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기와 지음,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이기와 시인이 전국의 비구니 산사를 찾으며 느낀 인생무상을 써 내려간 글이다. 김홍희 사진작가의 사진이 어우러져 청정한 느낌을 준다.

불완전한 말에 속지 마라고 당부하고, 한번 화를 내면 백 천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 했으니, 흔들리지 않는 마음 공부를 이야기하고, 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동안 탐한 물건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며 탐욕의 대상이 부질없음을 통해 욕심을 버릴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라면 다른 어느 불교 에세이를 보아도 다 나오는 이야기요, 스님들 말씀 속에서 익히 들어온 것일 터다.

이 책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산사에서 만난 비구니 스님들의 말씀이 그 하나요, 시인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경험이 그 둘이요, 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세번째라고 할 수 있겠다.

방장산 대원사 담을 넘어 속세로 향하던 스님을 보며 "스님, 파이팅. 너무 멀리 가지는 마세요, 돌아올 길이 막막할 수도 있으니까요" 라는  말 속에 담긴 애정에 따스함을 느낀다. 부모를 여의고, 시다, 중국집 서빙, 신문 배달 하다 19세 때 아이를 낳고 파출부, 미장원 종업원, 포장마차 장수, 유흥업소 마담 등등 전전하다 두번씩이나 자살 기도를 했던 삶의 여정이 비구니 산사의 기행 속에 녹아들어 뜨끔한 죽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을 읽으며 가슴 뭉클했던 것은 자신의 딸이 19세에 자신과 똑같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삶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그 허무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식에게조차 자신의 경험을 나눠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나에겐 크나큰 충격이었다. 백가지 천가지 지혜로운 말도 결국 한차례의 경험만 같지 못하다는 깨달음은 삶이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알게 해줌과 동시에 또한 특별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해주는 듯 싶다.

자신에게 부닥쳐 오는 것들이 삶을 구성하며, 그것이 흘러와 또한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만드는 것이 마음공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얽매이지 말라는 것에조차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흐르는 것은 흐르도록 만든다는 것. 그것은 나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가능하지 않을까? '항상 부처'가 되지 못하더라도 '잠깐 부처'의 잠깐 잠깐을 늘려보도록 시선을 안으로 돌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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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22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부처'의 잠깐잠깐을 늘려보자는 말이 참 좋습니다.^^

하루살이 2006-06-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부처'와 '잠깐 부처'라는 말은 책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잠깐 잠깐을 늘리다보면 언젠가는 항상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