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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평점 :
나는 리영희를 때로 이영희라 불렀다. 그의 세계관과 역사관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아니, 그의 사상의 세례를 받아야 할 만큼 사회와 맞닿아 있는 지점의 자유를 갈구하는 절박함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자잘한 현실을 관념의 구역에 밀어넣고 슬쩍 눙치며 방관하기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비겁했다,고 고백할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대화'를 펼치게 되었다. 잠들기 전 책 속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던 그의 말들은 밤이면 나의 머리와 마음을 뛰어다니며 흔들리는 배를 탄 듯 멀미를 일으켰다. 그건 걸핏하면 용공분자로, 빨갱이로, 의식화의 원흉으로 매도되었던 그가 회고하는 75년간의 삶이 결국 나의 피를 타고 흐르는 의식의 혈육적 문화역사를 재생하고 흔들어 깨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일은 결국 '우리'와 '과거'를 두루마리 풀듯 주루룩 펼치지 않으면 막다른 한계에 머리를 박고 돌아서고 또 되돌아서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지식인과 지성인의 경계
기능적인 지식인에서 현실로 포박해 들어가는 지성인이 되는 길에는 아주 얇은 경계막이 있다. 그 막을 찢는 일 그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어떤 계기로 인하여 용기백배해서 그 막을 찢어 발겨 버리고 난 뒤 우리는 우리 삶의 파열을 때로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지성인이 되는 일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제물로 바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 일과 다름아니다. 편안하고 그럭저럭 굴러가는 나의 일상들과 그 일상들에 저도 모르게 깊이 몸을 담그고 있는 나의 전존재가 일거에 파도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하나에 우리는 주춤하고 그 경계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다. 그 막을 통하여 고통스럽게 '현실'을 엿보는 일은 비겁한 지식인이 감수해야 할 하나의 천형이다. 종국에는 우리는 아파하지도 않고 스리슬쩍 염탐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타락'의 한 형태다. 알았기에 그리고 그 앎에 멈추었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지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언제나 내 앞에 펼쳐진 형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신조로서의 삶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바로 그것이 '형벌'이었다.
-p.7
리영희는 1977년 저서들로 인한 반공법 위반으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갔던 기억을 30년이 지나간 뒤에도 잊지 못한다. 대공분실 옛자리인 남영역 앞을 지나가면 지금도 소름이 돋아 눈을 감는다고 한다. 그 형벌은 기억을 통한 감각까지 점령하였다. 진실 앞에서 행동하는 일은 이렇게나 처절한 자기희생적 투신을 요구한다. 나는 그럴 수 없고 그러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의 희생이 남긴 열매를 생래적으로 얻은 권리로 여기고 주머니에서 흘러 떨어져도 주워담지 않고 그저 지나가 버리는 그런 무감각을 이제는 흔들어야 겠다. 그것은 산모가 흘린 피가 얼룩진 강보에 싸인 것이다. 시선을 맞추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 보듬고 키워야 한다.
인간 그 본질로서의 무게
그의 인간관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자유는 '인간' 생명의 원초적 본성이며 평등은 개개인의 집단적 생존이 형성된 뒤에 생명이 요구하는 '추후적, 사회적 조건'이라고 얘기한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떤 식으로 조화 통합하여야 되는지에 대한 암시를 준다. 인간의 하반신적, 동물적, 물직절 조건을 자본주의로, 상반신적, 인간적, 정신적 자율성을 사회주의로 담아내어 그 둘을 조화시켜 나가려는 노력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모습은 여즉까지 그를 빨갱이라고 낙인찍어 비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철저히 오해하고 그의 사상을 오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공산주의도 반공주의도 사상적 자폐증으로 곧 자살이라고 비판한다. 인간의 본성에도 또 그 본성이 충족되고 난 다음의 연민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연대에도 그의 시선은 머무른다. 인간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일이 때로는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기주의는 결국 자멸로 이르는 길이다. 자본주의를 신념처럼 고수하다 쓰나미처럼 연이어 경험해야 했던 그 비극의 현장에서 그의 얘기는 깊은 울림을 가진다. 완전한 자유는 타인과의 경계 위에 걸처져 있다. 손을 잡지 않고는 그것을 실현할 수 없다.
우리의 못남을 돌아보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권력에 빌붙었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고스란히 미군정의 권력 대리자로 등용되어 분단을 고착화하고 극우 반공주의의 폭압성으로 민족의 주체성을 갉아 먹고 제국주의에 철저히 유린 당하고 있는 역사적 과거에 대하여 그는 통탄한다. 우리의 것은 우리의 것으로 그들의 것은 그들의 것으로 돌려 주어야 하는 그 기본적 일이 이렇게나 요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질곡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뼈아프게 방증한다. 우리 손으로 찢어야 하는 노비문서, 우리가 우리의 못남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긍정으로 재탄생하는 그 필요불가결한 과정을 망실하고 우리의 상황은 언제나 지극히 가변적이고 의존적이며 불투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고 자학한다. 이건 차라리 하나의 업 같다.
그는 민중적 공감과 저변의 대중 속 운동의 목표와 방향, 행동양식이 상향적으로 기능했던 모택동식 사회혁명에 감응하는 바가 컸다. 또한 마치 닮은꼴 복제처럼 미국의 분단획책에과 이간질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베트남이 결국 너무나 자명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지도자 호지명의 기치 아래 통일을 이루어 내고 말았던 사례에 경도된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그가 국내 정세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는 하나의 등불이 된다. 기본적으로 그는 역사의 전진을 믿는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인간 본질에 대한 긍정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 대한 명철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나름의 문제의식, 분석으로 가공한 그의 글은 진실을 나누고자 했던 그의 소망의 결실로 민주화투쟁의 도화선이자 사상적 지주가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 서문 중
고통을 무릅쓰지 않고 다가갈 수 없는 것들을 듣는 일은 힘들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면죄부를 주어야만 견딜 수 있는 우리네 같은 범인들에게 그의 생은 하나의 비수 같다. 그럼에도 가슴을 들이대는 것은 읽는다는 것이 그가 우상에 도전하고 민족적 미신에 도전한 일을 조금이라도 나눠 갖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의 삶을 들어야 한다. 듣고야 말아야 한다.
p.s. 분량과 내용면에서 얼핏 지루한 첫인상을 줄 수 있는데 막상 읽게 되면 그의 입담과 드라마틱한 삶, 편집의 미덕이 어우러져 읽는다,는 행위 자체를 잊게 된다. 1929년 금광으로 유명한 평북 운산 북진에서의 출생으로부터 최근까지의 그의 삶이 현대사와 어우러져 펼쳐지는 장대한 드라마는 하나의 대하 소설 같다. 현대사에 대한 갈증도 더불어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말과 글이 일치하는 리영희가 쉽고 체계적으로 역사적 사실들의 얼개를 짜 보이는 일은 하나의 감동적인 강의를 듣는 경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