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노랫소리 - 제6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수상작
텐도 아라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  혹 스포일러라고 할만한 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 소설은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를 잠시 떠올리게 만든다. 범인의 정신병으로 말미암아 사건이 진행되고, 그 정신병은 그 어머니의 잘못된 사랑과 집착으로 말미암았다는 점에서 사뭇 유사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사이코보다는 오히려 최근 뉴스 속에 비쳐지고 있는 일종의 '발바리'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범인의 대상자들이 원룸에 거주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고 보면, 마치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성범죄를 미리 예견하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소설은 "그러니 여자들이여, 늦은 밤 홀로 다니지 말거라" 따위의 뉴스속에 감추어진 우회적인 훈시(비록 피해자들을 마치 걱정하는듯 하지만 폭력이 감추어진)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장점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크게 3명이다. 여형사 아사야마와 편의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준페이(그러고 보니 최근 편의점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 또한 이 소설 속에서 이미 예견하고 있는듯하니, 작가의 현실을 꿰뚫는 눈은 가히 매서운 정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범인 마쓰다 다카시. 이 3명의 공통점은 혼자서 산다는 것이다. 아사야마는 과거 친구의 행방불명 사건에 대한 죄책감으로 형사가 되었고, 준페이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오히려 마쓰다의 바깥에 비쳐진 삶이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보인다.

소설은 연쇄 살인사건을 큰 축으로 편의점 강도 사건을 배치하면서 이 3명이 어떻게 조우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범인이 누구일까나 어떤 트릭이 쓰였을까 보다는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독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이들의 감추어진 목소리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넘어 마음의 울림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내면의 소리가 결국 나의 감추어진 속내와 닮아 있음을 고백하며, 가슴 속에 새겨진 느낌을 적어보겠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과연 간섭과 이해는 어디가 그  경계선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필수다. 하지만 그 정보를 얻는 과정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정보가 타인의 비밀까지 깊숙히 들어간다면 이들의 관계는 행복할까? 비밀의 공개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정말로 행복을 위한 전제인 것인지, 불행을 가져올지 모르는 무서운 일인지 혼란 스럽다. 반대로 타인의 세계를 존중해주는 것과 무관심의 경계는 어디일까? 나와 너의 독자적인 세계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준다는 것이, 타인의 눈에는 무관심으로 비쳐줄 수 있고, 그것은 관계의 친밀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도대체 나와 너는 얼마만큼 가까이, 또는 떨어져 있어야 한단 말인가?

소설 속에서는 준페이의 릴레이 경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통을 제대로 받을줄 몰랐던 준페이에게 그의 믿음직스러웠던 친구(준페이는 자신이 신뢰했던 친구로부터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 이것이 그를 혼자이게 만든 큰 요인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어떠한 이유가 됐든 이별이 주는 충격을 어떻게 해소하는냐가 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혼자인 나를 분석해보자면 말이다. 준페이의 경우도 배신으로 인한 이별이 타인과의 밀접한 관계를 방해하는 심적 요인으로 작용했을듯 싶다)는 자신이 제2주자로 나설테니 바통만 그저 넘기라고 말한다. 바통을 넘기기만 하는 사람과, 바통을 받기만 해야 하는 사람의 다른 입장을 소설 속에서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읽는 이는 애잔하다.

사람과 사람 그 사이에 바통이 있다. 너와 나라는 독립적 인격체간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화학적 작용 또는 같은 자석마냥 밀어내는 물리적 작용이 존재하더라도 내 손에서 건네지는 바통을 받아쥐는 타인의 손이 있다. 또는 그 반대로 타인이 건네주는 바통을 넘겨받아야 할 나의 손이 있는 것이다. 관계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바통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진다면 릴레이를 완주할 순 없다. 혼자서 그 거리를 뛰어가야만 한다. 그래서 바통은 독립적이면서도 함께다. 외로우면서도 힘이 되어준다. 마치 준페이의 성문(聲紋)이 그러하듯이. 고독한 자들이여, 서로 힘이 되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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