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맑음 오전 6도 오후 27도 하우스 온도 오전 19도 오후 39도

 

오늘은 새벽부터 부산했다. 120미터짜리 하우스의 비닐을 씌우는 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하우스 비닐은 바람이 잔잔한 새벽에 많이 씌운다고 한다. 현재 농장에 있는 하우스 10동은 길이가 55미터짜리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짓는 하우스 2동은 그 배가 넘는 120미터에 이른다. 55미터짜리 하우스에 토마토, 상추, 고추를 심는 것도 힘에 부쳤는데 120미터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잠깐 농장을 둘러보았다. 보리가 어느새 훌쩍 자라 이삭을 폈다. 아침햇살에 부서지는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 크로우가 손으로 쓸고 간 것은 밀이었겠지만, 보리를 보니 문득 그 장면이 생생하다. 평화로움의 상징처럼 비쳐지던 그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잠깐의 여유 뒤엔 엄청난 일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의 길이가 워낙 길다보니 비닐을 잡아당기는 것을 사람이 아닌 트럭의 힘을 빌릴 정도다.

 

 

장정 8명이 힘을 합쳐 겨우 비닐을 잡아끈다. 탄탄하게 고정시킨 후 우리 연수생들은 본연의 일로 돌아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볍씨 파종을 했다. 오전엔 그런데로 견딜만했는데, 오후가 되니 하우스 안 온도가 40도에 육박했다. 땀이 주르르 흐른다. 잠깐 땀을 식히려 하우스 밖으로 나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아마도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 초여름 날씨라고 무척 더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더위가 시원하게 느껴지다니, 세상 참 알 수 없는 곳이다. 상대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결코 함부로 어떤 상황을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 그리고 요즘 틱낫한 스님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스님이 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벌써 수십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반복해 되새기려 한다.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선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하우스를 짓고 있는 일꾼들의 일하는 꼬락서니가 맘에 안들어서인지 일거수일투족이 거슬린다. 사방을 어지럽히고, 예의를 찾아보기 힘들고, 일은 날림으로 하는 것 같은 인상에... 그래서 이들을 챙겨주는 것이 달갑지 않다. 이 감정의 실체를 보려 노력했지만 쉽지않다. 그저 어서 일을 끝내고 떠나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분노 아닌 분노, 미움이 결국 나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도 알겠는데 쉽사리 흘려보내지 못하겠다. 틱낫한 스님의 방한을 계기로 다시 마음 공부좀 해야 겠다. 내 안의 호랑이를 잠들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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