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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들판 1
오사카 미에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시절에 그다지 활달한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이동네 저동네를 쏘다녔다.
동네의 야산이나 벌판은 말할 것도 없고 정체불명의 군사시설쯤으로 보이는 곳 근처
울창한 숲속도 돌아다니며 아카시아 꽃을 따먹었던 기억도 선명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심한 성격에 걸맞지 않게 참 많은 곳을 헤집고 다녔구나, 싶다.
어른이 돼버리고 나서는 익숙한 곳이 아니면 힘겨워하고 낯선 곳에서는 긴장하게 된다.
지난 날 벌판을 뛰어다니고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를 툭, 잘라 코에 붙이며 놀던
그 기백과 건강한 무모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어린시절의 야산은, 들판은 미지의 세계이고 현실과 환상이 만나는 경계이다.
오사카 미에코의 작품 <영원의 들판>에는 들판과 개와 함께 성장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년은 익숙한 순정만화의 남자주인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특별히 잘난 구석 하나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자신이 한눈에 반했던 여학생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좋아하게 된 걸 알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괴로워한다.
세 사람의 관계는 어색하고 힘겹고 가슴아프다.
친구로 연인으로 두 사람 모두를 소중히 생각하는 주인공은 때론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비겁함과 우유부단함을 후회하지만 보이지 않게 한걸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곁에 항상 자신이 키우는 개가 있다. 상처를 입고 자신의 집에 온 개를 키우며
그 개가 마음을 열고 주인인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개와 인간은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는다.
들판에 나온 개는 마음껏 들판을 뛰어다니다 뒤를 돌아 주인의 모습을 바라보고 안심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들판을 뛰어논다. 벌레를 잡기도 하고 모르는 풀들을 먹어보기도 한다.
한참을 놀다 주인을 돌아다본다. 주인이 뒤에 있음을 알고 안심하며 또다시 뛰어간다.
그 들판은 자신이 사랑한 대상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이 상처입기도 한 공간이다.
들판은 변함이 없지만 들판을 찾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
들판은 그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용히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푸른 풀들이 자라나게도 하고
기분좋은 볕을 내리쬐게도 한다. 보이지 않는 배려 속에서 들판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민이나 힘겨운 성장통을 겪어낼 수 있는 힘을 얻어간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가한 휴일날 오후에 느슨한 옷을 입고 정겨운 사람과 함께
가까운 들판으로 개를 데리고 나가고 싶어진다.
남보다 위에 올라서는 것만이, 고통을 참아내고 성공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주위 사람에게 기대고 위로받고 푸른 빛을 띤 자연 안에서 치유를 받아야 한다.
사람은 자연물임에도 때론 그 사실을 잊고 인공이 되려고 하다가 마음에, 몸에 병을 얻는다.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하늘에서, 바다에서, 숲에서, 들판에서,
사람에게서, 동물에게서 위안을 얻고 치유받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