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1>을 읽다가 최규문 씨가 "올린 정보에 대해서는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소셜네트워킹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도덕률"이라고 조언한 대목에서 

어제 테이크 아웃 커피를 텀블러도 없이 일회용 컵에 떡하니 마신 나로서는,

과연 이 책의 리뷰를 쓸 자격이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는 일도 아프리카 아이들이 원두를 따는 일에 동원되게 하고 농약을 살포하게 하는 착취에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마신다. 

단화 한 켤례가 필요해서(사실 없다고 못 걸을 일은 아니다) 한 켤례를 사면 신발이 없는 아이들에게 자동으로 한 켤례가 기증되는 신발을 샀다. 소비도 하고 자선도 한다는 환각에 취했다. 나는 때때로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착각으로 버틴다.  나의 욕구와 편리, 타성, 시간을 희생하며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아주 적당히 그럴듯하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취미로 고가의 우표 수집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불현듯 "세계는 자꾸만 산산조각나고 있는데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알록달록한 종잇조각이나 모으며 별 거리낌 없이 생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간 모은 우표를 팔아 기금을 모아 환경 및 인권상을 제정할 것을 노벨상 선정위원회에 제안했으나 거절당한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스스로 직접 재단을 만들어 바른생활상을 수여하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와 진보 자체보다는 느리지만 천천히 바른 곳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이 이 대안 노벨상의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노르웨이의 사회과학자, 칠레의 경제학자, 인도의 양자물리학자, 캐나다의 기술공학자, 스웨덴의 언어학자, 케냐의 생물학자, 이집트의 사업가, 핀란드의 마을 운동가 등 14인의 대표적인 수상자들의 이야기들은 비단 환경과 인권 분야 뿐만 아니라 삶, 인간, 진리에 대한 저마다의 깨달음과 천착, 지향점 등으로 확대되어 울림을 준다.  

 

그곳에 도착하지 못한다 해도, 내가 그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내가 거기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왕가리 마타이(케냐의 여성 생물학자) 

따라서 살아 있음이란, 역학적으로 안정된 비안정성입니다. 이 운동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걸을 때마다 항상 두 다리가 번갈아 우리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걷기란 원래 쓰러지는 일의 반복입니다.
-한스 페터 뒤르(독일의 양자물리학자) 

 

신자유주의, 세계화, 녹색 혁명, 나노 공학 등 첨단과 진보의 색채를 이드르르하게 갈아 입고 나와 인간에게 무한정의 권능을 쥐었다는 환각과는 어긋나게 동시에 모든 것의 객체로 소외시키고 있는 눈먼 엔진들을 끄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경험은 모든 고정관념과 관성을 깨고 '살아 있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것은 구태여 남보기에 그럴듯하고 고차원적인 좋은 삶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과 나의 아이들과 또 그 뒤를 걸어갈 많은 나의 후손들의 터전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전하기 위한 시급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당장 어떤 성과를 보이지 않아도 불편을 감수해도 결국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자각은 삶을 더 유의미한 것으로 덧칠해 준다.  

 

  

하지만 나는 카페인 금단 현상을 앓기 마련이며 아이의 물휴지로 방바닥을 닦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텀블러를 쇼핑몰에서 고르며 마치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싶어하는 인간이다. 뉴욕 한 복판에서 일 년 동안 환경에 영향을 주고 살지 않기를 표방하며 제일 먼저 한 일이 멋진 장바구니를 고르러 가는 것이었던 주인공에게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저자야 책을 쓰고 방송에 출연해야 한다는 부담이 감시망의 역할을 해 주었지만 감시망이라고는 스스로의 자책감 정도 뿐인 우리들로서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와 가족의 건강과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으로 출발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 부분은 기가 막히게도 환경 운동 부분과 절묘하게 만난다. 가까운 거리의 농부들과 직거래를 하는 것도 유전자 조작 음식을 거부하는 일도 집단 사육되는 육고기를 거부하는 것도 가장 이기적이면서도 가장 이타적일 수 있는 지점이다. '나'를 대우하고 사랑하는 일은 결국 '너'와 '우리'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제스처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마트료시카를 보면 인형 안에 인형이 계속 들어 있습니다. 마치 이 인형들처럼 지금 할머니 안에 엄마, 손녀가 이미 들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포 차원에서는 삼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이 가능합니다. 이 순간에 당신이 먹는 음식이 부실하다면 당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딸의 건강, 손녀의 건강에게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p.29  

스코트 니어링이 백 번째 생일을 맞던 날 이웃 사람들의 깃발에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었다"고 씌어 있었다고 한다. 그 쪽으로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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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9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1-05-0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인데요. blanca님이 실천하고자 하는 방식은 경제적 비용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육식의 종말>에는 '대량 생산을 조금만 벗어나면 가격이 치솟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알라딘에서 설문조사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는데, 진보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도 실천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재래시장을 이용하기 보다 대형 마트를 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532494

blanca 2011-05-09 13:59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가계부를 한 번 적어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농산물은 직거래를 한 달에 두 번 정도 하는 시스템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식구가 적다보니 음식물이 마구 남기 시작하네요. 그래서 이게 잘 하는 것인지 자문해 보기도 합니다. 세계화 자체가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세계화를 선진국들이 개발 도상국들에게 그럴듯한 기치로 내걸고 자기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그 심뽀가 고약한 것이라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사실 아직 정확하게 제가 어떻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중심을 잡지 못했습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그냥 의미를 두려구 합니다.

순오기 2011-05-09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수고를 하지 않으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는 저도 있어요.ㅜㅜ
환경 운동은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나가는 거죠~~~
제가 하는 것들은

쌀뜨물 받아 마당에 있는 화분에 물주기
달걀 껍질 빻아서 화분에 거름으로 얹어주기
세탁소에서 가져온 옷걸이 모아 다시 가져다 주기
무언가를 담아 온 비닐봉지를 차곡차곡 모아 길에서 장사하는 분들께 가져다 주기
빵집 비닐봉지 모아서 다시 가져다 주기
음식물 쓰레기는 껍질이나 손질한 푸성귀 외에는 버리는 거 없기
린스 안쓰기-댕기머리 샴푸는 린스를 안써도 되니까
설거지할 때 기름때 없는 그릇은 세제 사용하지 않기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시지 않기 위해 집에 사두지 않기- 모임에 갔을때만 마시는 정도.
... 이런 정도를 실천할 뿐이지만, 차츰 늘려가야지요.

blanca 2011-05-09 22:0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많은 것들을 벌써 실천하고 계신 것 같은걸요. 세탁소에서 가져온 옷걸이 돌려주기 생각도 못해봤는데 저도 당장 배워야겠어요. 음식물 쓰레기 정말 반성합니다. 저는 한다고 하는데도 줄지를 않네요. 식구를 더 늘리면 가능할까요?^^;;

마녀고양이 2011-05-0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어쩜 좋을까요?
텀블러 저번에 사려고 보니, 몸에 나쁘지 않은 것은 사기 잔으로 사야 하는데 음... 그게 비싸더라구요.
그런데 그걸로 위안하려 했더니 블랑카님이 원두알로 더욱 예민한 곳을 찍어내시는군요.

저는 언니네텃밭에서 배달받은 이후로, 대형 마트를 끊었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고용된 인원이나 연결된 곳이 많잖아요?
무조건 거부할 일도 아닌거죠. 어디까지 연결과 해악이 미칠지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인간이란게, 좀, 모순된 존재잖아요. 음, 자기 위안 중~

blanca 2011-05-09 22:05   좋아요 0 | URL
마고님 스텐 텀블러도 몸에 안 좋은가요? 저는 플라스틱은 제쳐 두고 스텐만 찾아 보고 있었는데 내부가 사기로 되어 있는 것도 있어요? 우아. 아유, 커피는 지금 속이 너무 쓰려 이래저래 참고 있는 거지 속만 편했으면 저도 마시고도 남죠. 내일은 마실 겁니다.ㅋㅋㅋ 대형 마트를 끊으셨어요? 우아, 그거 정말 쉽지 않은데. 살림 노하우좀 배워야 겠어요. 마고님. 저 이번에 정신 차리고 예산까지 짜고 노력 중인데 그게 참 벌써 어그러지고 있네요.

2011-05-13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6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에벌린은 차를 세우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설움에 복받쳐 흐느끼면서. 왜 사람은 늙고 죽어야먄 하는 걸까. 
p.500

사람은 늙고 죽는다. 이 명제는 언제나 '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명제를 자주 잊어 버리고 자신은 예외라고 착각하고 이따금 떠올리고 그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바스라지고 소멸된다고 항상 떠올리며 숨을 쉰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잔인하고 가혹하다. 아름다운 것들, 소중한 것들이 퇴락하고 사라지는 시간을 무방비 상태로 체험하게 된다. 벌써 2011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1980년대의 시간에서 되짚는 1930년대의 얘기를 듣게 된다. 근시로 살았던 관성 덕택에 갑자기 높은 곳에서 조망하게 되는 삶의 정경에 멀미가 날런지도 모른다. 삶과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위치는 언제나 허락되는 게 아니다. 모르는 체로 때로는 알면서도 기만하며 살아가는 게 생이니까. 

여든 여섯 살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그게 난 어떤 차이도 느끼지 못해요. 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건 아주 살금살금 다가오죠. 어떤 날엔 젊었는데 다음 날엔 가슴과 턱이 처지고 어느 샌가 고무 거들을 입고 있어요.
-p.293 

나보다 열 살이 넘게 어린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식당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정말 걔들은 '아이'처럼 보였다. 스무 살이었던 스물두 살이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여든여섯 살이 될 것이고 지금의 모습을 한 여자를 아이라고 느낄까? 육십 후반의 할머니가 오십 중반의 아줌마를 보고 "젊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는 과거의 나의 모습들은 각자 다른 독립된 개체들처럼 와글거린다. 지금 살고 있는 게 삶인 건지,과거의 그 통제 안되던 정열과 순정 들이 진짜 삶인 건지 도통 구분이 안 간다.  

끊임없이 남들의 시선, 단것들, 무력감들, 굴욕, 체념에 시달리는 중년의 여자 에벌린은 시어머니가 있는 요양 병원에서 여든 여섯 살이 된다는 것의 느낌을 기탄없이 얘기해 줄 수 있던 니니를 만나 그녀가 얘기해 주는 휘슬스톱 까페의 두 여주인 이지와 루스의 삶을 듣게 된다. 휘슬스톱 까페에서는 남녀의 차이, 흑백 인종의 차별, 빈부의 격차, 연령의 구분 등 모든 인위적인 대단찮은 경계가 모호해진다. 배고픈 사람, 상실감과 상처로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사연을 경청하는 그곳은 작가가 '나의 사람들' '나의 고향'이라 지칭했던 곳의 은유이기도 하다.   

여자와 흑인과 노인과 부랑자들에 대한 얘기. 서로 토닥이며 전진하는 그 여정에 대한 복기. 들여다 보면서 몇 번이고 설움이 복받쳐 흐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 왜 사람은 늙고 죽어야만 하는 걸까. 영원히 물음표로 남을 질문을 가슴에 품고 마침표를 찍고 말 것을 알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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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5-0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아주 살금살금 다가오죠. 정말요. 아... 너무나도 딱 맞는 '살금살금'
이것보세요. 전 이거 영화로 봤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잖아요. ㅜㅜ
어떤 나이는 살금살금 다가오고, 어떤 기억은 연기처럼 날아가고..
그러니까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도록 자꾸 얘기하고 또 얘기해서 언제고 얘기할 수 있도록 잘 가꿔야겠다는 생각하면서 오늘 밤은 blanca님께 굿나잇~ 인사하고 물러갑니다.

blanca 2011-05-03 10:19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케시베이츠가 무언가를 막 먹으면서 니니 할머니의 얘기를 듣던 그 장면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굿모닝 인사 해야 시점에서 메리포핀스 님의 굿나잇 인사를 들으니 재미있네요^^ 오늘은 황사가 좀 걷혔으면 좋겠어요.

oren 2011-05-0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록 영화속의 얘기일지는 몰라도) 주인공 '이지'를 보면, 비록 쇠락과 소멸을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며 요양병원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80대의 노인일지라도, '달콤한 벌꿀을 위해 겂없이 벌집을 건드리는' 20대 젊은이의 활기 속에서 얼마든지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품어보게 됩니다. 비록 그 나이에 그렇게 젊게 산다는 건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 * *

최악의 경우 세계가 단 하나의 출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출구와 그것을 통해 세계를 벗어나는 것의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문이 방의 일부이듯이, 세계를 벗어나는 것도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우리는 마치 궤도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탄환처럼 실존 속에 발사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이 세계 - 세계는 항상 여기 지금의 세계다 - 에 떨어질 때 짊어진 운명은 그와 정반대다. 우리에게 부과된 것은 하나의 궤도가 아니라 여러 개의 궤도이며, 따라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얼마나 놀라운 조건인가! 산다는 것은 우리가 자유를 행사하고 우리의 위치를 이 세계 속에서 선택하도록 운명적으로 강요받았음을 느끼는 것이다. 한 순간도 우리의 선택 행위를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낙담하여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에 빠진 경우조차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대중의 반역』中에서

blanca 2011-05-03 10:20   좋아요 0 | URL
아, 이 글 너무너무 좋아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이름도 무지 길고 어렵네요^^;; 근사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저한테 꼭 필요한 얘기이군요.

turnleft 2011-05-03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페이지 수가 만만치 않네요. 이젠 나이가 들어서(쿨럭;;) 그런지 300 페이지 넘어가면 힘에 부친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blanca 2011-05-03 10:2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저도 그래요. 막상 받아보고 완전 쫄았었잖아요. 저도 두꺼운 책은 이제 힘에 부쳐서요. 하지만 이 책은 두꺼울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찬찬히 그냥 곁에 두고 야금야금 읽다 보면 그 시간의 흐름과 공간을 이렇게 형상화할 수밖에 없었겠다, 싶은 생각이...

턴레프트님, 그 ireaditnow 어플 메일로 백업할 때 별점과 읽은 기간은 안 되는 게 넘 아쉬워요. (자꾸 부담 드려 죄송합니다.^^;;)

비로그인 2011-05-03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는다는 일이 서러운 것은, 늙음 그 자체가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겉과 따로 노는 마음이 더 슬플 거라고.
이렇게 늙어도 지혜롭지 못하고, 주변에서는 지혜를 바라고, 마음은 여전히 젊은 어느 자락에 머물러 있는 것이 비극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 글을 읽으니 그럴 것 같아요. 늙음은 그 자체로 슬픕니다. 그게 아무리 자연의 일이라도.

blanca 2011-05-03 10:25   좋아요 0 | URL
저는 나이 드는 게 좋다,고 얘기하는 연예인들 얘기를 별로 신뢰할 수 없어요. 물론 저도 나이 들면서 성숙한 면도 있고 그 때의 그 좌충우돌과 넘치는 열정, 오만이 희석되어 좀 편안하기도 하지만 그게 과연 좋다,고 뭉뚱그려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맞아요. 저는 그래도 젊음이 좋아요. 죽음을 기다리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충만감을 느낄 정말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싶어서요. 죽는 건 항상 두렵잖아요. 결국 이별이니까요.

마녀고양이 2011-05-0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책 너무 좋아하잖아요.
10여년도 전에 이 책 사서, 다섯번은 읽은 것 같아요. 첫 페이지의 휫슬 스톱 카페 메뉴가 너무 좋아요.
이상하게 향수를 느끼죠, 이 책을 읽다보면. 나도 그렇게 사람과 지지고 볶고 살고 싶다는 환상도 가지게 되고.

영화도 좋아해요.
아마......... 그런 진정한 관계가 부러운가봐요.

blanca 2011-05-03 23:17   좋아요 0 | URL
다섯 번이나요? 이 두꺼운 책을요! 마고님 앞에 넙죽 엎드립니다.^^;; 아, 저도 그래요. 저도 그런 관계가 부러워요. 영화도 한 번 봤는데 너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어요. 니니 역을 맡았던 할머니는 아주 예전에 돌아가셨더라구요. 괜히 또 한 번 더 짠했어요.

반딧불이 2011-05-0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본 것 같은데 책도 있군요. 나이 든다는 거, 참 생각도 많아지고 할 말도 많은 그런 말이에요.

blanca 2011-05-03 23:17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맞아요. 무언가를 점점 더 알아가는 건지 잃어버리는 건지 감도 못 잡겠구요. 저는 이따금씩 늙어 죽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답니다.

2011-05-06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6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5-0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방송에서 이 영화를 종종 볼 수 있었죠.그 할머니 역 맡은 제시카 탠디는 1994년 타계했군요.

blanca 2011-05-06 22:01   좋아요 0 | URL
노자님, 저도 안 그래도 찾아 봤어요. 그 할머니 참 고왔죠.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라는 영화에도 나왔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5-07 15:06   좋아요 0 | URL
미스 데이지 역으로 역대 최고령 아카데미 주연상을 탔더군요.

비로그인 2011-05-19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음표 마침표가 또 이렇게 바뀌어 blanca님 얘기를 풀어주네요.
물음표 마침표.
이 간단한 부호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쓰인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같은 책은 아니더라도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 방 구석에 몇 권 있는 것 같은데 좀 들춰봐야겠습니다.

blanca 2011-05-19 11:17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이게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인 줄도 모르고 손에 쥐었었어요. 길고 참 저릿한 소설이었답니다. 이런 시간과 공간을 길게 마구 늘인 것 같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삶과 생,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잠시 멈추고 곱씹어 볼 수 있어 참 좋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자체로서 일체적인 완전함을 갖춘 섬과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체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를 축소시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는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겁니다. 

- 존 던, <묵상록>에서('필경사 바틀비' 옮긴이의 말 중 재인용) 

 

유달리 서러운 날이 있다. 세상 사람들에 너무 지나치게 공감해 버려 그냥 존재 자체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깡총한 바지를 입고 주차장을 배회하는 내 남동생보다 어린 주차요원 남자애들. 내 어머니뻘인데 연신 굽신거리며 시식을 권하는 마트 아주머니들. 관리실을 비워버려 하염없이 집채만한 택배 상자를 이고 끌고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는 택배 기사들.  

꽤 오랜 단골임에도 여전히 나의 커피 취향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매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물어보는 점원이 서러움 하나를 더 얹어 주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도 영영 떨어져 저마다 허우적 대고 있다는 자각도 매번 쓰리기는 마찬가지다.  

씹을 수 없는 왼쪽 어금니가 우연처럼 맞닿아 몸을 뚫고 지나가는 그 예리한 전율감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살아 있다고 느끼고 사는 게 참 전쟁이구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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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anca님께 - John Donne
    from 유리동물원 2011-04-26 22:59 
    John Donne을 제가 무지하게 좋아하긴 하는데 John Donne 단독 선집이라기 보다는 여러 시들이 한꺼번에 들어있는 데에서만 주로 봤네요. 헤밍웨이 소설의 제목이 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니 (Meditation XVII)' 랑 '죽음이여, 뽐내지 말아라 (Holy Sonnet X)'이 나오는 부분은 볼 때마다 좋아요. 하지만, John Donne 시가 들어있는 아주 유명한 사이트를 알고
 
 
마녀고양이 2011-04-2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신 말이죠, 소소한 기쁨으로 즐거워지는 날도 있죠.
미술 치료 수업 기관 근처 토스트 샵에서 일주일에 한번 토스트를 산지 어언, 3달.
얼마 전부터 인사드리고 이야기 걸구, 가게 앞 벚꽃 좋다 하고 했더니
토스트 할머니가 저를 보면 알아보고 웃으세요. 그러니 블랑카님, 커피 샵 가서 한번 깽판을 부리면..
아마.............. 잘 기억해줄 것임을.. ==3333333 부웅~ 도망가기 전에 뽀뽀 날려요, 쪽~

blanca 2011-04-26 21:5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마고님 때문에 웃습니다. 사실 알 것도 같은데 컨셉인지도 모르겠어요. 가격도 싸고 커피도 너무 맛나서 기분이 우울해질 때 가게 되는 곳인데 참, 매번 모든 것을 다시 물어 보네요. 그럴 때마다 기분이 괜시리 별로 안 좋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穀雨(곡우) 2011-04-2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와 아무래도 관계가 있을까요. 그루미한 날, 조금 더 나가면 지독한 우울에 빠집니다.
한 숨 크게.....소녀시대의 훗훗이라도...ㅋㅋㅋ

blanca 2011-04-26 21:52   좋아요 0 | URL
곡우님, 소녀시대는 저를 더 우울하게 만듭니다. ㅋㅋ 너무 이쁘고 어리잖아요.

穀雨(곡우) 2011-04-27 09:0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두 어쩔 수 없는 삼촌팬인가 봅니다..^^
그럴 뜻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힘, 내세요....ㅎㅎㅎ

다락방 2011-04-2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토미 씨, 나요......, 서툴러서, 미안해요.
다키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서툴다니, 뭐가?
뭐든지.
그렇지도 않아. 나도 마찬가진 걸, 뭐.
그래요? 음...... 저기.
웬일로 다케오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히토미 씨도, 세상사는 거라든가 그런 거, 서툴러요? -'가와카마 히로미'의 [나카노네 고만물상] 中 에서


저도 그렇고 블랑카님도 그렇고 커피점의 점원도 그렇고,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잖아요. 늘 해오던 일은 익숙하게 해낼수도 있지만, 늘 해오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수를 하기도 해요. 유달리 서러운 오늘 같은 날에, 커피점의 점원은 오늘 좀 서툴렀는가 봐요. 다음날은 마법처럼 블랑카님의 커피 취향을 기억할런지도 몰라요. 서투른 날이었어요, 오늘은 유독. 늘 살아오던 세상이고 늘 보아오던 환경인데 오늘 블랑카님은 서투른 블랑카님 본인과 만난거에요. 다른날과는 달리. 그래서 유독 서럽게 느껴졌던 거에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서투른 타인과 또 서투른 내 자신과 만나요.

비는 내리다 멈출거고, 눈물도 흐르다 멈출거고, 서투름도 결국 지나갈 거에요. 매번 쓰리다는 자각도 곧 잊혀질 거에요. 물론, 또다시 그 쓰림이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날도 있겠지만요. (횡설수설..제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잘 안전해지지만, 아무쪼록 잘 캐치해주세요, 블랑카님 ㅠㅠ)

blanca 2011-04-26 21:5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렇게 소중한 글도 인용해 주시고 참 고맙네요. 그런 날인 것 같아요. 정말 울고 싶은 날. 몸까지 안 좋고. 게다가 날씨도 멋지게 협조해 주시고. 다락방님의 댓글이 참 따뜻하네요.

... 2011-04-26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의 서러움에 공감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전 존 던을 무지 좋아해요!

이번엔 공감하며 (끄덕끄덕) 그런 날이 있어요.

blanca 2011-04-26 21:54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그러면요. 존 던 책 추천 좀 해주세요. 저도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찾아 봤는데 거의 절판이고 대체 갈피를 못 잡겠더라구요. 꼬옥 좀요.

하이드 2011-04-2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러울 때.. 읽기 싫었던 책, 평소 안 읽었던 책 읽으면 잘(?) 읽혀요. 좀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위안이지만요..

blanca 2011-04-26 21:56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ㅋㅋㅋ 오늘도 꽃집을 지나다 하이드님 생각 했었는데요. 정말 그래 볼까요? 어떤 책이 있을까요? 지금은 참고로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시작했답니다. 저 요새 열린책의 그 사철 방식에 완전 빠져 있잖아요. 이제서야 하이드님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맨날 배 갈라보고 놀아요 ㅋㅋㅋ

2011-04-26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6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4-2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 2011-04-2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빗소리랑 창가의 차 지나가는 소리랑 너무 잘 어울리네요. 찾아 보니 슈베르트의 즉흥곡이네요. 바람결님, 고마워요.

비로그인 2011-04-27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게 생각하세요. 점원이 혹시 남자라면 블랑카님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든지 아니면 대화를 더 나누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여자라면 왠지 묘한 매력을 풍기는 블랑카님에게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 건지도 모르니까요ㅋㅋ(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 또한 블랑카님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터라 남일 같지 않아 위로차 적어봤습니다. 용서하세요)^^

blanca 2011-04-27 21:35   좋아요 0 | URL
후와님, 위로가 되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착각해야겠어요^^;; 유쾌해지는걸요.

양철나무꾼 2011-04-2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깡총바지 입은 주차요원은 제가 못가진 , 그 무엇보다 귀한 젊음을 가지고 있으니 패쓰하고요~
전 파지 줍는 할머니, 우유배달 하는 할아버지, 음~ 또 주차요원 할아버지들의 '아이고~'소리를 듣는 게 일상입니다.
(어째 쓰고보니 '그대를 사랑합니다' 필이...^^)
사는 게 전쟁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전쟁 같은 삶을 부러워 하잖아요~
비가 언제 내렸었나 싶게, 날씨가 쾌청이예요~

blanca 2011-04-27 21:37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오늘 갠 날씨로 기분이 많이 좋아졌답니다. 저는 유독 그런 날이 있어요. 그냥 사람들 모두가 (저를 포함) 너무 가엾은 날이요. 연민과 공감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해도 결국 저의 유약함과 오만일런지로 모르지요. 예, 앞으로 열심히 전진해 나가겠습니다.

비로그인 2011-04-2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몰래 흐르는 눈물
때때로 난 고아처럼 느껴요.
이런 오페라 레파토리의 제목이 생각나는 나날들이었어요.

한오백년 살자는데.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발자국을 떼기가 힘들 때엔,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만 해도 숨이 차요. 타인의 생각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 것.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생각할 것. 그런데 이 두가지를 내가 아무리 지키려 노력해도 누군가는 자신의 잣대로 나를 난도질하고, 형용사 부사를 빼고 명사와 동사만 남겨도 분통터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지나가기를 조용히 기다려요. 그런데, 막상 지나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난 그게 더 두렵습니다.

blanca 2011-04-27 21:40   좋아요 0 | URL
쥬드님, 아. 제가 어떤 위로를 드릴 수 있을까요.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생각한다는 게 저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나머지로도 힘드신 나날이라면 시간이라는 치유제와 상황의 변화라는 흐름을 기다리고 견디시고 나중에 돌아보면 그래도 가장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것들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쥬드님이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로그인 2011-04-28 11:05   좋아요 0 | URL
으허헝 나 이 댓글, 블랑카님을 위로한답시고 쓴 글이었단 말입니다. 울어버릴테요. 저의 개떡같은 글솜씨 때문에요ㅠㅠ

blanca 2011-04-28 13:2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쥬드님 너무 귀여우시네요, 백 프로 저의 오독일 겁니다. 제가 좀 형광등이라서요^^;; 오늘 하늘 보셨어요? 너무 이쁘죠!

2011-04-27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7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8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9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4-28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날이 있잖아요.
괜시리 서럽고, 괜히 아무것도 아닌 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그냥 이유없이 슬퍼지면, 더 슬픈 생각을 짜내어 눈물을 쏙 뽑아내 버리고 싶어져요.

그러고 나면 또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blanca 2011-04-28 13:20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오늘 푸른 하늘을 보고 기분이 참 맑아졌답니다. 하늘 너무 이쁘네요. 뭉게구름도. 그리고 선거결과도요^^;;

잘잘라 2011-04-2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서러운 날」이 너무 오래 가는거 같아요.
얼른 새글 올려주삼!!!

blanca 2011-04-30 23:0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ㅋㅋ 그래야 할 텐데요. 사실 그 기분도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나 봅니다. 오늘 이 괴괴한 날씨도 그렇고. 빨래에서는 냄새가 진동하고. 빨리 활짝 개었으면 좋겠어요.

세실 2011-04-30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커피숍 점원 사업하면 안되겠네요. ㅎㅎ
나이 들수록 단골가게 찾게 되요. 편안함, 위로와 휴식을 얻고 싶은거겠죠.

blanca 2011-04-30 23:03   좋아요 0 | URL
근데 점원을 가장한 주인인 것 같다는 문제가--;; 나이가 꽤 있어 보이고 알바생을 부리는 것 같더라구요. 오늘도 단골 칼국숫집 갔다가 아주머니의 냉랭한 분위기로 괜히 죄지은듯 먹고 왔네요. 요새들 날씨도 그렇고 다들 기분이 안 좋으신지 왜 그러시나 모르겠어요. 그냥 한 번 웃고 따스한 말 한 마디만 건내도 서로들 더 행복해질텐데 참 아쉽습니다.

후애(厚愛) 2011-05-01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많이 서러워요..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어요...

blanca 2011-05-02 10:26   좋아요 0 | URL
후애님.....어떤 위로를 드릴 수 있을까요. 힘들 때 억지로 웃거나 담담하려 애쓰기보다 가끔은 크게 목 놓아 우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우실 수도 없다니 걱정이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더 나아지기를 그래서 후애님이 슬퍼하지 않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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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로 무식했냐면 <백경>의 작가 허먼 멜빌의 소설이니 <필경사 바틀비>도 그런 고래에 관련된 마초적인 얘기인 줄 알았었다. 고래 鯨과 밭갈 耕자도 구별 못하면서 허먼 멜빌을 안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가로로 길쭉한 특이한 판형, 약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삽화, 백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 실패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적어도 출발 전에 각오해야 하는 거리는 아니다. '재미'를 기대하지는 않았고 '의미'는 있겠다 싶었다.  

화자는 바틀비가 아니다. 야망이 없는, 그러나 어느 정도는 선량하고 어느 정도는 속물적이고 비겁한 초로의 변호사다. 게다가 배경은 월스트리트다. 예전에 복사기가 발명되기 전 인간 복사기의 역할을 대행했던 필경사들을 부리면서 '나'는 종종 당혹스럽게 된다. 역시 기계가 아닌 탓이다. 토너나 갈고 프린트용지나 공급해 준다고 역할을 다 해낼 수는 없는 터. 이미 고용중인 두 명도 만만치 않은데 소극적인 저항을 교묘하게 하는 바틀비가 걸어들어오고 만다. 바틀비는 반항적이다. 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고 공표한다. 그런데 이 반항은 서글픈 데가 있다. '나'는 모질게 바틀비를 내칠 수가 없는 그 무엇에서 돌아설 수가 없다.  

다소 특이한 사람을 부리는, 이 사회에서 용인되는 평범함 속에 안주하는 '나'의 번뇌와 갈등. 바틀비와 '나'는 분리된 객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구조와 관습, 상식에서 미끄러져 나가고 소외되는 바틀비를 힘겹게 지켜 보면서 '나'는 한없이 불편하다.  

이러한 얘기들. 언뜻 급박한 전개도 긴장감도 번지르르한 서사도 없는 듯이 보이는 이 얘기가 이다지도 잘 읽히고 결말을 궁금케 하는 것은 작가의 저력이기도 하고 이야기가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 덕분이기도 하다. 독자는 '나'와 '바틀비'를 왕복한다. 변호사가 바틀비를 구제해 주기를 바라기도, 외면해 버리고 저만치 앞서가 버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갈팡질팡하는 그 지점이 눈 앞에 펼쳐진다. 들키고 만다.  

슬픈 결말은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당당하면서도 무력하게 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풍경은 꿈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틀비'는 살아 있다. 죽을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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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6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이 책에 대한 리뷰를여, 메리포핀스님 서재에서 진짜 인상깊게 본거예요.
이거 같은 소설 맞나 싶을 정도로,, 블랑카님 리뷰는 잔잔하고 이쁘네요.

blanca 2011-04-26 22:02   좋아요 0 | URL
이거 완전 재미나요! 마녀고양이님, 강추합니다. 책 자체도 넘 이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빌의 소설은 거의 대부분 바다가 배경인데 이 소설은 도심 한복판이라서 특이하죠.제가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가끔은 바틀비 같은 사람과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도 있어요.물론 사연을 알고 보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blanca 2011-04-26 22:03   좋아요 0 | URL
노자님, 멜빌 다시 봤어요. 저도 완전 좋아하기로 했어요. 멜빌 소설 다른 거 추천해 주실 거 있나요? 백경 말구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7 16:05   좋아요 0 | URL
'바틀비'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편이죠.
중편 정도의 분량으로 <빌리버드>를 권합니다.멜빌의 특기인 해양소설이죠.조직을 위해 부하를 희생시키는 것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민해볼 기회가 될 겁니다.군대조직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되구요.

2011-04-2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7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의 우주 -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
움베르토 에코.장필리프 드 토낙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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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틈에 끼여 앉아 얘기를 들으며 까무룩 조는 풍경은 언제나 그립다. 나는 발언권이 없고 발언을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아니, 차라미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저 배경처럼 그렇게 앉아 밤새도록 흘러나오는 그 수다의 물결에 몸을 싣고 졸다 깨다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꿈 같은 얘기다. 나는 너무 커버렸고 그런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모든 얘기를, 특히나 책에 대한 얘기를 해 줄 어른들은 이제 없다. 

그런데 그 꿈이 간접적으로나마 이루어졌다. 이 책을 통해. 여든 언저리의 탐서가이자 고서 수집가인 기호학자, 시나리오 작가 두 사람이 만났다. 스스럼없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뻔뻔스러운 장수를 누리면서 무언가를 온전히 총기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하면 안된다고 그건 사기에 가까운 일이라고 용기있게 고백한다.  

움베르트 에코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책의 우주에 대한 도발적이고 때로 저돌적인 대담. 서로의 발언에 대한 의례적인 호응이나 상찬은 없다. 일관된 주제를 논리적으로 관통하는 현학적인 자기 과시들도 없다. 재미있는 일화를 서로 들려주겠다고 하며 버젓이 삼천포로 미끄러져주는 센스들을 과시하시기도 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지루한 드라마를 보거나 영양가 없는 남 얘기를 듣는 것도 가능하다. 책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책의 눈을 통해 문명 전체를 재탐색 해보려는 신선한 시도. 사라진 책들, 잊혀진 책들, 읽을 수 없는 책들에 대한 얘기. 현대의 기계문명 앞에서의 책의 미래에 대한 난장토론. 애서가들이 솔깃해 할 모든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다. 귀여운 할아버지들의 자기 자랑도,대화를 선점하기 위한 은근한 알력 다툼도 구경할 수 있다. 

   
 

 인간은 진실로 굉장한 존재죠. 그는 불을 발견했고, 도시들을 세웠고, 눈부신 시들을 썼고, 세계에 대한 해석들을 행했으며, 신화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동류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오류를 범했고, 또 자신의 환경을 파괴해 왔지요. 이 드높은 지적 미덕과 한심한 짓거리를 서로 견주어 보면 거의 비등비등하다고 할 수 있어요.
-p.243

 
   

 

에코의 인간관이다. 에코는 일관되게 자신은 오류와 허위의식과 어리석음에 매혹된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그러한 인간이 써 낸 무수한 책들도 인간의 어리석음의 양 만큼이나 허점 투성이다. 책에 끌리는 것은 지적 미덕과 인간의 현명함에만 상관되는 얘기가 아님이 드러난다. 무수한 오류들만큼 우리는 무수한 오류들의 언어화에 자석처럼 끌려간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탄 것은 어쩌면 다행한 일처럼 얘기된다.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이 반드시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들로 미화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책에 대한 애착들을 우리의 그 '몹쓸' 성향, 하나의 고독한 비행이라 명명한 이 두 명사들의 서재는 어떤 책들로 채워져 있을까? 서재는 반드시 우리가 읽은 책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카리에르의 자기 합리화와,자신은 쓰느라 읽을 시간이 없다는 에코의 변명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사대는 것을 좀 덜 미안하게 만든다.  

아직도 구텐베르크의 성경의 최초 인쇄본을 찾아 고서점들과 벼룩시장을 방황하는 에코와 커다란 공공도서관 책상 위의 종모양의 녹색 빛에 매혹된다는 카리에르의 얘기들. 어른의 얘기를 숨어듣는 아이의 마음은 항상 알 수 없는 든든하고 안온한 느낌과 조금더 현명해지고 있다는 착각어린 생각으로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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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매혹적인 리뷰에 열심히 저항 중입니다.
안 그래도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사서, 고히 쟁여두는 중인데, 다른 책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니!

아, 떠들석하고 열정적인 공간에서 혼자 까무룩하니 졸아버리는 것, 그것도 매력적이군요! ^^

blanca 2011-04-25 21:5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이 책 재미있더라구요. 책 자체도 참 귀엽고 이뻐요. 저한테는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도 괜찮더라구요.

비로그인 2011-04-2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어르신과 제대로 통하셨군요ㅋㅋ 저는 책보다 '종 모양의 녹색빛'이 끌리는데요. 구경해보고 싶네요^^

blanca 2011-04-25 21:59   좋아요 0 | URL
저도요. 한 번 꼭 가보고 싶어요. 두 어르신 ㅋㅋㅋ. 예전에는 노인들이 저와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의 미래라는 게 확 와 닿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25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에코가 항상 어려웠어서 말이죠, 이 책도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그래도 대담집이어서 좀 나으려나요?^^

어른들 틈에 끼어 앉아 얘기를 들으며 까무룩 조는 풍경, 어렸을때 할아버지 할머니랑 돌아다닌 제 전매특허였는데 말이죠~^^


blanca 2011-04-25 21:59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저도 에코 책은 이게 처음이랍니다.--;; 영화나 봤을까요. 안 어려워요. 정말 할아버지들이 정겹게 수다를 떠시더라구요^^

잘잘라 2011-04-2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단락이, 읽으면서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게, 만약 그림으로 리뷰를 쓴다면 보탤것도 뺄것도 없이 그대로 아름다운 작품이 될것 같아요. ^ ^

blanca 2011-04-25 22:00   좋아요 0 | URL
메리포신스님, 지금도 저는 그 풍경이 너무 그리워요. 정말로. 이제는 무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들밖에 없으니 때로 서글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