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맞수>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말 그대로 한 분야의 맞수들을 골라 그들의 경쟁 심리와 함께 서로 이해하고 존경해주는 모습들을 비쳐준다. 이번 주에는 소백산 근처의 말금마을이라는 곳의 두 농부가 주인공이다. 60이라는 같은 나이지만 한 명은 어렸을적부터 전형적인 농부로서 살아온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기업체에서 간부까지 지내다 퇴직 후 자리를 잡은 5년 경력의 초보다. 문제는 이 초보가 유기농 농법을 시도하면서 매사 부딪힐 수밖에 없는 외부환경이다.

전통 농부는 새벽부터 일어나 고추가 제대로 건조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배추가 잘 자라는지 돌보며, 무우를 캐내어 시장에 내놓을 궁리를 한다. 자신이 거둔 농작물의 품질에 대해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는 정도 어려움에 몰리지 않고 잘 해내고 있다.

반면 5년차 농부는 아침 9시나 10시 쯤 느긋하게 일어나 원두커피를 갈아서 커피 한잔 마시고서 천천히 일을 시작한다. 농삿일이라는 것도 그저 자신이 먹을거리만 구하면 되는 것이라 풍작을 기대하지도 않는듯하다. 벌레 한마리 한마리를 손으로 잡아 천천히 던져놓고 잡초는 잡초대로 그냥 놔두고, 놀려둔 땅은 놀려두는대로 땅의 힘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후가 되면 밭에 스피커를 열어놓고 모차르트를 틀어주기도 한다.

이웃사촌은 그 음악소리가 못마땅하다. 하우스 안에서 음악작농은 효과를 보지만 야외에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며 비판하기도 하고, 다른 것은 다 신토불이라면서 왜 음악은 양놈 것을 듣는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웃은 도움을 청하는 초보자에게 아낌없이 도움을 주고, 그를 선량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다만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뿐이라고 이해하면서.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저녁에 집을 수리하는 톱질 소리에 불만도 쌓이고, 비둘기 피해가 염려되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호밀농사를 짓겠다는 고집에 화도 난다.

초보 농부는 친환경적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로 깊은 골짜기에 살면서도 과감히 차를 처분하기로 마음 먹는다. 대신 당나귀를 기를까 고민중이며, 염소도 한마리 살 생각이다. 이웃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에 당나귀는 무리며 임도 또한 경사가 심해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설득하지만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이웃사촌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은 덕분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방식의 차이가 서로에게 낯섬을 넘어 무엇인가 자신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폐해의 크기가 서로 감당하지 못할 지경까지 된다면 과연 그들의 평화는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 염려스럽다. 만약 이들 농부가 바로 옆에서 밭농사가 아닌 논농사를 다른 방식으로 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초보농부의 삶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삶의 방식과 무척 닮아 있었다. 다만 농부 내외가 자급자족을 해내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베짱이로서의 삶의 여유를 부리다 굶어죽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작물은 최대한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사람의 손길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여가로 돌릴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은 과연 꿈일 것인가? 초보 농부는 부족한 것은 이웃에게 빌리고, 나머지는 아무래도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으로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자급자족은 아직 먼 꿈이고, 진정 자급자족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의 여가 대부분을 헌납해야만 되는 것은 아닐까?

전통 농부가 밤낮없이 농사를 하는 것은 농사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함이다. 눈물을 머금고 팔아야만 하는 작물이 있고, 배짱을 퉁기면서 제값을 챙기는 작물도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적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최상의 작물을 위해 비료와 농약을 아낌없이 준다. 물론 그 농부도 농약을 뿌리지 않고 자라난 작물이 건강에도 좋고 자신 또한 농약을 마시지 않아도 되니 좋은 줄은 알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게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옆의 초보농부는 바로 그런 면에서 과연 유기농을 통한 친환경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땅에서 키워야 할 아이들이 이미 성인이 되어 있기에 가능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교육에 대한 문제 등을 생각해보면(또한 문화적 혜택이나 여행, 의료 등등의 제반 조건들도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이 또한 어려운 문제일수밖에 없다. 자급자족은 말 그대로 자족일뿐인데 그 이외의 비용이 들어갈 경우는 어떻게 해결가능할 것인가? 더군다나 농촌을 점차 살아가기 힘든 곳으로 만들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땅에서 말이다.

복지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베짱이로서의 삶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몽상이 되지 않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또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바로 이웃과도 평화를 정착하지 못하면서 친환경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겠는가? 아사 직전이면서도 벌레가 먹을 것을 남겨놓는다는 여유가 관연 가능하겠는가? 초보 농부의 미래가 궁금하다. 어쩌면 그 속에 나의 미래도 조금은 투영되어 있을테니...(만약 단순히 퇴직 후의 전원적인 삶이라는 양태를 띤다면 차라리 젊었을 적 돈 버는데 집착해 나이든 후 느긋하게 별장 생활을 꿈꾸는게 낫지 않겠는가? 행복을 미래에 차출당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또 그것이나마 가능하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