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룡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아쉬움이 크다. 성룡 특유의 코믹 액션은 어설퍼졌고, 할리우드를 따라하고픈 마음만 가득해 보인다. 미국 만세를 외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마냥 중국 만세를 외치는 중국판 블록버스터가 되는건 아닐까 걱정된다. 


2. 런던, 두바이 등 해외로케를 통한 볼거리와 황금스포츠카와 항공모함 등의 눈요기가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 성룡은 이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방아쇠를 당겨야 할 때 격투를 벌이다가도 어느 순간엔 주저없이 총을 쏴댄다. 특수촬영보다는 온몸으로 부딪히는 액션도 나이를 먹은 탓일까, 와이어를 동원하는가 하면, 코믹한 맛도 사라졌다. 액션의 재미가 사라진 것이다. 물량공세를 펼치는 전투 장면은 과장된 표현이 눈에 거스른다. 편집은 마치 중간광고를 계산한듯 중간중간 페이드아웃으로 흐름이 뒤틀어진다. 


3. 캡틴 아메리카를 이기는 캡틴 차이나가 등장하고, 영화 속 악당에게는 중국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일갈한다. 마치 중국 만세를 외치는 애국 영화처럼 보인다. 중국의 사설경호업체 '뱅가드'가 미국의 항공모함을 구한다는 영화의 결말 또한 억지로 갖다 붙인듯 부자연스럽다. 성룡 영화는 무조건 믿고 본다는 믿음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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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니 몸도 차가워진다. 이럴 땐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근육을 이완해주며,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약초차를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잔대, 둥굴레, 쑥을 겨울철에 좋은 ‘약초’로 소개하고 있다.

둥굴레차는 마트에서 흔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잔대는 약재로 쓸 때는 사삼이라고 부르는데, 초롱꽃과에 속한다. 동의보감에 기력을 왕성하게 하고, 폐를 맑게 한다고 한다. 뿌리를 깨끗이 씻어서 둥굴레처럼 끓여서 차로 마시면 된다.


쑥도 차로 마시면 좋다고 한다. 특히 복부와 자궁이 찬 것을 따뜻하게 해주어 여자에게 좋다. 봄부터 여름 사이엔 지천에 쑥이다. 번식력도 강해서 그냥 놔두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블루베리와 체리를 키우는 입장에선 골칫거리다. 하지만 쑥을 잘 캐서 요리에 쓸 수 있다. 애엽이라는 약재로도 사용한다. 차로 이용할 때는 꽃이 피기 전에 줄기 윗부분의 싹과 잎을 뜯어서 그늘에 잘 말리면 된다. 내년엔 겨울을 대비해 쑥차 좀 만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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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에 대한 생각 - 세계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우리의 식탁은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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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않으면 죽는다. 하지만 잘못 먹어도 죽는다. 그래서 인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수렵, 채집 시절엔 독성의 여부가 중요했을 것이다. 먹어보고 체득한 것들이 유전적, 문화적으로 이어지는 시대로 보인다. 다양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중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맛있다'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우리는 먹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어 농경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때 그때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곡물 덕분에 잉여와 보관이 가능한 시대였다. 그 덕분에 인구도 증가했고, 남는 인력으로 문명이 발전하게됐다. 하지만 먹는 종류는 단조로워졌고, 이로 인해 건강은 위협을 받았다. 한두가지 작물에 치중함으로써 환경변화에 취약해지기도 했다.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기 위한 생산력 향상이 필요한 시기였다. 녹색혁명이 문제를 풀었다. 음식의 방점은 양이었다. 모두가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양이 목표였다. 기술적 문제는 해결됐지만, 정치적 문제는 기아를 해결하지 못했다. 


값싼 가공식품의 시대가 도래했다. 가난하더라도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먹을 것을 구하는게 쉬워졌다. 또한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시간을 빼앗아, 최소한의 식사 시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일하면서 먹든가, 재빨리 먹고 잠깐 쉬든가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은 패스트푸드를 찾았다. 또한 패스트푸드는 문명의 상징이 되어, 개발도상국들의 국민들에겐 현대인이라는 이미지를 먹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음식의 변화는 영양의 전이를 가져왔다. 비만과 성인병, 각종 대사성질환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책 <식사에 대한 생각>은 13가지 식사전략을 주장한다. 적게 먹고, 간식 대신 식사에 집중하고, 물이 아닌 것을 물처럼 마시지 말고, 다양하게 천천히 먹고, 요리를 배우고,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등이다. 한마디로 장금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진짜 음식의 맛을 음미하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식사에 대한 생각]은 이런 음식에 대한 접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제도적 문제라고 본다. 사회 구성원 개인 각자가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레스토랑의 접시를 작은 것으로 바꾸고, 신선한 식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가게가 걸어서 갈 수 있을만큼 집 근처에 위치하도록 하는 등등. 물론 이런 변화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 말이다. 


장금이의 말을 떠올려본다. 
"저는, 제 입에서는,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우리는 홍시맛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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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날씨가 매섭다. 찬 공기 때문인지 미세먼지가 없는 날엔 일출이 멋드러진다. 잠깐 하늘을 쳐다보다 개밥을 챙겨주고, 개똥을 치우려했다. 


하지만 흠칫!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털복숭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가만히 살펴보니 꼼짝을 않는다. 죽은척 하는건가? 계속해서 요지부동인 것이 아무래도 죽은 듯하다. 자세히 보니 너구리처럼 보인다. 


요 몇일 전 백구가 집 옆 복숭아밭을 쳐다보며 '컹컹' 짖어댔다. 뭐가 있나 살펴봤지만 눈에 뜨이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슬금슬금 움직이다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너구리였다. 설마 지금 눈앞에 죽은 너구리가 그때 봤던 너구리일까. 그런데 왜 여기서 이렇게 죽음을 맞이했지?


딸내미에게 너구리가 죽어있다고 하니 잠이 덜 깬 눈을 한 채 쏜살같이 달려온다. 어라? 무섭다거나 징그럽다며 도망칠 줄 알았더니.... 반대로 너구리가 궁금하다며 다가갔다. 웅크러져 있는 너구리를 뒤집어달랜다. 얼굴과 배 쪽도 보고싶단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죽은 너구리를 살펴보다 왜 너구리가 이곳에 죽어있는지 의문이 갔다. 딸내미 또한 이렇게 저렇게 추측을 해본다. 



어디에선가 독극물을 먹고 나서 죽었을까. 딸내미가 입에 거품자국이 없다며 아닐 것 같단다. 그렇다고 하필 여기서 얼어죽었을리는 없고...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작은 개가 너구리를 물어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초코라고 부르는 이놈은 올 여름엔 뱀을 물어뜯어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너구리가 죽은 위치는 초코가 묶여 있는 곳에서는 닿지 않는 거리다. 혹시나 초코에게 물린 후 경사진 곳으로 굴러떨어졌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면 너구리는 묶여있는 개조차 피하지 못할 정도로 무뎠다는 것인데... 


알쏭달쏭 미스터리다. 게다가 죽은 너구리를 보고도 신기해하는 딸내미도 미스터리?^^ 하기야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 박제 박물관도 좋아했으니, 겁낼 이유는 없어보인다. 어쨋든 비명횡사한 너구리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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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일 맑음 영하 6도~5도


개밥그릇에 담겨 있는 물이 아침이면 꽁꽁 얼어있다. 벌써 겨울 추위가 매섭다. 어슬렁어슬렁 늑장을 부리다보니 12월이 코앞이다. 



집 주위를 둘러보며 본격적으로 겨울에 들어서기 전에 갈무리해야 할 것들을 살펴봤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감국이었다. 허리춤 이상으로 길게 자란 것들이 꽃이 지고 나니 다소 어지럽고 지저분해 보인다. 깔끔하게 정리도 할겸 내년에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밑둥까지 잘라내는 작업을 했다. 



감국을 다 쳐내니 진입로가 훤해졌다. 잘려진 가지는 블루베리밭 사면에 두었다. 삭아서 퇴비가 되면서 풀이 자라는 것을 막아주기를 기대한다. 



잘려진 밑둥을 보니 새로 싹을 내서 꽃이 핀 것들이 보인다. 이번주 추위가 찾아오기 전까지 따듯했던 기후 영향인 듯하다. 


감국처럼 보다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 위해 기존의 줄기를 싹~둑 잘라내야 할 때가 있다. 아마도 코로나19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는 이같은 <싹둑>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는 뭇생명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삶,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아닌 균형을 갖춘 삶으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구는 개개인의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명과의 조화, 균형잡힌 삶이라는 가치에 공감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내 삶의 태도를 <싹뚝> 자를 각오를 해야하지 않을까. 잘려진 감국은 내년 샛노란 꽃을 더욱 화사하게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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