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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3년 2월
평점 :
식민지 조선 Vs 제국주의 일본
이 단어의 대조만으로 연상되는 수많은 이미지가 있다. 식민지 조선에는 가난함과 어려움, 고통, 비참함이 따라붙을 것이고, 제국주의 일본에는 부유함, 군국주의, 잔인함 뭐 이런 이미지들이 따라붙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그렇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둘로 나뉘어지지 않는다.
나혜석 Vs 하야시 후미코
이 두 여성은 부자집 마님 나혜석과 노동자집안 출신이고 딱히 부자이지 않은 여성작가 하야시 후미코로 이들의 대비는 관념적이고 일반적인 분류를 뛰어넘는다. 내가 이 책에 이끌렸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전혀 다른 분류를 보여주는 기획때문이었다. 나혜석의 여행기는 이미 여러 차례 출판되었지만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색다른 대비를 통해 보여주는 세계는 단순한 두 사람의 글이 아니라 훨씬 다양한 해석과 생각을 하게 해줄듯하였다. 두 사람의 여행기 자체는 그렇게 뛰어난 글들은 아니다. 나혜석보다는 본격 작가인 하야시 후미코의 글이 훨씬 좋긴하지만 뭐 그렇다고 엄청나게 훌륭한 글이라고 할 수는 없고..... 출판사의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며 식민지 시대를 색다른 시각으로 보고, 하나의 시대를 한 가지 시각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도 볼 수 있는 책이라서 나는 읽으면서 참 좋았다.
원래도 나혜석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심경이었다. 뛰어난 여성화가였지만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려운 삶이랄까? 여성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주장한 여성 페미니스트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지금 봐도 너무 독특한 그녀의 주장들과 삶을 따라가다보면 무조건 공감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느껴지는 그런 여성이다. 그녀의 여행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1920년대에 여성이 그것도 결혼을 해서 아이가 셋이나 있던 여성이 시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모두 맡기고 무려 20개월동안 세계 일주를 한다. 이 말만 들었을 때 나혜석이 얼마나 대단해보였던가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점점 실망하게 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수원의 명문가 참판댁 애기씨로 태어나서 그래도 당시로서는 진보적이었던 아버지덕분에 딸이지만 신교육을 받았고, 일본 유학까지 마치고 변호사인 김우영과 결혼해 부자집 마나님이 된 여성, 그리고 화가로서도 성공하여 이름을 떨치던 여성의 세계 일주는 혼자서 간 여행이 아니었다. 만주지역의 부영사를 지냈던 남편이(이 시대 이 정도 직위면 적극적인가 소극적인가의 차이일뿐 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은 당연할 듯하고....) 힘든 지역의 관리를 6년간이나 지냈다고 일본 정부로부터 포상휴가를 받는다. 포상휴가가 20개월이나 되지는 않았겠지만 아마도 그 포상휴가에 본인들의 돈도 꽤 보태져서 여행이 길어졌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한 여행에서 이 두 사람은 유명 인사다. 부산에서 출발한 이들은 조선 땅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곳곳에서 마중나온 수십명의 환영인파를 만나고,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난 이후에도 일등칸에서 항상 상류층들과 어울리고, 유럽이나 미국지역에 도착해서도 현지에서는 항상 먼저 이곳에 유학을 온 이든 누구든 이들을 맞이하며 온갖 도움을 주는 그런 여행인 것이다. 미국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올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호화유람선 여행까지 정말 아주 럭셔리한 여행이다. 여행이란 원래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는 법이다. 여행이 다른 생각을 갖게 하고 세상의 다른 면을 보게 하려면 여행자 자신의 치열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하는 법이다. 이 시대의 나혜석에게 그런 고민의 흔적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더욱 하게 된다. 그녀의 여행기를 읽는건 마치 여행가이드북의 지역 소개를 읽는 느낌이다.
반면 하야시 후미코의 여행은 자신이 쓰는 돈을 하나씩 하나씩 일일이 기록하며 아껴가며 삼등석 열차를 타고 배 역시 가장 낮은 등급의 방에 묵으며 항해하는 여행이다. 그곳에서 온갖 나라의 온갖 인물을 만나지만 모두 자신과 비슷한 가난한 이들이다. 하지만 여행의 이야기는 원래 이런 칸에서 나오는 법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속에서도 삼등열차속에서 부대끼며 가다 보면 친해지지 않을 수 없고 그속에서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후미코의 시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출신 계급인 노동계급에 더 많이 가 있다. 그래서 러시아 땅을 지나면서는 사회주희 혁명 후의 러시아가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이 동경하던 그 땅의 현실과 많이 달라보이는 모습을 꼼꼼히 관찰한다. 나혜석처럼 온갖 여행지를 가기보다는 (그러기에는 돈이 없어서) 한 곳에 머물며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사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래서 글을 읽는 재미는 오히려 하야시 후키코의 글이 더 있으며, 심지어 공감이 더 가는 쪽도 하야시 후미코쪽이 되어 버린다.
아 정말 민족보다는 계급인가? 피는 물보다 안 진하다.
여행기 중 흥미있었던 대목이 있는데 나혜석이 그들이 부영사로 살았던 만주 단둥현에 도착했을 때의 소감과 하야시 후미코가 만주 창춘에 도착했을 때의 글이다.
만주 거주 동포의 경제 발전은 오직 금융기관에 있다는 견해 아래 단둥에 조선인금융회가 설립된 후 이내 단둥에 사는 조선인 금융계의 중심 기관이 되어 그 전도유망함이 우리 눈에 보일 때 한없이 기뻤다.
총독부와 만철(남만주철도 주식회사)에 교섭한 결과 수백여 명 학생을 수용할 만한 보통학교가 건설되고 이번에 만철 경영이 되어 직원 모두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한 모습을 볼 때, 어찌 만족이 없으랴 - 21쪽
1931년 11월 12일 밤, 창춘 도착, 입김이 하얗게 서릴 뿐 눈은 아직 내리지 않는다. 지난해 빈손으로 왔을 때와 달리 트렁크가 네 개나 있는 데다 역 안이 병사들로 가득했기에 한가로이 짐꾼을 부르고 자시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번쩍이는 검을 꽂은 소총이 숲속 나무처럼 죽 늘어선 일본군 사이를 뚫고 가까스로 어스레한 대합실에 들어갔다. - 149쪽
약간의 시기 차이는 있지만 만철이 일본의 만주침략의 교두보라는 것을 외면하는 나혜석의 모습
그리고 만주사변 직후 만주를 지나면서 일본의 침략을 똑같이 두려워하는 눈으로 지나가는 후미코의 모습이 대비된다.
이런 문장들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비교하면서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이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서도 우리의 예상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찾아 보는 것이 또한 이 책의 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