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피날레 - 종말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
아베 가즈시게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에 오타쿠를 보고 있자면 입이 벌어진다. 참 별의 별거에 집착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다가도 한 편으론 이해가 간다. 이해란 먼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쳇바퀴 도는 생활, 탈출구가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예전 TV서 보았던 '앗! 이런 일도'류의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을 먹는 것이라 할지라도, 나를 자극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에선 롤리타 컴플렉스를 지닌 주인공이 나오는가 하면, 자살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아이들, 환각제에 취한 어른들, 자위기구에 집착하는 남자 등이 나온다. 단편들 모음집이기도 한 이책은 첫번째 단편 <그랜드 피날레>가 워낙 강렬해 나머지 단편들의 맛을 조금 앗아가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은 오래도록 머릿 속에 남아 있을듯하다.

부인에 대한 폭력으로 이혼뿐만 아니라 접근조차도 불가능하게 된 주인공. 8살 된 딸 생일에 어떻게든 얼굴 한 번 보고싶어하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를 안쓰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가 이혼한 이유는 단순히 폭력때문이 아니라, 아니 폭력은 거의 우발적인 것이고, 롤리타 컴플렉스가 주 원인이기 때문이다. 교육영화를 찍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주인공은, 오디션을 보러 온 아이들을 유혹해 아동 포르노에 가까운 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이것이 유일한 삶의 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행위나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주인공을 욕하기는 무척 쉽다. 아무리 내가 도덕적이지 못하더라도 넘어서지 말아야 할 무엇인가는 상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선을 넘어선 자다.

하지만 소설이 주인공의 내면을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써 조금 당황하게된다.  그 내면이란 자기합리화에 불과할 뿐이지만, 일견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당황스러운 것은 이 내면의 소리가 결코 타인에게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타인의 행동을 바라보고 나름대로 이해하건만, 그것은 상호 소통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따로 따로 독립된 채로 놓여져 있는 것이다. 즉, 내 생각엔... 이라고 생각하는 그 무엇은 바로 내 생각일 뿐이며, 타인이 취한 행동의 근거도 배경도 이유도 되지 못한다. 서로간의 대화로 이 간격을 극복할 수 있으련만 대화는 항상 현실의 바닥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空론이 되어버린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소통과 이해는 불가능하다. 서로 겉에서 맴돌뿐 침투하지 못한다. 마치 텔레비젼 뉴스 속에 비쳐지는 사건들이 나와 아무 상관없이 느껴지듯 말이다. 누가 살인사건이나 화재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던가?

개인은 말 그대로 파편화되고 원소화되어 공기를 떠돈다. 다른 누군가와 만난다면 비누방울처럼 펑 하고 터져버릴듯이 위태롭게 말이다. 내가 다가서려 해도, 또는 남이 다가서려 해도, 그 비누방울은 속을 보여주지도 않고, 부딪히면 터질 각오를 해야하니, 우리는 그 세상에 환성을 질러야 할 것인가,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인가? 적당히 속엣말을 내뱉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래야지 귀찮아지지 않는 삶이란...

비눗방울은 이슬처럼 영롱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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