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등을 향한 경쟁, 레이싱의 세계, 도전의식, 최고가 갖는 의미, 물러남의 순간. 그리고 간혹 터지는 슬랩스틱. 저학년이 즐기는데 문제는 없지만 영화의 전부를 만끽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겠다. 초등 고학년 이상이 즐기기에 딱 좋을 듯 싶다.
2. 영화 포스터 문구, 마지막은 내가 정한다.의 마지막은 바로 은퇴를 말한다. 누구나 다 은퇴의 시간을 맞는다. 요즘은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며 인생 2막을 이야기한다. 직업이나 일로부터의 은퇴는 있지만, 삶에서의 은퇴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3. 프로야구 선수 이승엽은 올해 은퇴를 예고했다.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는 선수들에게 은퇴시기는 중요한 결정이다. 가수 이효리는 제주 생활의 고요함을 벗어던지고 다시 앨범을 내며 활동을 시작했다.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서서히 내려가는 길을 걷겠다'는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슈퍼스타 두 명의 은퇴를 대하는 태도는 아주 다르다. 이것은 둘이 뛰고 있는 무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를 비롯해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뛰고 있는 무대는 TO 즉 정원이 있다. 누군가가 빠져나가야 새로운 인물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이승엽의 은퇴는 신인의 성장을 의미한다. 김연아의 은퇴도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가요 시장엔 정원이 없다. 누군가 빠져나가야 새로운 가수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성기는 지나갔지만 보다 완숙한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3. <카3: 새로운 도전> 속 주인공 맥퀸이 뛰고 있는 레이싱 세계는 이승엽이나 김연아가 뛰고 있는 스포츠 무대와 비슷하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 곳이다. 이 시기를 잘 알고 물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무대에서 선수는 아니지만 코치나 감독을 비롯해 다양한 모습으로 새롭게 뛰어들 수 있다. 맥퀸은 지도자의 길을 찾아간다. 또 같은 무대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무대 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4. 이효리가 활동하고 있는 예술이나 문화라는 영역은 TO라는 것이 없다. 이 무대는 삶의 무대와 닮아있다. 누구나 전성기가 있을 것이고, 내리막길을 걷는다. 하지만 어떤 이는 평생 전성기라는 것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온 삶을 전성기를 향해 걸어올라가는 험난한 인생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이 무대에서도 결국 은퇴라는 시기는 오기 마련이다. 바로 죽음이다.
5. TO가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현재 속에 사는 것이다. 전성기를 그리워하며 과거에 묻혀 사는 것도, 전성기만을 바라며 미래를 바라보는 것도 모두 위태로운 삶이다. <카3>의 맥퀸이 자신이 더 이상 최고가 될 수 없음을 자각하고, 크루즈가 레이서의 재능을 갖고 있음을 알아채 그 재능을 키워가는 모습이 바로 현재 속에 사는 모습이다. 맥퀸이 과거의 영광만을 재현하기 위해 악착같이 달린다면 그 앞엔 좌절만이 남았을 것이다. 후회없는 노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과거 속에서 사는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효리가 천천히 내려가겠다고 표현한 것 또한 현재 속에 살아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삶이라는 것은 내 길을 알고, 내 자리를 알고, 내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걸아가는 일이지 않을까. 우리의 레이싱은 결코 끝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