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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ㅣ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평점 :
렘에게 SF문학은 '인식의 지평을 여는 실험실'이었다. 그래서 렘은 진정한 SF라면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 솔라리스, 453페이지 역자 후기
1921년에 태어나 1961년에 이 기념비적인 소설을 쓴 스타니스와프 렘은 IQ 180에 빛나는 명석한 두뇌에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규칙적으로 작품을 집필하는 성실성까지 겸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글쓰기를 마라톤에 비유하며 작가가 글을 쓰는데 특별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징후라고 단언하기도 했단다.
내가 굳이 이 작품이 쓰여진 연도나 쓸데없는 IQ를 운운하는 것은 이 소설의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1961년이면 인류가 달에 가기도 전이다.
그런 시기에 만들어낸 이 솔라리스라는 행성은 실로 경이롭고 낯설고, 이질적인 곳이며, 책을 읽으면서도 이 행성을 상상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다행히 위키 피디아에는 Dominique signoret라는 화가가 상상해서 그린 솔라리스의 그림들이 있다.
과연 이 행성은 책을 읽는 나의 인식의 지평을 어떻게 넓히고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열어줄 것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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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태양과 푸른 태양, 두 개의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 솔라리스는 행성 전체가 거대한 바다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그 바다는 지구의 바다와는 당연히 다르다.
솔라리스의 바다에 대한 묘사를 보다 보면 이곳의 바다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기 보다는 정체불명의 점액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또한 솔라리스의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여러 형상들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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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상은 이런 대칭체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도대체 이 바다는 어떤 의미로 무엇을 위해서 이런 형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솔라리스의 바다가 만들어내는 형상들을 대칭체로 표현하는 것은 의미심장한데, 왜냐하면 물, 파도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형상이 정확하게 이런 대칭체가 아니라면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칭체의 제작은 이것을 만드는 무언가가 어떤 형태이든 의식을 가지고 만든다는 증거에 다름 아닐 수 있다.
그럼으로써 지구인들은 솔라리스의 바다가 의식을 가진 존재일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면 솔라리스의 바다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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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들은 이 행성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계속 탐험대를 파견하고 조사작업을 진행한다
그 조사작업은 필연적으로 솔라리스의 바다와 인간의 상호작용일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들이 솔라리스를 조사한다고 생각하지만 솔라리스의 바다의 입장에서는 침입자인 이들 인간을 오히려 조사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헬기조종사였던 한 탐험대원은 솔라리스의 파도형상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거대한 아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을 한다.
기괴하기도 한 이 증언은 결국 솔라리스의 인식 방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는데, 그것은 바로 언어와 같은 간접적인 방식을 통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 의식에 직접 접속함으로써 정보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지구인들은 이런 솔라리스의 인식방법을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있는 방식의 의식형태, 소통형태 외에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사는 종족을 정복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지구의 문화를 그들에게 전파하고 그들의 유산과 교환하고 싶을 뿐이라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신성한 교류의 기사‘라고 여기지, 이것 또한 거짓일세. 우리는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찾으려 하지 않아. 다른 세계는 필요치 않은 거지.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거야. 지구에서 포화 상태에 이르러 질식할 지경인데도 지구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 P160
지극히 지구-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이 알수없는 행성에 대한 탐사가 한계에 다다르자 이 행성을 폭파하자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내가 알 수 없는 타자는 공포를 만들고, 공포의 패닉은 파괴의 충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즈음에 이르면 솔라리스라는 이 정체불명의 존재에 인간 역사와 사회의 무엇을 대입하더라도 온갖 비극의 최초의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히스테릭한 공포에서 기인하는 폭력을 유발하는 존재, 어쩌면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이 말하는 솔라리스의 불가해성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그럼으로써 인간 사회의 그 수많은 폭력들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들인지를 우리 눈앞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솔라리스의 불가해성에 대한 서사가 소설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이곳에 거의 마지막 연구원으로 파견된 주인공 크리스 캘빈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솔라리스에 연구원으로 파견되어 도착한 캘빈 앞에 10여년 전에 자살한 연인 하레이가 살아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녀는 캘빈과 다투고 난 이후 집을 나간 캘빈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겨 자살한 이다.
오랫동안 캘빈의 마음속 큰 죄책감과 상처와 후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녀가 실제 살아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알고보니 이렇게 나타난 사람이 캘빈의 연인 하레이 하나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연구원 셋 모두에게 이런 악몽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지? 어떻게 죽은 이가 이렇게 생생하게 나타나는 거지?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올 수 있었던거지?
결국 솔라리스의 지구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건 바로 솔라리스의 바다가 그들에게 이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인간의 내면에 직접 접속해서 그 내면 가장 깊숙이 있는 기억을 형상화해냈다는 설정이다.
이제 솔라리스는 단순히 먼곳에 있는 행성으로서 불가해한 존재로부터, 내 옆에 바짝 와있는 불가해로 존재하는 것이다.
솔라리스 바다가 이 존재들을 보낸 이유는 무엇이지? 이것은 친애의 표시인가? 아니면 적의의 표출인가?
아니 솔라리스 바다를 인간적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기는 한 것인가?
캘빈은 하레이의 존재 근거를 알 수 없고, 하레이는 왜 캘빈의 태도가 석연찮은지, 자신의 몸이 왜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다.
하레이는 캘빈에게 이전의 죽은 하레이와 지금의 자신 하레이 중 누구를 사랑하는거냐고 묻지만 이 질문과 대답 모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사랑 역시 불가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작가 렘에게 SF문학이 인식의 지평을 여는 실험실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솔라리스는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솔라리스가 지구인에게 이해 불가의 행성이듯, 인간 사이의 마음도 불가해의 영역이다.
심지어 소설은 다른 연구원에게 나타난 존재들은 어떤 이들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일인칭 소설에서 그것 역시 주인공이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 알 수 없음으로 인해 끊임없는 경계와 의심, 다툼, 폭력이 재생산된다.
내가 생각하는 뛰어난 SF소설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존재한다.
우리가 익숙하고,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들을 낯설게 보여주는 것.
그럼으로서 다른 시각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며 내가 가지고 있는 허위의식과 고착된 인식의 지평을 깨는 것.
SF소설을 읽는 재미 역시 이 지점에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솔라리스는 그 행성의 바다만큼이나 거대한 망치로 인간의 인간중심적 사고를 깨뜨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중심적인 사고 또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은 없을지라도 일말의 기대는 분명히 남아있다.
하레이가 사라지고, 연구소 바깥으로 나가 솔라리스의 바다와 접속하는 캘빈의 행동
솔라리스 바다에 폭력적인 조사 탐험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들과 접속하고자하는 열망으로 바다물을 만지는 캘빈, 물론 그럼에도 그 바다물과 캘빈의 손바닥 사이에는 여전히 빈공간이 남아있다.
그럼으로써 캘빈의 마지막 행동은 어이없는 신파, 또는 뻔한 결론이 되지 않는다.
솔라리스 바다와 캘빈의 손바닥 사이의 그 경계는 서로를 모로는 두 존재가 한발짝 다가서서 이해의 공간으로 들어갈 직전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코 서로 넘어설 수 없는 불가해의 경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까지는 아니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말이다.
내게 희망 따위는 이제 없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 일말의 기대감이 남아 있다. 그것은 그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자취다. 내가 여전히 기대하는 완결과 환멸과 고통은 어떤 것일까? 나는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잔혹한 기적의 시대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굳건하게 믿고 있다.- P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