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다치바나의 기행문이라니 귀가 솔깃하다. 실은 귀가 솔깃한게 아니라 눈이 반짝였다가 맞는 말이려나? 제목도 범상치 않다. 사색기행이라... 여행은 만사를 잊게 만드는 알코올과 같은 힘과 더불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주는 창조의 씨앗이기도 하다. 이 책 속에서 드러난 다치바나의 여행은 모든걸 잊고 떠나겠다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다치바나의 여행은 휴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오히려 탐사에 가깝다.

그가 말하는 여행의 의미를 잠깐 살펴보자.

여행은 결국 만남이다. 만남은 본질적으로 계산이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니, 만남을 기대한다면 일정일랑 짜지말고 되어가는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26쪽)

여행의 패턴화는 여행의 자살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에 있다. 일상성이라는 패턴을 벗어났을때 내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데 있다. (79쪽)

이렇게 그의 말을 써놓고 보니, 다치바나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건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다. 만남이라는 것도 그 목적의식에서 벗어나있지 않고,  그가 여행에서 발견한 것 또한 이미 작정을 하고 떠났기 때문에 가능한 수확이다. 그렇다고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 만남들이 우연히 전개되기도 하고, 꾸며진 일정표대로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치 잘 짜여진 여행계획표를 들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탁월한 취재능력에 있다고 보겠다. 그저 눈요기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묻고 탐구하는 일상의 자세가 여전히 여행지에서도 발휘된 탓에 그의 여행기는 르뽀처럼 보여진다.

특히 유럽 반핵 무전여행이나 팔레스타인, 뉴욕에 대한 글은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지금이야 원하는 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손쉽고 빠르게 구할 수 있겠지만, 다치바나가 여행한 당시의 상황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인상을 준다. 뉴욕의 경우엔 당시의 시대 상황과 미래 예측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더군다나 밖으로 보여지는 모습 뒤에 감춰진 차별의 벽(시오니즘과 유태인, 팔레스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슬람, 기독교간의,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과 나머지 사람들간의 )을 들춰내는 그의 날카로운 눈은 그야말로 그가 말하는 새로운 발견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여행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프랑스 여행이었다. 최상급의 포도주를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모두 느껴볼 수 있는 행운, 유럽의 치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행운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게 아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최상의 사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로 표현될때 느낌은 비로소 인식이 된다. ... 맛있다 좋다 시시하다라고 하는 것은 와인을 마시는 행위가 생리적 행위에 머물뿐 문화적 행위로 승화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할만큼 문화적 승화라는 최고의 특권을 누린 것이다. 이런 여행은 아무나 어느때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가 말하는 패턴화되고 계산화된 만남이라는 여행의 본질과 먼 계획을 세우더라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부러움 말고 무엇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가 느낀 문화적 풍요로움을 글로서 조금 맛보는 것으로 만족, 아니 억울해하고 싶다.

그의 여행이 문화적, 정치적 발견이나 충격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의 무인도 경험이나,  개기일식 체험은 삶을 통째로 바꿔버릴 수 있는 감성적 충격을 전해온다. 아마도 이런 급진적 체험은 자연의 경이를 통해서 느끼는 경우가 많을것 같다. 인간 또는 자신이라는 존재의 초라함을 발견하거나, 생명의 신성성을 경험한다는 것은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극대치가 아닐까 싶다. 개기일식 여행에서 소개된 사람들처럼 인생의 모든 목표가 개기일식 사냥으로 변해버릴 정도의 강렬한 만남, 그런 만남이 기다려진다. 또한 무인도의 경험같은 새로운 삶의 방식도 체험해보고 싶다. 

나그네의 발걸음이 아닌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그래서 여행은 충격으로 또는 사색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임을 다치바나를 통해서 깨우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11-03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1-0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술술 읽히거든요, 다치바나 책의 이상한 특징 중의 하나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