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성. 평. 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이리 저리 뒤척이다 문득 중학교 윤리 선생님의 음성이 들려 화들짝 잠이 깼다. 콧날이 오똑하고 눈이 서글서글했던 여선생님의 특유의 억양이 생생했다. 한 차시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핵심 내용을 뽑아 질문을 만들고 답도 주셨다. 단 하나의 문제였는데도 소위 임팩트가 대단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 윤리를 잘 했다. 선생님은 더욱더 기분이 좋아지셔서 수업 말미에 이르면 '형. 성. 평. 가'를 부르짖었다. 우리는 이미 답이 주어지는 문제를 또박또박 받아 적었다.   

대체 몇 번을 봤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티비에서 해 줄 때마다 봤던 것 같다. 그런데 기어코 또 보고 말았다. 일요일 새벽. 너무 늦어서 찰리가 학교에 돌아가는 씬까지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지만 봐도 봐도 멋진 탱고장면은 제대로 봤다. 삶의 후반부에서 청춘을 동행하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삶과 시간을 조감하게 해 줄 수 있어 대부분 성공한다.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의 미덕은 관객이 나이들어가며 시점이 고등학생 찰리에게서 알파치노가 연기한 프랭크로 서서히 이동해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질릴래야 그럴 수가 없다. 나는 마치 찰리와 프랭크 사이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찰리를 봐도 프랭크를 봐도 가슴이 저릿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마침내 당도할 시간들. 얼마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퇴역중령 프랭크. 그의 자살 여행에 동행하게 되는 사립고등학생 찰리. 세상은 온전하게 똑같이 놓여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나이들어가며 저마다의 프리즘으로 굴절된 바깥을 전부로 인식하며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때로 답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찰리의 눈에는 아직 수많은 물음표가 있고 프랭크의 눈에는 미처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이 삭아서 비늘처럼 벗겨지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손을 잡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형성평가의 답처럼 명쾌하지 못한 수많은 질문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때로 그 질문을 밀어두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극중 프랭크의 말처럼 인생과는 달리 실수해도 괜찮은 탱고 스텝처럼 너그러운 영화다. 처음 봤을 때는 프랭크와 함께 탱고를 췄던 여배우 미라 소르비노가 이쁜 줄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정말 눈이 부시다. 이런 관점의 변화도 나이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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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파치노가 화를 내기 전에 그렇게 말하죠. 후와~ㅎㅎ^^

blanca 2011-10-10 13:24   좋아요 0 | URL
ㅋㅋㅋ 무슨 얘기인가 하다 뻥 터졌어요

마녀고양이 2011-10-10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탱고를 추는 장면, 정말 찡하잖아요......... 미치도록 찡하죠.
그리고 학교에서 변호하는 장면도 멋지구요, 저두 그렇게 늙어갔으면. ^^

blanca 2011-10-11 11:32   좋아요 0 | URL
마고님, 참 이상한 게 어렸을 때 봤을 때는 탱고씬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요전번에 보니까 확 와닿더라고요. 아, 넘 멋져요. 크리스 오도넬도 찾아 보니 가정을 일구고 대가족을 잘 이끌고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도 넘 인상적이에요.

비로그인 2011-10-16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리 선생님 하니, 저는 꽥 스러운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좀 아주 날카로운 칼이 스치는 느낌이 드네요~ 시간이 지나 다시 보는 영화. 꼭 여인의 향기가 아니더라도 왠지 blanca님의 얘기는 다른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습니다.

blanca 2011-10-17 10:29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꽥스럽다,고 하니 저도 고등학교 때 윤리샘이 떠올라서 갑자기 웃음이 나네요. ㅋㅋ 요새 자꾸 EBS에서 야심한 시각에 해주는 영화들이 빠져 잠이 모자라 죽겠습니다.^^

감은빛 2011-10-1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래전에 봤는데도 춤추는 장면만큼은 잊혀지지 않네요.
덕분에 저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blanca 2011-10-20 09:43   좋아요 0 | URL
저는 볼 때마다 좋더라고요. 전도연의 <인어공주>와 함께 한 세 번씩은 본 것 같습니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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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냐, 유신론자냐는 굉장히 내밀하고 미묘한 문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때로 굉장히 위험하고 무례한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누구든 무신론자였다 유신론자가 될 수도 있고, 유신론자였다 철저한 무신론자로 돌아설 수 있다. 그 경계는 철의 장막이 아니다. 모호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질문은 지금 당장 당신의 거취를 결정하라는 말처럼 때로 폭력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요?
상관없어요. 나는 괜찮아요. 

옆자리의 남자직원은 발끈했었다. 어쩌다가 우리의 대화가 그런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는 그 명철하고 활달한 남자직원의 무신론에 얼마간 반박했었던 것같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유신론자이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종교의 틀 안에서 나의 나약함을 보상받고 싶어하지만 이제 '전도'라는 것이, '유신론의 설파'라는 것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때로 횡포가 될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절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역도 성립한다. 내가 가지는 경험, 열등감, 편견의 틀 안에서 합리화하는 진리는 그것으로 족하다.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당신이 옳다. 당신들 모두가 옳다.

   
 

 이 책은 이제 더 이상은 진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현명한 것들을 구출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철저한 무신론자임을 고백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종교들이 진짜가 아니지만 이 비참하고도 고독한 생들에 유용할 수 있는 대목들을 끌어온다. 나약하고 결점이 많은 인간이 충분히 위로받고 지지를 받으며 삶의 전장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어서의 종교의 유용성을 직시한다. 이것은 유신론자에게도 무신론자에게도 얼마간 불편한 얘기다. 종교를 수단화하고 약간은 조롱하는 듯한 느낌에 그렇고(물론 진의는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안 믿는다는데 필요하니 구태여 믿어보라는 것 같아 영 꺼림칙하다. 진짜가 아니라지 않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것들을 구출하기를 바란다고 하지 않는가.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신이 없는 사회의 현저한 위험은 초월적인 것을 상기시키는 장치가 결여되어 있다는, 따라서 절망과 궁극적인 절멸에 채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신이 죽었을 때, 인간은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심리학적 중심 무대에 나서야만 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알랭 드 보통 앞에서 인간의 실존은 차라리 비극적이다.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 어떻게 할 수 없는 생존과 관련된 수많은 비참한 문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극복해 보려 아등바등하는 처절한 시도들. 그의 무신론은 인간의 실존을 직시하지만 유신론자가 되지 않으면 삶을 견뎌나갈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인간이 심리학적 중심 무대에 서는 것이 비극적이기만 한 것일까? 알랭 드 보통 앞에서는 인간적인 결점, 모순, 허점 들이 여지없이 노출된다. 그러니 우리는 보통에게 야단을 맞거나 잘못을 지적 당하면 순간 얼어버린다. 그런데 그의 앞에서는 성장하는, 극복하는, 위대해지는 인간에 대한 얘기가 없다. 그건 꼭 유신론, 무신론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종교의 유용함의 만남은 꼭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런 바람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건 주선자의 권한 밖의 일이다.   

여전히 그의 통찰은 유효하지만 어떤 한계 안에서만 맴도는 것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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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1-10-1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오자마자 사서 후르룩 훑었는데, 표지가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내용도 필이 좀 약했어요. 차분할 때 읽어보면 다르지 않을까 하고 묵혀두고 있는데.. 으음.. 맴돈다는 말씀 들으니 조금 더 묵혀놔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blanca 2011-10-11 11:34   좋아요 0 | URL
아, 이미 구입하셨다니 조금씩 읽어 보세요. 사실 보통 책 거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책은 진도가 참 안 나가더라고요. 리뷰도 훨씬 후에 쓰게 되었답니다.

마녀고양이 2011-10-1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장바구니에 들어있는뎅, 무지하게 고민되는 리뷰인걸요.
블랑카님, 이 책 살까요 말까요?

blanca 2011-10-11 11:35   좋아요 0 | URL
ㅋㅋ 마고님, 저는 일단 알랭 드 보통 책은 사고 본답니다. 그래서 저는 객관적인 조언은 못 드리지만 솔직히 강력추천한다고는(긁적 긁적) 못하겠어요.

짜라투스트라 2012-01-2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뷰에 크게 공감합니다. 인간이 신적인 존재의 도움없이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그렇게 힘들고,고통스럽고,잘못된 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저도 들더군요. 어쩌면 그런 인식이야말로 알랭 드 보통의 강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쨌든 리뷰 잘 읽었습니다.(참고로 알라딘에서는 다른 사람의 글에 이런 댓글을 처음 답니다. 이 책을 읽고, 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리뷰를 찾다가 이렇게 찾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blanca 2012-01-25 10:46   좋아요 0 | URL
muse8855님 반갑습니다. 공감하는 댓글은 언제나 반갑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도가니>를 봤다. 누구는 보고 나면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진다고 추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또 다른 누구는 아프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제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중
 
   

 

영화는 청각장애인학교에서 교장과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과 폭행을 자행했으나 솜방망이 처벌로 유야무야된 실제 사건을 다룬 공지영의 <도가니>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아내와 사별하고 어머니에게 천식으로 고생하는 딸을 맡긴 미술 교사 강인호(공유 분)가 안개로 뒤덮인 무진의 자애학원에 부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무진, 낯이 익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안개가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삥 둘러선다는 곳. <무진기행> 속의 '나'는 결국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비겁하게 결심한다. 강인호도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일까?  

   

 

어딘가 불편하고 우울한 표정의 아이들.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초임교사에게 아이들은 기대를 갖고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찬송가를 부르고 하나님을 찾고 뒤돌아서서는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작은 아이들에게 폭언, 폭행, 강간을 일삼는 교장과 교사는 그들의 범죄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지역 사회, 경찰, 검찰, 법원, 교육청과 결탁하여  악의 화신이 된다. 카메라는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죄의 대속을 위해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다시 그들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힌다.

돈과 이해 관계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 선과 도덕이 생존의 문제와 만날 때 인간이 당면하게 되는 딜레마에 대한 시선이 예리하다. 강인호 교사는 가난하다. 게다가 어머니와 아픈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다. 부임할 때 학교 발전기금으로 전세금을 빼서 기탁하는 그의 출발은 이런 미묘한 갈등의 지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들 재판 문제로 동분서주하는 그의 앞에서 침묵하기를 권하는 노모의 외침은 야속하기도 하지만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어 저릿하다.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옳은 것만을 하고 살 수 없으니까 그렇다,는 어머니의 절규는 때로 올바르고 좋은 것들을 지키고 사는 삶을 포기해야 하는 생존의 비극성에 닿아 있다. 이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다. 

   
  오히려 문제는, 공감 능력 따위는 과감히 내던지고 앞만 보면서 달려가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도모해 나갈 수조차 없는 시스템의 압력 때문에, 우리가 애써 공감을 거부하고 있는 데 있지는 않을까.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수전 손택은 연민이 얼마간 뻔뻔한 감정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공감으로 나아가 적극적으로 타인의 고통의 해결을 위한 개입의 지점까지 닿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감'은 행동, 그것도 얼마간의 포기와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어쩌면 상당히 두렵고 위험한 감정이기도 하다. 내부고발자가 되고 그것이 자신의 생계를 위한 수단을 잃을 수도 있음을 담보로 한다면 누구나 갈등없이 정의를 위한 행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 <도가니>는 이 딜레마를 직시한다. 인두겁을 쓰고는 결코 저지를 수 없는 악행들의 나열과 그것에 정의롭게 대항해 나가는 불가능맨 대신 공감마저 무력화시키는 이 사회의 잔인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 안에서 선택을 강요당해야 하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상의 모습은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자화상이다.  

이 영화는 미완이다. 알랭 드 보통의 얘기는 따라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영화를 봄으로써 우리는 결국 절묘하게 고조된 감정, 슬픔, 흥분에 도달하게 된다. 극장을 떠나면서 우리는 스크린에 투사된 가치에 근거하여 자신의 전존재를 재평가하기로, 그리고 자신의 타락과 성마름을 없애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다음날 저녁만 되면, 그러니까 온종일 이런저런 모임을 가지고 짜증나는 일을 겪은 뒤에는, 우리의 영화적 경험은 이미 망각의 길로 향하게 된다.
-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인터넷은 이 영화로 도가니처럼 들끓고 있다. 경찰의 재수사 결정 소식은 영화를 보고 나와 이 고조된 분노의 감정을 잊기 전에 함께 그것을 공유한 네티즌들의 힘이 모인 결과이기도 하다. 무기력하게 세상은 그렇고 그런 것이다,라고 체념하는 감정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순응이다. 크게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사치스러운 연민 때운이라고 해도 공감과 악에 대한 분노는 언제나 가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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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9-2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 드 보통 이 책 홍보하러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던데 님은 이미 읽으셨군요^*^
도가니, 책으로 읽고는 혼자 분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꼭 봐야 할듯한 의무감.
오늘 신문보니 이 학교 명칭 변경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이런 **놈들.
당장 폐교시키고, 재수사 들어가야죠. 당연히....

blanca 2011-09-29 22:59   좋아요 0 | URL
세실님, 알랭 드 보통이 왔군요. 지금 저 책 읽고 있는 중인데 전작들보다 신랄하고 예리한 맛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영화 보다가 미친 사람처럼 '아이 씨' 그러다가 울다가 했네요. 재수사 시작이 어떤 결론을 맺을지 매의 눈을 뜨고 모두들 함께 지켜 보았으면 합니다.

순오기 2011-09-29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티즌의 힘이 발휘돼서 재수사해서 제대로 응징하면 좋겠어요.
날새면 독서회원들과 조조로 도가니 보러갑니다.

blanca 2011-09-29 23:0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독서회원들과 영화 이미 보셨겠어요. 영화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일들도 몇 몇 있어서 성찰의 계기를 가지기도 했어요. 제가 공작가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도 수정된 부분이 있고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사'라는 것이 가지는 맹점에 대하여서도 생각이 많아졌답니다.

비의딸 2011-09-29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재수사 한다는 경찰의 발표가 오늘 신문에 났더군요. 이번에는 제대로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 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blanca 2011-09-29 23:06   좋아요 0 | URL
비의딸님, 재수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단순히 하나의 액션에 그치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식지 않는 도가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레이야 2011-09-2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가니 보셨군요. 영화의 힘이 책보다 크다는 걸 실감합니다.
재수사는 들어갔지만 일사부재리가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에요.
학교는 이미 폐교했다는데 이건 뭐..ㅠ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고3 큰딸 사줬어요. 보통의 책을 모두 좋아해 읽었거든요. 그래서..
공부하다 쉬면서 읽고있다고 하네요.(기숙사 있다보니^^)
딸 다 읽고 나면 저도 봐야겠어요.

blanca 2011-09-29 23:08   좋아요 0 | URL
아, 공지영씨도 그런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영화의 힘. 아, 보통의 책을 선물해 줄 수 있는 따님이라니. 저도 제 딸이 좀 그렇게 컸으면 좋겠는데^^;; 오늘 '곰 세 마리' 줄창 읽어주느라 힘들었답니다. 감기 걸려 목도 아픈데 말이에요--;;

cyrus 2011-09-2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영화를 본 친구들에게
소설을 읽어봤냐고 물어봤는데.. 안 봤다거나 이 영화가 소설 원작인지 모르는 친구도 있었어요 ^^;;
영화 개봉 덕분에 알려져 있지 않은 문제의 사건이 다시 한 번 재조명받게 되어서
다행인거 같습니다.

blanca 2011-09-29 23:09   좋아요 0 | URL
저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이런 식의 재조명은 정말 바람직한 것 같아요. 영화의 힘, 문학의 힘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는 것 같아 괜시리 흐뭇해집니다.

비로그인 2011-09-2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뉴스 보고 좀 놀랐어요. 도가니 소식이 연달아 나오던걸요. 이 책 나왔을 때 왜 읽어볼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네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고 하면, 일단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순수한 예술이 아니라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써내려간 소설이라면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부담감 때문에요. 영화를 한 번 볼까, 고민하고 있네요.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 아들이 만든 영화 보려고 했는데 ( '')...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이...

blanca 2011-09-29 23:13   좋아요 0 | URL
말없는수다쟁이님, '코쿠리고 언덕에서' 말씀하시는 거죠. 저도 담주에 보려고 하는데요. 민망하긴요. 저도 사실 소설이 나왔다고 했을 때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답니다. 아무래도 영화는 좀더 실감나게 사건을 재현하여 사람들의 직접적인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부터도 그랬으니까요.

stella.K 2011-09-30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의 작가 정신은 높이 사 줄만은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은 어딘가 모르게 치우친 감이있어
별로 신뢰는 안 가요. 나름 영화 우행시 보고 저건 좀 아닌데 하는 게 있었거든요.
인정주의로 경도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하잖아요.
이 영화도 그럴 것 같긴한데 하도 들끊으니 한번 보고 싶긴하네요.
어느 날 조조로 몰래 살짝 볼까봐요. 리뷰 잘 봤습니다.^^

blanca 2011-09-30 22:51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영화 우행시 보셨어요? 저는 책만 읽었는데 읽는 동안 감정적으로 많이 동요하고 공감하긴 했지만 지금 와서 사형 제도에 대하여서 공작가의 얘기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주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워낙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많고 특히 아동 상대로 벌어지는 추악한 범죄들은 무기징역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영화 보시면 좋겠어요. 잘 만든 영화이고 가슴에 호소하는 메시지의 무게가 상당합니다. 저도 크게 내켜서 본 영화는 아니지만 보고나서는 보기를 잘 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조로 보시기에는 너무 어둡긴 하네요^^;;
 
가든파티 (반양장) 펭귄클래식 79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한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집 근처 백화점 옥상에는 간이 테라스가 있다. 탁 트인 시야로 뽀송뽀송한 구름이 잡힐 듯하고 푸른 하늘이 마치 바다처럼 너울거린다. 그런데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재개발을 기다리는 노후화된 작은 집들과 잿빛 담들이 다닥다닥 붙어 왠지 조금 서럽게 나를 올려다 본다. 마치 삶 같다. 아름답고 희망찬 것들만 보고 살 수는 없다. 발을 디딜 땅에, 누일 집 한 칸에, 입어야 할 옷과 먹고 마셔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그러 모아야 살아 낼 수가 있다.  그건 '나'의 얘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얘기이기도 하니 우리의 얘기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집으로 오는 가파른 경사로의 가장 아래쪽에 그 작은 초가집들이 모여 있었다. 초가집들과 그들의 집 사이로 큰 도로가 나 있기는 해도 사실 거리는 가까웠다. 초가집들은 무엇보다 눈엣가시였고 그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전혀 없었다. 초콜릿 빛 갈색으로 페인트가 칠해진 자그마하고 초라한 집들이었고, 손바닥만 한 텃밭에는 양배추 줄기와 병든 암탉, 토마토 깡통만 뒹굴었다.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는 셰리던 가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은빛 구름 같은 연기와 차원이 달랐다. 그 거리에는 세탁하는 여인들과 청소부, 구두장이 등이 살았다.
-p.103 <가든파티> 중


더할 나위 없는 날씨에 수백 송이의 만개한 장미꽃 속에서 가든파티를 열게 된 셰리던 가에는 그 초가집들 중 한 곳에 사는 사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섯 아이와 아내를 남겨 놓고 죽게 된 소식이 전해진다. 이에 셰리던 가의 딸 로라는 가든파티를 즐기는 것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꺼림칙함을 가지게 된다. 로라가 파티에서 남은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아 그 집을 방문하게 되는 이야기가 <가든파티>의 사연이다. 로라는 자신의 화려한 모자에 대해 그 초라한 집의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이것은 마치 이렇게 풍족하게 사는 것이 미안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죽음과 가난을 지척에서 목도하게 되는 부잣집의 철없는 아가씨의 모습은 성장의 관문을 그녀가 통과하여 이제 그녀가 진짜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을 엿보게 되는 것과 같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를 외면하고 셰리던 가의 거대한 은빛 구름 같은 연기를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말을 멈추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p.114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한다. 여기에 진실이 있다고 덧붙인다. <가든파티>는 호사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날카로운 진실에 대한 성찰이 지나간 자리에 이 짧은 이야기의 중량감이 느껴진다. 생애 마지막 책을 남겨 놓고 요절한 작가에게 깨달음은 한꺼번에 달려왔었나 보다. 우리는 그 깨달음들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들을 그저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된다.  

보기드문 아름답고 가볍지 않은 단편집.
청량한 푸른 하늘과 판자촌의 어딘가쯤에 아직도 작가의 시선은 머물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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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2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읽으신 맨스필드 단편집, 저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안 읽어봤어요.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는데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blanca 2011-09-27 10:51   좋아요 0 | URL
cyrus님 갖고 계시다면 이 좋은 날씨에 꼭 시도해 보세요. 묘사력이 아주 탁월한 작가랍니다. 시인 같아요.

비로그인 2011-09-2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이야기였네요. 거대한 은빛 구름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를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요. 이건 저한테도 해당하는 이야기 같아요. 글 잘 읽었어요 :)

blanca 2011-09-27 10:52   좋아요 0 | URL
예, 젊은 여류작가가 그냥 예쁘기만 한 얘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참혹한 진실에 대한 얘기를 가감없이 묘사해서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오늘 하늘은 아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빛깔이네요.

비로그인 2011-09-2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제 창 너머에는 겨울 내내 구멍만 뻥 뚫려 있던 건물들이 이미 사라져 버렸답니다.

2미터나 될까 한, 길 하나를 건너 휑하니 건물들이 사라져 있는 모습이 뭔가를 떠올리게 하네요. 언젠간 이곳도 그렇게 삶이 통채로 사라지는 그런 휑한 곳이 되겠지요. ^^

blanca 2011-09-27 10:53   좋아요 0 | URL
요새는 무언가 통째로 들어내고 다시 세우는 일들이 너무 빈번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골목길이 참 소중하고 또 아련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일인가 의문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프레이야 2011-09-26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더기 조각 같은 구름이 아니라 이 가을 바다 수평선에 맞닿을 정도로 낮게 깔려
두둥실 흘러가는 흰구름을 보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오늘 전 그런 구름을 보고 왔어요. 그래도 그런 호사쯤은 이 가을에 누려도 되겠죠.^^

blanca 2011-09-27 10:55   좋아요 1 | URL
그럼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느끼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잖아요. 프레이야님, 사시는 곳은 바다내음도 맡을 수 있고 수평선도 보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실까요.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부산역에 내릴 때 풍겨오던 그 바다냄새가 참 그리워요.
 

 

 

 

구름 한 점이 없어도 구름이 휘핑크림처럼 쌓여 있어도 찬연하다. 우산 밑에서 고개를 떨구어야 했던 숱한 나날들은 거짓말처럼 가버리고 절로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쳐들게 하는 하늘. 어딘가에 가두어 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설픈 사진과 조야한 말재간으로 가능할 성싶지 않다.  

고3, 2학기 가을 바람이 스산해지면서 입시의 중압감이 본격적으로 느껴졌다. 하늘을 감히 보지 못하고 바람만 느꼈다. 해방을 예감하게 하는 야릇한 전조가 싫지 않았다. 입사해서는 결산과 실적을 예고하는 계절. 어리버리한 신입사원은 실적보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결산업무가 자신에게 떨어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라 가을을 놓쳐 버렸다. 첫애를 가진 임산부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산고에 대한 공포와 잦은 요의로 가을밤을 전전반측하며 보내느라 푸른 하늘을 등졌다. 작은 생명체가 젖을 떼고 두 발로 서고 걷고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까지 하늘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사계절 병풍에 그려져 있는 달, 그리고 거지 법사와 소설속 화자인 '나'의 삶은 평행하게 흐르는 듯하다 결국 겹친다. 가을 병풍, 지금의 '나'로부터 꼭 십년 전, 서른 살 때의 '나'  이미 '나'는 충분히 늙어 있다.  미루야마 겐지는 망설이지 않고 단언해 버린다.

그러나 비쩍 마른 그의 몸은 추억에 가득 차,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행복했던 나날들을 생생하게 기억해낸다.-p.61 

봄과 여름에는 가을과 겨울을 상상하지 못하지만 가을에는 겨울의 차가움을 상상할 수 있고 봄과 여름의 따스함과 설익음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좋은 것 같기도 한 모호함. 나는 지금 유년을 다시 살고 있다. 아이를 먹이는 것도 재우는 것도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만큼 힘들지 않다. 아이와 함께 논다는 것이 영 낯설고 어색했다. 부모교육을 받다 보니 나를 놀아준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나는 내 안의 항상 심심하고 외로웠던 그 어린 '나'를 다시 아이 앞에 불러내야 할 것 같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병풍을 두고 이루어지는 <달에 울다>의 '나'의 회고. 여기 나의 회고는 아이를 앞에 두고 이루어진다. 삼십 년 전. 이십 년 전. 십년 전.  

"잘 있어"하고 법사는 중얼거린다.
바람 소리가 마치 칼을 휘두를 때 나는 신음소리 같은 초원을 헤쳐나가며,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잘 있어"를 되풀이한다. 그렇게 그는 '어제'와 헤어져 간다.
-p.80 

가을은 그런 계절. '어제'와 잘 헤어져야 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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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2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 하늘은 언제 어떤 사각 프레임에 담겨도 멋져요!
외로웠던 어린 날의 '나'를 불러내어 분홍공주와 같이 놀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가을은 조금 외로워도, 쓸쓸해도 좋은 계절이어요!^^

blanca 2011-09-25 20:37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순오기님. 정말 살 맛이 나는 계절이지요. 요 며칠 새 날씨가 정말 너무 좋아요. 야외에 앉아 있으면 살아 있다는 게 참 눈부시게 느껴지는 나날들입니다.

프레이야 2011-09-2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와 잘 헤어져야 하는 계절!
블랑카님의 언어창고엔 찬란한 언어들이 얼마만큼이나 있는걸까요?^^
잘 헤어져야 잘 만날 수 있는 것이겠죠!
어디에 있어도 마음에 가을바람 선선하게 안기는 주말 보내고 싶어요. 블랑카님도^^

blanca 2011-09-25 20:3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이 좋은 계절 '감기'님의 왕림의 조짐이 또 보이네요. 호되게 앓는 편이라 걱정입니다. 벌써 두 번째인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은 행복한 주말 마무리하고 계시나요.

oren 2011-09-2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동네 마을도서관에 나와,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서 '가을 바람'을 느껴가며 '커피'를 즐기면서, blanca님의 이 글을 읽고 있답니다. 오늘은 비록 하늘에 구름 한점 없지만 벤치 한켠에서는 어느새 벌써 샛노란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고 있네요. 가을은 대체로 제겐 '너무 슬픈 계절'인 것 같아 애써 가을의 '좋은 것들'만 보고 느끼려 애쓰는 그런 계절이지만, 우리들 모두에겐 각자 저마다의 '그런' 계절이 또 있겠지요. 어김없이 또 찾아온 그런 가을도 머지않아 또 훌쩍 우리곁을 떠나가고 말겠지요. . . '좋은 가을' 되세요. . .blanca님.

blanca 2011-09-25 20:40   좋아요 0 | URL
oren님 읽기만 해도 얼마나 찬란한 풍경인지. 도서관 벤치에서 커피까지^^ 저는 오렌님 댓글 읽을 때 하늘을 보고 있었어요. 아, 가을이 은근히 신산하기도 하지요. 겨울이 올 테니까요. 그래도 가장 살아 있다는 것에 즐거움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잘라 2011-09-2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감각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속인다. -괴테

사진과 프로필 글귀가 잘 어울려요. 하늘만큼 사람도 멋있게 보이는 가을,이 좋아요.

blanca 2011-09-25 20:4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저도 모르게 저도 자꾸 감각이 느끼는 것들을 외면하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또 겨울 추위에 대한 예감 때문에 좀 움츠려지기도 하고 한 살 더 먹을 일이 아연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정말 근사한 날씨들입니다.

cyrus 2011-09-2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막 해가 질 무렵의 가을 구름도 운치가 있고 멋져요. 그런데 여기 대구는
낮에만 여름인거 같아요. 밤이 되서야 가을 바람이 불어서 선선해요.
그래서 여름이 한순간에 지나간거 같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blanca 2011-09-25 20:4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대구는 아직 그렇군요. 대구 얘기만 하면 괜시리 반가워져요. 아버지 고향도 할머니와의 시간들도 다 대구인지라. 언젠가는 대구를 한번 꼬옥 가서 제 유년 시절들의 추억들을 되짚어 보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1-09-2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blanca님! ^^

blanca 2011-09-25 20:43   좋아요 0 | URL
무엇이요? ㅋㅋㅋ 그냥 다 멋진 걸로 알게요, 바람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