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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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잠정중단되고 업무복귀가 이루어지던 다음날. 선배 한 분이 이 책을 선물했다. 나는 항상 선물을 받을 때면 책의 앞장에 아무말이라도 하나 써주라고 요구한다.(선물 받는 것만도 고마운데 참 뻔뻔스럽게도...) 선배는 정말로 쓰고 싶은 말은 책의 앞 표지에 쓰여져 있다고 했다. 그럼 다른 말이라도 써 달라고 했다. 그래서 쓰여진 말은 우보천리(牛步千里). 그리고 여기 책의 앞 장에 쓰여진 머리말을 옮겨본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아마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서 전해주고픈 글귀였는지 모르겠다. 또한 파업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좌절하지 않고 함께 지켜갔다는 동지애에서 비롯된 말이었는지도. 즉 위의 인용문 중 '글' 대신에 '행동'으로 대치했을때 지난 66일간의 지난한 과정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단 말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건대 이번엔 책의 뒤표지에 쓰여진 글귀때문에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비록 내가 지식인은 아니지만 나 자신에 대한 배신을 하지 않기 위해 지난 시간 파업이라는 고통을 감수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책을 선물한 선배와 나와의 공통점은 파업이 결의되기전 회사를 떠나려했다는 것이다. 각자 인생의 계획대로 걸어나가기 위해서 결단의 순간이 왔다고 여긴 순간, 노조가 파업을 결정했다. 파업이 들어가기까지 3,4일간 고민의 시간이었다. 파업이 그냥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면 과감이 떠나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은 임금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인의 비도덕성, 무능함을 사원들에게 전가하는 뻔뻔함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었다. 그냥 떠나버리면 간단히 끝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업의 성격이 이러하니 차마 그냥 나올 수가 없었다. 즉, 리영희 교수가 말하는 회피나 기권으로 얼버무리기는 싫었던 탓이리라. 그래서 선배와 함께 힘든 길을 선택했다. 내가 계획했던 인생의 행로가 다소 늦추어진다 하더라도 이것은 분명 값진 일일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리고 다시 업무복귀. 파업은 잠정 중단이다. 실패로 끝났거나 성공했다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중단은 또다른 문제다. 결정이 어느 쪽으로든 났다면 좋았을 것을, 이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막막하다. 아마 그런 속내를 알고 있는 선배로서, 그리고 같은 고민을 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선물했을듯 싶기도 하다.

아, 부끄럽다. 리영희 선생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때 북한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했다며 난리를 피울때 완전히 다른 의견을 내비친 기사 한꼭지를 읽으면서 알게됐다. 70,80년대 사상적 스승이었던 그 분의 책을 한권도 접하지 못하고, 사회 생활로 내처졌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리영희 선생의 삶은 언론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의 표본이다. 말 그대로 사회와 권력집단이 심어준 우상을 철저히 파괴하고, 이성으로서 맞선 치열한 삶이었다. 그의 글들은 세상의 흐름을 읽고, 감추어진 공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져 있기에, 커다란 힘을 갖는다. 아무리 그를 깎아내리려 하거나 글에 대해 비판하려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은 철저한 탐구에 있다. 단순히 어떤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주장들이 허구임을 그들의 자료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의 흐름을 모두 통찰함으로써 이 나라 이 곳의 진실을 건네주려 한다. 그리고 그 진실의 글로 인해 옥고도 3차례나 치른다.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그의 의지로 인해 형벌을 견뎌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권력의 폭압과 상황의 분기점에 직면했을때, 자신의 사상적 자기충실을 택해야 하는 것을 보고, 한때 내가 심취했던 사르트르의 이른바 "자유는 형벌이다" 라는 명제가 처음으로 실감나게 와닿더구만(389쪽)

자기 자신에게 규율을 가하고, 그 규율이 자기 삶에 의미 있는 규율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것에 따름으로써 보다 승화된 삶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488쪽)

지금 나는 굉장히 괴롭다. 아직도 여전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갈팡질팡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라는 것이 힘들게 만든다. 참으로 꼿꼿한 지식인의 삶의 표상을 읽어가면서도 나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만 하는지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더 우습다.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내가 겨누고 있는 적의 모습은 희미하다. 직접적인 압박이 아니라 일상을 죄어오는 시련에 차라리 기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외부의 문제보다도 내부의 문제가 점차 불거져간다. 사람에 대한 희망의 한편에 절망의 씨앗도 커져간다.

대화라는 책이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에피소드 속에 드러나는 인물들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어렸을 적 김소월로부터 시작해서 고은, 조정래, 백낙청 등등, 그리고 조선일보 외신부장 시절 중에 수습으로 들어왔던 김대중 주필에 대한 단상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장일순 선생과의 관계 등등,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젊을적 모습을 읽어가는 재미도 만만치않다. 그래서 지금 나의 주변인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 사람들 내부에 감추어진 욕망의 씨앗은 과연 무엇을 쥐고자 하는 것일까?

시대의 흐름을 꿰뚫고 오직 자유를 향해, 그 본질적 삶을 채우기 위해, 진실만을 향했던 리영희 선생의 지난한 삶은 존경스럽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하기 때문이다. 회피하고 얼버무리면 편안할 것을...

아~, 나는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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