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일지 5월 21일 오전 7도 오후 28도 오전 안개 짙음.

 

인터넷이 또 끊겼다가 연결됐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광회선을 끊은 것 같다는데....

 

어젯밤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태근 흙살림 회장이 농장을 둘러보다 호통을 친 것이다. 방울토마토의 곁순을 잘라내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농장일정이 대체적으로 늦어지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는데, 곁순자르기마저 늦어지니 화가 나신 것이다. 연수생들에게 "농사 지을 사람들 맞는냐"는 험한 소리까지 나왔다. 연수생들은 지난 주말부터 계속해 상추 모종을 심는라 정신 없었는데...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방송 뉴스를 보아도 제일 처음에 나오는 뉴스가 있고, 신문을 보아도 1면에 나오는 뉴스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도 무엇이 중요한지에 따라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최근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세대들의 등장은 그들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이기도 할 것이다.

 

조금 거창해졌다. 아무튼 농사에서도 우선 순위가 있다. 농사란 때가 중요한 법이니까. 그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선 순위를 잘 결정해야만 한다. 이것을 잘 하는 사람이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연수생들이 제 때에 제 일을 잘 해 낸다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그걸 잘 안다면 연수를 왜 받겠는가. 바로 농사를 짓지. 그러나 어찌됐든 이번의 호통이 농장일이 돌아가는 시스템에 변경을 줄 수 있을듯하다. 호통 이후 3시간 정도의 토론이 이어졌으니 변화가 생겨야만 할 일이다. 농장에 중점을 두고 있는 작물을 위주로 일이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 이번 기회를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혼선으로 가득했던 지휘 체계도 이번을 계기로 바로 서기를 바랄 뿐이다.

 

시기가 늦어진 곁순자르기를 따라잡기 위해 어젯밤부터 오늘 오후까지 강행군이었다. 초여름 더위 속 하우스 안은 찜통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한가닥 다행인 것은 곁순을 따면서 생기는 상처에서 풍기는 냄새가 향기롭다는 것이다. 달콤함이 묻어 있다. 평소 잔디를 깎을 때 나는 냄새를 잔디의 피냄새라 여겼었는데, 오늘 방울토마토의 곁순을 따면서는 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향기란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든다. 향기 나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나의 마음, 정신에선 어떤 향기가 풍겨나오는지 점검좀 해보아야 할 일이다.

 

토마토의 곁순을 자르고 나서는 지지대를 설치했다. 그리고 고추를 둘러보는데 다소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9번 하우스의  토종 고추들의 잎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것이다. 또 꽃이 노랗게 시들어 있다. 반면 3번 하우스의 녹광은 고추가 열리기 시작했다. 내일 고수 분을 불러 문제점과 해결책을 배울 심산이다. 또 토마토 고수로부터는 유인줄을 어떻게 묶을 것인지를 배울 계획이다. 주도적으로 무엇인가 차근차근 배워가는 것이 꽤 재미있다. 비록 몸은 땀방울에 절어 힘들지만 주체적으로 결정해 행동한다는 것의 즐거움은 크다. 자기주도학습. 농사에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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