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찰나다. 미숙하고 아리고 눈부시다.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며 나는 더이상 마냥 젊지 않다는 느낌, 무언가 틈새에 낀 느낌. 애매한 시점이다. 이 지점에서 바라보는 청춘은 가혹하고 부럽기도 하고 진저리 나기도 하고 여기에서 보는 노년은 두렵기도 하고 한편 다 겪어낸 그 잔잔함에 끌리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라는 작가는 노벨 문학상에 여러 번 거론되었고 동료 시인에게 자신의 아내를 양도하겠다고 약속하는 스캔들, 세 번의 결혼 등으로 근대 일본 문학계에서도 문학성 뿐만 아니라 사생활 면에서도 대단히 주목을 받았던 작가다. 탐미주의, 페티시즘 등이 기저에 깔려 있는 그의 작품들은 독특하게도 퇴폐적이거나 난해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섬세한 시선,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끌고 가는 작가의 힘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매력이 있다. 작가의 세번 째 아내,처제 들의 실제 사연에서 끌어낸 <세설> 같은 작품은 많은 분량이 적게 느껴질 정도로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미친 사랑>은 어쩌면 작가 자신이 가장 솔직히 드러낸 자신의 욕망일런지도 모른다. 까페 여급이었던 열다섯 살의 소녀와 기묘한 동거를 통해 그녀의 성장과정과 성숙을 관찰하고 때로 주도하기도 하는 중년 사내의 이야기는 소재면에서 언뜻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음에도 이야기 전반에서 그런 퇴폐적인 분위기를 쇄신하는 기묘한 힘이 있어 쉽게 빨려들어간다. '나오미'라는 서양색이 짙은 이름의 소녀가 소위 밀고 당기기의 명수로 '나'라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성실했던 직장인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은 러시아 작가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떠올리는 면이 있다.

 

 

 

 

 

 

 

 

 

 

 

 

 

 

 

 

 

미성숙이 나를 왜 매혹하는가, 그것은 순수하고 젊고 금지된 요정의 아름다움이 주는 명쾌함 때문이라기보다 많은 것이 약속되지만 거의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틈새를 무한한 완전성들이 메꾸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보코프 <롤리타> 중 

 

"내 삶의 빛이오,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이라고 명명했던 롤리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소녀들을 '님펫'이라 부르며 도착적인 집착에 빠졌던 험버트는  <미친 사랑>의 가와이 조지가 '나오미'라는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며 그녀의 소녀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과 대단히 닮아 있다. 시차, 공간을 두고 이 무모하고 집착이 많고 현실 계산에 무능한 두 사내는 만난다. 그들이 소녀들에 다가갈수록 그들의 삶은 소진되고 헝클어지고 소외된다. 돌아온 나오미를 다시 아내로 맞는 가와이 조지와는 달리 험버트는 남의 아내가 되어 만삭이 된, 이제는 더이상 롤리타가 아닌 롤리타를 씁쓸하게 대면해야 했지만. 서늘한 마지막의 그 차가운 여운은 두 작품을 넘나든다.

 

우리나라에는

 

 

 

 

 

 

 

 

 

 

 

 

 

 

할아버지 시인 앞에 나타난 관능의 현현, 소녀 '은교'가 있다.

오십이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 앞에서 시인 이적요는 '사랑은 본래 미친 감정'이라고 설파한다. '변태적인 애욕' 대신 '생로병사를 이기는 관능'으로 소녀에 대한 감정은 합리화된다.

나오미도 롤리타도 은교도 그녀들의 그 미성숙, 저돌적이고 무모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정념, 아름다운 찰나의 육체로 남자들의 욕망을 점화한다. '소녀'는 '찰나'다. 그러니 그 집착은 시한부로 끌날 수밖에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워가야 하는 삶에서 시지푸스처럼 그렇지 않다고 되뇌며 끊임없이 떨어져 내려오는 바윗덩어리를 굴려 올리는 그 무모한 치기에 대한 이야기. 그것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은유의 대상으로 소녀들을 등장시킨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느 곳에 있는 인간이든 인간은 누구나 얼마쯤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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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7-0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사랑과 롤리타, 은교는 참 많이 닮아 있군요.
소녀는 찰나다...... 폭풍같은 소녀, 소년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답도 들어있는듯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생각도......

blanca 2013-07-07 22:06   좋아요 0 | URL
세실님, 신기한 게 이런 비슷한 욕망에 관련된 책이 동서양, 시간차를 두고 나란히 꽤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판타지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가장 쉽게 잘 읽혔던 것은 <미친 사랑>이었어요.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이것도 작가의 능력인 것 같아요. <세설> 같은 소설은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같은 작가가 쓴 책이 맞나 싶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