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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이나 서스펜스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장르는 대략 3가지로 흘러가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첫째는 사건이 일어난 후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 종반부에 이르러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사람이 진범임이 드러났을 때 이야기는 극도의 쾌감을 전한다. 두번째는 범인을 미리 밝혀주고, 범인을 잡고자 하는 주인공과 아슬아슬한 추격전. 과연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으며, 어떻게 붙잡을 수 있는지가 흥미진진하다. 세째는 범인이나 또는 추격자의 트릭. 범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또는 범인을 어떻게 유인해서 잡아들이는지에 대한 방법 그 자체가 흥미를 끌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소설 <백야행>은 이 세가지 부류로 구분하기에는 어려울듯 싶다. 물론 소설의 종반부에야 범인을 확실히 밝힌다는 점에서 첫번째로 볼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관심있게 책을 읽는다면 아마 첫 살인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범인을 예상할 수 있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혹시나 결말 부분에 어떤 반전이 숨어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 그건 그냥 기대로 묻어두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두번째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범인을 드러내놓고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추측은 하지만 정작 본격적인 추격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더군다나 새로운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첫번째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세번째 분류에 속해 기상천외한 어떤 트릭을 숨기고 있는냐 하면, 실제로 책을 읽어가면서 범죄의 방법에 대한 궁금증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에서 비껴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럼 도대체 이 소설은 무슨 재미로 읽는단 말인가? 솔직히 범인도 이미 알아챘고, 기발한 방법이 동원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는 것만으론 책을 읽는 동력이 조금 모자라다. 그래서 중반부의 후반부터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않다. 그럼에도 책의 결말을 기대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도대체 왜 이 사건은 발생한 것인가? 라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 바로 왜라는 측면에 이 소설의 재미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오사카의 한 동네. 전당포 가게 주인이 짓다 만 건물의 내부에서 시체로 발견되어진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1년 후 근처 아파트에 살던 주부 한 명이 자살인지 사고인지 모를 이유로 죽는 일이 발생한다. 두 사건은 연결된듯 하지만 그 고리를 찾을 순 없고 결국 유야무야된다. 시간은 흘러 전당포 가게 주인의 아들과 주부의 딸이 초등교 5년에서 어느덧 중학생이 되고, 또 고등학생이 되고... 이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그들 주위에선 이상하게도 계속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첫번째 사건이 발생한 후 19년간의 행적을 담아낸 소설은 마침내 범인을 밝히고 그들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를 이야기한다.
소설 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 사건의 발단은 부모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내팽개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로리타 컴플렉스까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아에 대한 성의 집착이나,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선 자식도 팔아먹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삶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관심없는 엄마 등등.
원래 자신에게는 모성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야에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료지를 낳은 것도 아이를 원해서였던 것이 아니라 낙태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스케와 결혼한 것도 이것으로 일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답답하고 따분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내와 엄마가 아닌 늘 여자이고 싶었다.(하권 257쪽)
상처받은 자가 상처를 감싸안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받은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남에게 주고 마는 세상의 섭리가 무서워진다. 그것이 섭리가 아니라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의 행태라면 좋을 것을... 세상은 가끔 낮이 찾아오지 않는 끝없는 백야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 백야를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 종착지는 어디일까? 이해할듯 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함께 서려있는, 조금은 허탈한 추리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