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1.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십 수년 전 공중파 방송의 한 다큐멘터리였었다. 생소한 단어이기도 했지만 그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가 망설여져 잊어버릴 수 없었다. 지금은 그 존재가 거의 기정사실화 된 듯하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터이다. 과연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처벌할 수 있겠는냐는 문제와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운명처럼 갖고 태어난 성정 때문에 벌어진 일을 단죄할 수 있단 말인가. 혹 단죄할 수 없다면 이들을 격리시켜 범죄를 예방해야 하는 걸까.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람인가. 그렇다면 이들에게도 인권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건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 극악무도하고 천인공로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알고보면 사이코패스였다는 뉴스를 가끔 접한다. 그런데, 잠깐. 공감능력의 부족이 꼭 범죄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나를 돌아보아도, 어떨 때는 극도로 타인의 감정에 이입하다가도, 어떤 때는 아주 냉정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타인이 나의 감정을 읽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험도 숱하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잠재적 사이코패스일 수 있다는 걸까. 사이코패스라는 진단 자체에 의문을 갖는다.
3. 이 책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포식자 프레데터다. 주인공의 관점에서 사건이 진행되다보니 그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레 따라가게 된다. 즉 사이코패스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접하는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런? 이라는 의문을 낳게 하는 범죄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이 갖는 재미의 가장 큰 부분이다.
4. 자, 그럼 어떤 부분이 사이코패스를 이해하도록 도왔을까. 자유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가 침해되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폭탄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다. 그 억압의 정도가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가 없다. 사이코패스의 탄생은 유전적, 태생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나 사회망 속에서 벌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는 모든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5. 그럼에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그 감정, 즉 잠재된 폭력성만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사회적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사이코패스가 유전적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감할 수 없다면 사회적 유대를 맺기 힘들어 생존과정에서 도태되어야 맞는 것이 아닐까.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 폭력적 성향이 인류에게 꽈리를 틀고 앉아있는 이유, 그것은 무엇일까. 소설을 다 읽고 무거운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신의 의도가 아닌지도 몰랐다. 만약 그것이 신의 뜻이었다면 세상을 창조할 때 만물이 만물을 사랑하는 관계로 설계했어야 한다. 서로 잡아먹으면서 살아남는 사슬로 엮는게 아니라."
인간이 늘 정답을 선택하지 않는 건 그것이 불편하기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변주하며 살아가는게 인간의 삶이라는 걸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신의 의도가 아닌지도 몰랐다. 만약 그것이 신의 뜻이었다면 세상을 창조할 때 만물이 만물을 사랑하는 관계로 설계했어야 한다. 서로 잡아먹으면서 살아남는 사슬로 엮는게 아니라
옳은게 모두 최선은 아니었다. 옳다와 당연하다가 같은 의미도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당연한 건, 내 인생을 내게 맡겨두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