매와
송충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간질간질할 정도의 느끼함을 주는 저음은
세상 매커니즘을 진즉에 파악해버린, 그로 인해 빛을 발하는 캐릭터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백윤식의 캐릭터가 아주 잘 살아 있는데,
그는 한마디로 하자면 양아치, 거창하게 말하자면 싸움의 고수인 오판수 역을 능글맞게 잘 해냈다.
크지 않은 키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이 몹시 잘 어울리는 그는
어느날 커다란 보스턴 가방을 한손에 들고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향해 외로운 고수의 진면목을 보여주고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진다.
영화에서는 제목 그대로 싸움의 기술을 잘 알려주어 1분만 연습한다면
실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기술들이 나온다.
상대의 식칼도 맨손으로 잡아 비틀어버리는 고수 오판수, 그가 가진 싸움의 기술의 핵심은
단번에 기선 제압. 비열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반칙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술집에서 시비가 붙었다면 나무젓가락을 날카롭게 반토막 내서 상대의 눈가를 단박에 찌른다.
순식간에, 전광석화처럼. 미처 상대가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뭐 이런 것이다.
붙잡고 뒹굴며 한나절 주먹질하며 피범벅이 되고 이빨이 댕강 나가는 게 아니라
아주 경제적인 손놀림만으로 구성된 단 한번의 필살기, 그게 고수 오판수의 생존법칙이다.
자신을 때린 사람을 되때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매겨진 랭크를 뒤집는다는 것,
이미 경험한 맞을 때의 공포를 넘어서기란 새로운 적의 기선제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난한 일이다.
그러기에 그 자리를 지키는 챔피언보다 도전자에게 더욱 갈채가 쏟아지는 것일 게다.
물리적인 싸움과는 전혀 관련없이 면역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적의를 갖고 힘을 다해 공격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두려운 일이다.
주인공 고등학생 송병태는 허구헌날 숱하게 얻어 터지고
오판수의 도움으로 싸움의 기술을 연마하지만 좀처럼 주먹을 들어 상대를 치지 못한다.
왜? 그는 이전에 나를 때렸던 상대이므로. 이전에 나는 그에게 패했으므로.
정해진 서열을 뒤집기란 이처럼 어렵다.
맞음에서 오는 공포를 가슴속에서 다지고 다져 폭발시키는 순간,
그때가 바로 지렁이가 꿈틀하는 순간이다.
맞음의 공포를 공격의 공포로 이겨낼 수밖에 없는 정도에 다다른 것이다.
세상에 싸움이 어디 사내들의 주먹다짐뿐이랴.
생존을 위해 싸움의 기술을 익히자. 자, 우선 상대를 노려보자, 뚫어지게 노려보자.
그리고 상대의 인중을 향해 동전을 겨냥하는 거다. 세상을 향해, 비실거리기만 했던 미래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