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기독교 세계관을 지닌 서구인들에겐 요한 게시록을 통해서 종종 드러나곤 한다. 기독교에 대한 문외한임에도 워낙 자주 영화의 소재로 요한 게시록이 등장한터라, 그 내용을 따라잡는데 큰 어려움은 없는듯이 보였다.
뤽 베송이 각본을 맡은 이번 영화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상당히 잘 짜여진 얼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7개의 봉인이 뜯겨지면 종말과 관련된 무엇인가가 나올 것이라 여겨졌고, 그것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어졌다. 그리고 왜 현재 그 보물을 꼭 찾아야지만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은 종말과 관련되기 보다는 '주의 서책'이라는 보물로서 인식되어지고, 다시 그것은 새로운 유럽을 탄생시키겠다는 힘의 상징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또한 그 7개의 봉인을 뜯어가는 과정과 예수의 12제자 죽음이 맞물려 있는듯 보여지면서도, 도대체 12제자와 봉인과는 어떤 관계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혼동을 가중시킨다. 즉 봉인과 12제자의 관계는 실제로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에-12제자로 이루어진 신자집단이 우연히 고대 성당을 구매함으로써, 그리고 그 중 미장이가 새로 건물을 단장하면서 우연히 보물이 놓여져 있는 곳을 발견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살인자와 피살자간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둘의 관계가 예정되어져 있는 모양 필연적인 모습을 갖추어져 나가고 있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촘촘한듯 보여졌던 이야기의 구조가 느슨하게 풀어져버린다.
게다가 또 그 맥없는 결말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인디아나 존스류의 보물을 찾는 탐험을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그 마지막 결말만 가져오는 듯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즉, 보물을 지켜내기 위한 여러가지 함정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면서 마지막 결정적인 함정의 모양새만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황당무계하기까지 하다.
액션장면은 또 어떤가? 총알세례를 퍼붓는 장면은 나름대로 묘미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물이 쏟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다 약물을 먹고, 헐크처럼 힘을 내는 장면은 관객이 미리 예상하도록 유도해놓고도 코미디처럼 느껴져버린다. 게다가 초반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 마치 우롱하듯 주인공 형사를 가지고 노는 듯하는 살인기기 전사는 도대체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다. 급박한듯 보여지다가도 갑자기 코미디처럼 느껴져버림으로써 액션의 긴장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조였다 풀었다 하는 리듬을 타기 위한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넓은 아량이 필요하다.
억지로 끼워맞춰진듯한 이야기의 틈새들을 쳐다보지 않고 그냥 전체 그림만 느긋하게 즐긴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그 조각들의 거친 선들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겐 조금은 맥없는 영화일듯하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져버리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