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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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냐, 유신론자냐는 굉장히 내밀하고 미묘한 문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때로 굉장히 위험하고 무례한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누구든 무신론자였다 유신론자가 될 수도 있고, 유신론자였다 철저한 무신론자로 돌아설 수 있다. 그 경계는 철의 장막이 아니다. 모호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질문은 지금 당장 당신의 거취를 결정하라는 말처럼 때로 폭력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요?
상관없어요. 나는 괜찮아요. 

옆자리의 남자직원은 발끈했었다. 어쩌다가 우리의 대화가 그런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는 그 명철하고 활달한 남자직원의 무신론에 얼마간 반박했었던 것같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유신론자이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종교의 틀 안에서 나의 나약함을 보상받고 싶어하지만 이제 '전도'라는 것이, '유신론의 설파'라는 것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때로 횡포가 될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절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역도 성립한다. 내가 가지는 경험, 열등감, 편견의 틀 안에서 합리화하는 진리는 그것으로 족하다.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당신이 옳다. 당신들 모두가 옳다.

   
 

 이 책은 이제 더 이상은 진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현명한 것들을 구출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철저한 무신론자임을 고백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종교들이 진짜가 아니지만 이 비참하고도 고독한 생들에 유용할 수 있는 대목들을 끌어온다. 나약하고 결점이 많은 인간이 충분히 위로받고 지지를 받으며 삶의 전장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어서의 종교의 유용성을 직시한다. 이것은 유신론자에게도 무신론자에게도 얼마간 불편한 얘기다. 종교를 수단화하고 약간은 조롱하는 듯한 느낌에 그렇고(물론 진의는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안 믿는다는데 필요하니 구태여 믿어보라는 것 같아 영 꺼림칙하다. 진짜가 아니라지 않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것들을 구출하기를 바란다고 하지 않는가.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신이 없는 사회의 현저한 위험은 초월적인 것을 상기시키는 장치가 결여되어 있다는, 따라서 절망과 궁극적인 절멸에 채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신이 죽었을 때, 인간은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심리학적 중심 무대에 나서야만 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알랭 드 보통 앞에서 인간의 실존은 차라리 비극적이다.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 어떻게 할 수 없는 생존과 관련된 수많은 비참한 문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극복해 보려 아등바등하는 처절한 시도들. 그의 무신론은 인간의 실존을 직시하지만 유신론자가 되지 않으면 삶을 견뎌나갈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인간이 심리학적 중심 무대에 서는 것이 비극적이기만 한 것일까? 알랭 드 보통 앞에서는 인간적인 결점, 모순, 허점 들이 여지없이 노출된다. 그러니 우리는 보통에게 야단을 맞거나 잘못을 지적 당하면 순간 얼어버린다. 그런데 그의 앞에서는 성장하는, 극복하는, 위대해지는 인간에 대한 얘기가 없다. 그건 꼭 유신론, 무신론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종교의 유용함의 만남은 꼭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런 바람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건 주선자의 권한 밖의 일이다.   

여전히 그의 통찰은 유효하지만 어떤 한계 안에서만 맴도는 것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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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1-10-1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오자마자 사서 후르룩 훑었는데, 표지가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내용도 필이 좀 약했어요. 차분할 때 읽어보면 다르지 않을까 하고 묵혀두고 있는데.. 으음.. 맴돈다는 말씀 들으니 조금 더 묵혀놔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blanca 2011-10-11 11:34   좋아요 0 | URL
아, 이미 구입하셨다니 조금씩 읽어 보세요. 사실 보통 책 거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책은 진도가 참 안 나가더라고요. 리뷰도 훨씬 후에 쓰게 되었답니다.

마녀고양이 2011-10-1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장바구니에 들어있는뎅, 무지하게 고민되는 리뷰인걸요.
블랑카님, 이 책 살까요 말까요?

blanca 2011-10-11 11:35   좋아요 0 | URL
ㅋㅋ 마고님, 저는 일단 알랭 드 보통 책은 사고 본답니다. 그래서 저는 객관적인 조언은 못 드리지만 솔직히 강력추천한다고는(긁적 긁적) 못하겠어요.

짜라투스트라 2012-01-2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뷰에 크게 공감합니다. 인간이 신적인 존재의 도움없이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그렇게 힘들고,고통스럽고,잘못된 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저도 들더군요. 어쩌면 그런 인식이야말로 알랭 드 보통의 강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쨌든 리뷰 잘 읽었습니다.(참고로 알라딘에서는 다른 사람의 글에 이런 댓글을 처음 답니다. 이 책을 읽고, 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리뷰를 찾다가 이렇게 찾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blanca 2012-01-25 10:46   좋아요 0 | URL
muse8855님 반갑습니다. 공감하는 댓글은 언제나 반갑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