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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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나서 난감했던 것은 이 책의 장르를 무엇이라고 해야할지였다. 문화인류학적 에세이가 가장 근접할듯 여겨지지만 글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고, 또한 테무진에 대한 인물평전같은 느낌을 지울수도 없었다. 게다가 책의 전체 줄거리를 꿰뚫을만한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더욱 혼란스럽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마드적 인생 행로, 즉 유목의 삶에 대한 찬양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주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설득력에 동의를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유목이나 농경이라는 구분보다는 칭기스 칸의 권력에 대한 동경으로 정복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400쪽이 넘어가는 분량에도 쉽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저자가 실제 칭기스 칸의 행로를 쫓아가면서 체득하게된 현실감을 책에 그대로 살려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슬람 문명과 중국으로 국경을 확대해갈 수 있었던 이유들과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던 원인에 대한 작가의 분석은 참 흥미롭다. 마치 전장의 한 복판에 서 있는듯한 느낌을 주듯이 세세하게 상황을 설명해나가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느낀다. 게릴라전을 연상시키는 전술과 정보전에 대한 선견, 그리고 상대방을 공포로 몰아넣음으로써 손쉽게 승리를 획득하는 심리전 등은 마치 그가 현대의 전투를 치러내고 있는듯이 여겨질 정도다. 또한 중국의 왕조들이 전쟁을 치르면서 그렇게도 중요하게 여겼던 보급로에 대한 개념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전략에 혀를 내두를수밖에 없다. 먹어야 힘을 내고 싸울텐데 그 먹는 것을 농경이 아닌 유목민적 특성으로 극복해나가는 장면은 정말 기발하다. 정복지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얻어가면서 전진하는 모습. 농경민의 눈으로 바라보면 농경지를 파괴하고 문명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땅을 짓밞음으로써 초원을 생성하고, 그 초원을 바탕으로 양식을 얻어가는 모습은, 문명의 차이가 가져다주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렇게 멈추어 서지 않는 삶은 정복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저 문물의 유통만을 통제하고자 하는 새로운 통치의 방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칭기스 칸이 세계를 정복해 가는 과정 중 어떻게에 대한 하나의 해답일뿐이다. 그 어떻게의 매력만으로도 책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는 갑자기 라는 질문을 떠올려본다.

내가 먼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달라. (172쪽)는 그야말로 변명이다. 다른 국가를 침범하기 위한 구실일뿐인 것이다.

몽골군은 전투에서 명예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서 명예를 찾았다. (154쪽)는 병사 개개인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명분일련지도 모른다.

칭기스칸은 평화와 번영이 그 나름의 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았다(131쪽)가 어떻게보면 계속해서 확장을 해야만 할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될련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아마 이런 관점에서 칭기스칸의 정복을 설명하려 든 것 같다. 즉 약탈 경제로 이루어진 유목적 삶은 유통의 확장을 통해서 문물이 교환되어질 때에만 그 체제를 유지할 수 있기때문에 일단 국경이 정해지고 정체되어지는 순간 몰락의 순간이 다가올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크로드와 중세 유럽의 변화 아랍권의 몰락 등도 이러한 유통을 확장시킨 몽골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정복의 형태는 테무진 개인의 권력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칭기스칸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파괴했다(135쪽)라는 작가의 설명이 내게 있어서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여겨졌다. 세상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싶었던 욕구는 제국의 초기시절, 형제를 죽이면서 몽골을 통일시켰던 모습 속에서부터 찾아질 수 있다. 칭기스칸이 후손들에게 절제를 강조했듯, 그 자신은 물질에 대한 어떤 소유욕을 드러낸 적은 별로 없는듯이 여겨진다. 그에게 있어서는 오직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냐, 없는냐가 보다 큰 관건이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그 순수한 통제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권력욕이야말로, 물질적 풍요를 위해 땅을 넓혀왔던 기존의 제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통제라는 것 또한 그저 흐름에 대한 통제일뿐 문화나 언어, 종교에 대한 어떤 구속이 없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제국과는 또다른 양태를 띠고 있다고 생각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물질주의적 욕망을 부추기면서 그 물질적 생산의 토대를 착취하는 현재의 제국들이나, 종교적 박해를 가하는, 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피를 원하는 그런 국가들에게 일침을 가하는듯이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노자가 말하는 소민과국의 유토피아를 동경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제국이라도 분명 착취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지만, 몽골이 특히 칭기스칸이 보여주는 인종, 언어, 문화, 종교에 대한 편견없는 자세는 지극히 놀랍다. 착취와 편견없이도 자유로운 교환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는 표본으로서 칭기스칸이 이끌었던 몽골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것 같다.

사족: 제국을 확장하면서 활약하는 사절단의 대부분은 거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과연 사절단으로 누가 뽑혀 갔을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 또한 자신이 팔아치운 노예들로 인해 결국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책 곳곳에 숨겨진 재미들은 이것 말고도 상당하다. 다만 모든 것이 다 장밋빛마냥 그려져 있는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 몽골은 칭기스칸은 위대했다라는 생각을 전제로 쓰여져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과연 한 점 허물없는 사람이었는가 돌이켜보게 만든다. 위에서도 썼듯이 절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권력욕은 전혀 통제할 수 없었던 인물은 아니었을까 어리석은 질문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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