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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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하고 엄청난 피해가 일자 미국은 아우성이다. 늑장대응이라는 비난과 함께 인종차별 문제까지 들고 일어났다.  게다가 허리케인 5등급의 리타가 다시 멕시코만을 위협하자, 이번엔 지구온난화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던 부시를 질타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마도 정치적 색깔을 띠고 있는 공격성 비판으로 보이긴 하지만 일견 무시못할 부분이기도 하다. 온난화로 인해 허리케인의 강도가 거세어지고 있다는 분석은 아마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문제와는 별도로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면, 그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명의 문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듯 싶다. 일반적으로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과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낙관 속에 빠져 있다. 배가 터지게 먹고나서 소화제 먹으면 된다는 식의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반면 온난화에 대한 논의에선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줄이자는 식의 해결책이 나오고 있다. 즉 배터지기 전에 조금 덜 먹어보자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지구의  온도를 떨어뜨릴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보자는 방식이 아니고서 말이다.  문명이 일으킨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인간의 욕망의 크기를 조절하자는 생각은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조금 비켜간 겸손한 방식일지도 모른다.(물론 여기에도 선진국이 후진국에 대한 오염수출산업이라는 경제논리가 숨어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책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바로 이런 근거없는 과학적 낙관론을 기반으로 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돋보인다.

갑자기 돌은 하나의 상징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이 돌은 서구과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결정체가 된다. 계산, 증오, 희망, 공포, 모든 것을 측정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어떤 공감보다도 강한 것- 돈을 바라는 욕망.

그러고 보니 이 책이 마치 문명비판서처럼 느껴질련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시계에 의해 자신의 삶을 지탱해간다. 거기에 약간의 변화만 주면 거의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또한 '스밀라...' 는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다.

한 아이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경찰은 자살로 생각하지만 주인공 스밀라는 절대 자살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것은 옥상 위에 남겨진 아이의 발자국 모양새를 보고서 판단한 것이다. 스밀라는 그린란드인으로서 눈과 얼음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감각을 지니고 있다. 스밀라는 왜 아이가 죽었는지 알아보려 한다.

소설은 아이의 죽음을 발단으로 그 뒤에 감추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어지는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155센티미터의 스밀라가 톡톡 내뱉는 말이나 갑작스런 행동들 하나하나는 그녀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만든다.

자신에게 잉여가 있을 때나 사랑이 일어나는 것이다. 기초적인 본능들, 굶주림, 잠, 안전에 대한 요구로 환원되고 나면, 사랑은 사라지고 만다.

라고 이야기하는 스밀라는 그러나 그 밑바탕에 한없는 애정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소년의 죽음으로 치부할 수 있건만 그녀가 그토록 그 죽음의 원인을 캐고자 했던건 아무래도 소년을 사랑했기 ‹š문이리라. 때론 냉소적으로, 세상에 무관심한듯 보이지만, 그녀는 삶을, 자유를 사랑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현대인의 외로운 사람들을 그대로 비쳐주는 것 같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사람들,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한없는 따뜻함. 스밀라는 바로 현대인들의 자화상이자, 점차 잃어버리고 있는 체온이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사건의 얼개와 그것을 풀어가는 캐릭터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흥미롭기 때문이다. 

스밀라는 이 소설을 통해 삶과 자유는 욕망의 크기를 줄여나갈때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로운 이들이여, 스밀라를 사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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