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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 도솔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장일순씨 생전의 서예와 그림, 그리고 말씀 등을 싣고 있다. 그 스스로 많은 책을 남기지 않은 관계로 매우 소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파격적인 한글과, 간결하면서도 지조나 사람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는 난 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주는 소중한 책인듯 싶다.
장일순 씨는 60년대 중립평화론을 주장하다 옥고를 치르고 나서, 요주의 대상에 오른 인물이다. 김지하의 정신적 스승이며, 원주라는 곳이 박정희 정권시절 정치적 투쟁의, 민주화를 위한 메카로 떠오르게 만든 숨은 주역이다. 최근 웰빙 바람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유기농에 대한 접근도 이미 이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한살림>을 통해서 땅과 농부와 도시의 소비자가 하나가 되어 더불어 잘 살자는 취지의 협동조합 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그의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그는 한결같이 퍼 주었다. 그것은 부자의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항상 바닥에서 기어 모든 뭇 생명들과 함께 하자는 그의 사상의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풍성한 그의 모든 생각들의 대부분을 드러낸다고 생각되어지는 말씀이 있다.
친구가 똥물에 바져 있을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럴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는냐고 하면 친구도 알아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옵니다.(147쪽)
우리는 세상을 향해 무던히도 욕을 해댑니다. 저래서 나쁘다. 이래서 나쁘다. 저러니 안된다. 이러니 될 리가 있는냐?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저런 사람은 살 가치가 있다 없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으례 그러려니 하며 술안주로 사람들을 올려놓습니다. 흔히 뒷다마(담화?)라고 하죠? 아니, 뒤에서 욕하지 않고 바로 앞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합시다. 상대방은 그 가르침에 따르던가요? 장일순은 그렇게 해서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두발로 딛고 있는 바로 그곳으로 내려가 함께 나오자고 해야 한답니다. 그래서 그는 전두환도 노태우도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했었죠. 내가 너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이 올바르기 때문에, 넌 바닥을 기는 나쁜 놈이기 때문에 내 말을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처한 그 곳으로 함께 가서, 왜 잘못되었는지를 직접 깨닫게 하여 함께 나오자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 친구를 위한다면 그 똥물로 들어갈 각오를 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우린 에이, 넌 그냥 그렇게 살아라 하고 체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끝끝내 바깥에서 외치며 스스로 잘났다고 자위할련지도 모르죠. 그러나 장일순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든 생이 바로 똥물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진짜 얻어야 하는 것은 누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삶이기 때문이다.(231쪽)
그는 평화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다 퍼주었습니다. 그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 또한 그렇게 퍼줄 것이라 믿습니다. 평화는 그렇게 하나 둘씩 물들어 가겠죠. 겨울의 눈이 봄 햇볕에 녹듯 말이죠. 얼어붙은 땅이 어느새 풀어지듯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