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주말에 가족과 종종 가는 편이다. 아이는 슬프게도 그곳의 책이 아닌 각종 예쁜 스티커, 문구류 쇼핑에 재미를 붙여버렸다. 만삭인 나는 거의 마지막 친구와의 만남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약속 장소를 교보문고로 정하였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앞에서 내렸는데 습도 80%의 여름, 교보문고는 머나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대한 빨리 걸어야 조금이라도 서점에서 책을 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종종 걸음을 해보지만 보통 사람의 평상 걸음 속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광화문 광장 앞 전경들이 도열해 있다. 그 전경들이 마주하고 있는 시위대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어린 대학생들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 봤다. 그 아이를 둘러싼 전경들도 그 아이들 만큼이나 어리다. 분명히 지금 귀 기울이고 주목해야 하는 이야기는 교묘하게 묻혀 버렸다. 시위도 아니고 그저 열댓명의 대학생들이 차분히 의견을 이야기하는 현장에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되묻고 싶었다.

 

 

 

 

 

 

 

 

 

 

 

 

 

 

 

지난 주말 서점의 진열대에서 이 책을 집어든 통통한 소녀는 엄마를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엄마! 이것 재미있겠다!" 나는 이미 이 책을 읽고 있던 중이라 그 모녀가 참 반가웠다.

트루먼 커포티는 누구일까? 그가 오드리 햅번이 창가에서 작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던 그 장면으로 남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인 것도 몰랐었다. 이 핑크색 겉표지, 토비 맥과이어를 연상시키는 눈망울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아가씨 홀리 골라이틀리는 영화에서 오드리 햅번이 그려낸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트루먼 커포티가 투영된 '나'와 같은 뉴욕의 아파트 이웃 주민으로 만난 그녀는 나이 든 남자들을 유혹해서  기대어 사는 생활을 하는 어린 여자다. 트루먼은 그녀를 정통 미국 게이샤 정도로 표현한다. 사회적 규범, 도덕 기준, 경직된 틀을 해체하는 이 통통 튀는 아가씨의 언변은 듣는 것만으로도 이야기 자체를 떠나 절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불미스러운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도망치듯 떠나버리는 그녀의 뒤에 남은 '나'는 렉싱턴 대로 술집 주인 조 벨과 함께 그녀와의 추억을 더듬는다. 무언가를 설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있는 그 자체로 투명하게 묘사하고 전달하는 이야기. 백오십 페이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는 술술 읽히고 트루먼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그의 또다른 책을 샀다.

 

 

 

 

 

 

 

 

 

 

 

 

 

 

 

 

소년 시절의 자전적인 이야기. 아주 아름답다고 하는데 기대가 크다. 그의 소년 시절 이웃에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가 살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아직 <티파니에서 아침을> 정도로 트루먼 커포티를 알았다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란 것 같아 <풀잎하프>를 읽고 그에게 빠질지 아닐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다. 아쉽게도 일가족 살인 사건에 대한 그의 논픽션 <인 콜드 블러드>는 일단 아이를 낳고 읽어야 할 것같다.

 

친구가 나에게 선물해 준 책 속에서 돈이 나왔다. 아무래도 비상금인 것같아 연락했더니 고맙다고 한다.^^;; 계좌이체해 주기로 했다. 지하철로 귀가하던 길에 펼쳐든 산후조리에 관련된 책은 뻔하지 않아 좋았다. 고3때 뒤돌아서 도시락을 같이 먹던 친구가 아직도 내 곁에 있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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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3-07-1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커와 문구류에 꽂히는가 싶더니, 이제는 코믹북스 코너에 한참을 머물러요. ㅋ
나도 모르게 씨익~ 미소를 흘리며 읽은 페이퍼네요 ^^
하퍼 리가 트루먼 카포티 어린시절 친한 이웃이었다니, 마실다니다 보면, 얻어 듣는 게 솔찮아여!

blanca 2013-07-11 21:32   좋아요 0 | URL
icaru님, 저도 스티커, 문구류 엄청 엄청 좋아해요. 하루종일이라도 그 코너에서 놀 수 있을 정도로요. 학생 때부터 펜 사는 게 취미였답니다.^^;; 하퍼 리와 트루먼 카포티가 커서는 트루먼 카포티가 하퍼 리의 성공을 시샘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유명인 중에도 어렸을 때 우정을 나누어도 커서는 틀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