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갔다 오기 전과 후에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깨우쳐 준것이 <어퓨 굿 맨>이었다면,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 그 자체에 대한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한번 내 몸 속에 잠재해 있는 폭력을 일깨운다. <어 퓨 굿 맨>이 폭력에 대한 동의를 가져왔다면 <용서받지 못한 자>는 폭력에 대한 체념과 저항을 함께 일깨운다. 지금까지 나온 어떤 군대에 관한 영화보다도 <용서받지 못한 자>는 사실에 가깝다. 그리고 그 사실은 대한민국 예비군들 몸 속에 숨어있는 폭력의 씨앗을 보여준다.

 태정은 군기반장이다. 나름대로 군대 생활을 잘 해왔다고 생각한 그에게 부사수로 승영이 들어온다. 그런데 아들뻘(아버지와 아들은 군대에서 또 다른 의미로 쓰인다)도 안되는 그가 중학교 동창인 관계로 태정의 말년 군 생활이 조금 꼬인다. 그러나 태정은 승영을 최대한 감싸주려 하고- 하지만 또 그 뒤에선 승영의 고참들에게 얼차려를 가하며, 제대로 가르치라고 호통친다 - 승영은 태정의 보호아래 자신의 의지를 꺾이지 않고 군생활을 해나간다. 불합리한 명령에 따르지않고, 솔선수범하며, 자신의 위치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군대에 들어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내가 고참이 되면 다 바꾸겠다며 버텨낸다. 시간이 흘러, 태정은 제대를 하고, 승영 밑으로 지훈이라는 부사수가 들어온다. 지훈은 조금 어리버리하다. 승영은 지훈으로 인해 군생활이 힘들어지고, 태정 또한 이미 자신을 보호할 수 없게 되자, 점차 변해간다. 바로 군대 생활 잘 한다는 모범 군인의 모습으로 말이다. 고참들에게 장교들 물품을 선물하기도 하고, 마음에 꼭 들어맞는 이야기도 하면서. 고참들은 승영에게 지훈을 잘 가르치라고 훈계한다. 승영은 지훈때문에 힘든 자신의 처지와, 물리적 폭력에 서툰 개인적 특성 사이에서 점차 지훈에게 모질게 대하기 시작한다. 지훈은 승영에게 의지하고자 하나, 점차 변해가는 그로부터 아무것도 위안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라, 극도의 참담함을 느끼다 결국 군화끈으로 목을 맨다. 승영은 혼란에 싸이고, 휴가인지 탈영인지 모르겠지만, 밖에서 태정을 만나 위로를 받으려 한다. 하지만 태정은 승영이 아직도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모습에 짜증이 난다. 결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밝히진 않으려 한다.

영화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법한 군대 생활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다만 주위에 자살한 부대원이 흔한 것은 아니니까 그 충격의 정도가 다르다고 하겠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제일 괴로웠던 것은 불합리한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것이다. 군의 특성이라는 것이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라지만, 불합리한 명령은 거부할 권리 또한 주어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거부는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의 양심을 지켜내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자신을 굽히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를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난, 고참이 되면 다르겠다는 생각은, 본전 생각이 나서 (내가 당한 것이 있는데 라는 생각말이다) 쉽게 바꾸지 못한다. 즉, 고참이 되는 순간 그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고 있는 자기자신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군대니까 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승영의 말이 고참이 되는 순간 무너진 것과 똑같다. 군대는 개개인의 힘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군대 참 좋아졌어 라고 다들 말하지만, 그리고 나 또한 고참이 되면서 많이 바꾸었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폭력은 어느 새 몸에 깊이 각인되어져 있다. 그리고 그 폭력은 군에서 나오는 순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어는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뛰쳐나온다.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자는 결국 자신의 피를 모두 쏟아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피 속에 감추어진 폭력의 씨앗을 뱉어내고 싶다고... 아마 온 몸이 다 마르도록 피를 쏟아야만 할 것이다. 폭력의 구조는 그렇게 여전히 나의 영혼을 감싸고 있다. 이 영화는 그 영혼을 돌아보도록 만든다. 참혹하고도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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