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영화로 보고나서 나름대로 괜찮군 생각했었다. 영화보다 책이 더 낫다는 소리를 주위에서 듣긴 했지만 일부러 책을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작가의 새책을 손에 쥐게 됐다. (물론 [도쿄 타워]라는 이 책도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마 곧 개봉하지 않을까 싶다. ) 손에 꼭 들어가고 두껍지도 않아 주저없이 읽게 됐다. 하루에 다 읽지 못하고 중간 중간 쉬어가며 읽어갔는데 하루가 지나고 밤이 찾아오면 이들 주인공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해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책은 19세에서 20세로 넘어가는 두 청년과 30대 40대 여인의 사랑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의 방식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크게 나눠보면, 한사람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다양한 사랑 속에서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방식 정도이지 않을까? 물론 이 사이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존재할터이지만 말이다.

토오루는 한사람만을 향해, 코우지는 마치 바람둥이마냥 사랑을 대한다. 그 사랑의 방식은 다르지만 사랑을 통해 느끼는 감성이나 심리변화는 비슷해보인다. 책에서 드러나는 사랑에 대한 감정은 연애편지를 쓸 때 꼭 써먹을 그런 밀어들이 아니라 일기장에 꼭꼭 눌러쓸 그런 표현들이라 생각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54쪽)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은 시후미로 인하여 존재하고 있다. (58쪽)

시후미가 주는 불행이라면, 다른 행복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70쪽)

사랑을 하면 강아지도 시인이 된다 (84쪽)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115쪽)

좋았겠다, 토오루는 그 시절의 코우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147쪽)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때문 (298쪽)

미련, 그말에, 코우지는 흠칫 놀란다. 미련이 남은 듯 키미코에게 연락해버리는 일을, 지산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318쪽) 키미코와 자신이 그토록 서로를 갈망했던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외톨이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있든 유리가 있든, 메우지지 않는 고독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319쪽)

누구든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상처 입는 것에 저항하는 거야, 여자들은(327쪽)

사랑을 하면 기다려지고, 그 기다림이 오래되더라도 행복하고, 목소리가 듣고싶고, 항상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자기와 함께 하지 못한 이전의 시간들이 안타까워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헤어지고 난 뒤에라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쌉싸름하기도 하지만 달콤한 사랑을 이 소설은 그려내고 있다. 그 대부분의 심리가 20살 청년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30대 40대 주부인 시후미와 키미코의 심리를 읽어내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정말 이 청년들을 순수하게 사랑했는지, 아니면 불륜의 쾌감을 즐긴건지. 하지만 이런 혼돈도 청년들의 사랑앞에 같이 녹아들어 분명 이들도 사랑이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이들을 만나왔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성을 벗어던지고, 소설은 이들의 사랑이 불륜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사랑 앞에선 아무 것도 잃을게 없다. 오직 사랑 그 자체를 잃는 것만이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일탈이라는 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일탈에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는 것은 일탈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때문이리라. 내가 순수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것을 따르고자 해도, 그것이 금지된 것이라면 선뜻 행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지금까지 쌓아온 돈이나 명예, 권력이 무너질까 두려운 것이다. 자신을 지탱해주던 관계의 망이 끊어질까 겁나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울타리 안에 거주하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경계를 벗어나도 무섭지가 않다. 그러나 일단 가지고 있는 자는 빼앗기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사랑은 그 두려움을 없애준다. 용기를 일으킨다. 사랑 앞에선 일탈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보면 젊은 이들이 이토록 사랑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아직 쌓아놓은 토대가 두텁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면 먼저 사랑에 대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다.

다른 여러 사람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친해지지도 고립되지도 žb으면서 존재하는 기술을 습득해버렸다.(89쪽)라는 토오루의 심정. 코우지에게 유일하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마음을 준다는 행위였다. 묘하게 연상의 여자한테는 마음을 허락해 버린다. 자기 사람이 될 수 없는 여자에게만, 자기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302쪽)라는 코우지의 심리. 이 둘을 합쳐 놓으면 내 속에 감추어진 그림자가 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난 너무 늙어버린건가? 아니면 아직도 어린 애인가?

고슴도치의 사랑 마냥, 가시에 찔릴 각오를 하고, 아름다운 장미를 꺾기 위해 가시에 찔릴 각오를 하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슴을 찔릴 각오를 하고....

인간이란 모두 완벽하게 상처 없이 태어나지, 굉장하지 않아? 그런데, 그 다음은 말야, 상처뿐이라고 할까, 죽을때까지, 상처는 늘어날 뿐이잖아, 누구라도(327쪽)

코우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내 마음엔 아직 커다란 생채기 하나 없다. 상처가 생기기 전 이미 항생제를 들이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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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2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1-0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기에...

2005-11-16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1-1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께서 드린 걸로 생각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