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파업 선포식을 가졌다. 대학교 때 배운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피부로 직접 다가오는 순간이다. 정리해고라는 칼날에 저항해서 노동자가 기껏 가지고 있는 무기는 파업밖에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왜 정리해고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도 없이, 그저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와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만을 계속 할뿐 경영상의 어려움을 증명할 자료도, 시기적으로 왜 이렇게 서두를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 이후 회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청사진도 없이 그저 칼날에 목을 내 놓으라고 한다.

구조조정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가 아니다. 회사가 외부 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또는 사회 변동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서 기업체가 할수없이 몸무게를 줄이거나, 다른 사업으로 변경해야지만 살아남는 경우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도마뱀의 꼬리를 자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단순히 도마뱀의 꼬리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도마뱀의 머리를 잘라내는 격이다. 머리를 자르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경영자였다라고 생각하니 어찌보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이 닥쳐온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조원들이 파업을 결정했을때 조금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90%에 육박하는 파업찬성에 먼저 놀라기도 했지만, (이것은 분명 부도덕한 경영자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후배들의 목을 쳐낸 것을 지켜본 선배들의 애정이 함께 녹아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 과연 평상시 모래알처럼 보이던 동료들이 한마음이 되어 뭉칠수 있을것인가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오늘 선포식을 지켜보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파업이 장기회되고, 사측이 어떤 비열한 방법을 동원할지 모르지만, 오늘과 같이 한마음이 된다면 아무 걱정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됐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떠난다고 해서 먹을 것 걱정을 할 처지도 아니고,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의 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른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기에 이것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길도 놓여져 있다.(물론 그 길도 쉽지 않다. 몇년의 피땀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파업을 결정하기 전 희망퇴직이라는 불순한 의도의 회사 방침에 순응해 떠날수는 없었다. 이대로 회사를 떠난다면 난 지금 이후의 내 삶에서 얼마나 떳떳하게 살 수 있을까 자문해보고 또 자문해봤다.

자기들끼리만 살아보겠다고 노동자들의 목을 아무 거리낌없이 치고 있는 그들의 강심장에 비수를 꽂지 아니하고서는 내가 진정 꿈꾸는 세상살이를 해낼 수 있는 명분을 지닐 수 없을 것 같았다. 분명 힘들고 외롭고  포기하고픈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안다. 솔직히 이 파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두려움도 크다. 하지만 내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내 인생의 다시 오지 못할 투쟁이라 생각하니 자뭇 격양되기도 하다. 이 싸움이 승리로 끝날지 패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마지막까지 나에게 정정당당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닐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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