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최근 TV에서 본 광고 중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다. 아마 샴푸 광고인듯 싶은데, 검은 머리의 모델과 금발 모델의 뒷모습이 먼저 비쳐진다. 그리고 머리를 묶는데 금발은 포크로 흑발은 젓가락을 이용한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신체적 특성이 다르듯 그에 맞춰 다른 성분의 샴푸를 써야 한다는 내용인데, 그 차이를 음식문화로 표현하는 것이 상큼했다. 신토불이의 감성은 이런 곳에서도 통하는가 보다.

죽비소리라는 이 책  또한 이런 신토불이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명상집이나 금언집의 대부분이 서구의 것이거나 또는 중국의 것이기에 뜻깊은 시도로 보여진다. 저자는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글 소중한 한마디 한마디를 평소에 기록해두었다가 한권의 책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명상집이라는 것이 <으례 그렇듯이> , 종교의 절대 명령이 서로 비슷한 것처럼, 그 언어가 다를지라도 사상, 생각은 굉장히 비슷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성씨를 가지고 있는,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호흡을 느끼면서 접하는 글들은 왠지모를 친근함을 준다. 그렇다고 그 친근함으로 말미암아 선조들이 남긴 교훈이 결코 쉽게 넘길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다.

특히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일깨우는 장章은 그야말로 잠자고 있는 정신을 일깨우는 따끔한 죽비를 내리치는 것과 같다. 여현광의 물욕이라는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김유신의 애마에 얽힌 사연과 언뜻 비슷해보인다. 여인을 찾아 길을 나선 밤, 문을 두드려도 아무 기척은 없고, 홀로 기다리다 연못을 바라보니 일렁이는 자신의 그림자. 언뜻 스쳐지나가는 참회. 내가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위해 서 있는가? 이내 자신의 마음 속에 가득찬 욕심을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꼿꼿한 선비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과연 모든 욕은 끊겨야만 하는 대상일까 의구심이 스며든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이 있다.

1.생리적욕구
2.안전의욕구
3.사랑과 소속의 욕구
4.승인과 존경의 욕구
5.자기실현의 욕구

현광이 버리고 갔던 것은 생리적 욕구였을까? 아니면 사랑과 소속의 욕구였을까? 어쨋든 현광이 그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돌아가 학문에 열중했다면 그것은 승인과 존경의 욕구이거나 자기실현의 욕구때문이었으리라 본다. 그리고 이런 욕구들은 앞의 생리, 안전, 사랑, 소속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이 되어졌을때 가능한 것이리라. 즉, 현광은 이미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욕망의 상태를 극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너무 무례한 생각인가?

아니면, 옛 선비들이 말하는 욕구의 절제라는 것은 앞의 욕구를 뛰어넘어 바로 자기실현의 욕구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 

그런데 현광의 그런 자세에 감동을 받는 나는 왜 그런가? 아마도 현실이 구질구질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리적 욕구도 안전의 욕구도 소속의 욕구도 언제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그것에 게의치 않고 살아가는 사람으로부터 남모를 동경을 품고 있는 것일까? 꿋꿋해지자라고 손을 꽉 움켜쥐어본다.

그리고 바로 이런 책이 책 속에서 말하는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지식을 전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고 나서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끄는 책, 또는 그런 삶을 향한 태도와 자세를 갖도록 만드는 책이 아니라면, 그 책은 이미 죽어 있다는 글을 통해 책을 선정하는 기준을 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소일거리, 재미거리로 읽는 책은 다른 성질의 것이기에 논외로 치고서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도 내가 변하지 않았다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는 공자의 말씀이 다시 와 닿는 부분이기도 하다.

죽비에 잠깐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잠이 들련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이 들 무렵 가끔씩 책을 펼쳐 나를 깨우는 죽비소리를 청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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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5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0-06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비 품귀 현상일어나겠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