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가에 강아지풀이 뛰어논다. 아이에게 강아지풀을 가르쳐줬더니 볼 때마다 멍멍이풀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개꼬리풀이라고도 불려왔다.
조의 야생종으로 조심히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구황작물로도 쓰였다. 벼과의 식물이다. 이삭이 맺혀 익으면 껍질을 벗기고 죽을 써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구황작물 하면 언뜻 떠오르지 않는 것은 가을은 보릿고개보다 그나마 견딜만해서였지 않았을까 맘대로 생각해본다.
강아지풀 뿌리는 9월에 캐어 말려서 촌충을 없애는 데 쓰기도 한다. 지금이야 구충제가 있으니 이 또한 쓰일 일이 없어졌다. 한방에서는 여름에 전초를 채취하여 말린 것을 약용으로 사용한다. 열독을 풀어주는 작용이 있다. 충혈된 눈을 치료하고 눈을 맑게 해준다. 종기, 옴, 버짐이나 상처가 생겼을 때도 쓴다.
먹을게 흔해지고 약도 넘쳐나는 시대이다 보니 길가에 흔한 것들이 대접을 못받는다. 아니다. 건강염려증 덕분에 쇠비름, 개똥쑥처럼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것들이 씨가 마를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 그런 영광(?)이 아직 강아지풀에겐 돌아가지 않았을 뿐일지도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을이 되니 강아지풀은 제 신명에 뛰어논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