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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단련하다 - 인간의 현재 ㅣ 도쿄대 강의 1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다치바나가 도쿄대 교양학부 강의시절에 했던 강의 내용을 새로 고쳐 활자로 내보인 것이다. 책의 주된 테마는 세계 지식의 대충 훑어보기정도가 되겠는데, 특히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지의 스펙트럼을 경험해야 할 것과 그 스펙트럼의 넓이를 보여주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이 지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근거로 다치바나는 뇌에 대한 연구자료들을 내놓는다. 생명체들은 감수성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오리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대상을 어머니로 인식하듯, 일정시기에 접하는 것들이 평생의 경향을 좌우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예로써 고양이의 눈을 가리고 행하는 실험이 있는데, 어렸을 적 한쪽 눈을 가린 고양이는 그 시력을 통해 이뤄지는 뇌의 작용이 활성화 되지 않게 되는 반면, 다 큰 고양이에게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이것은 뇌의 작용(지적인 것이든, 성격과 관련된 것이든)이 어떤 일정 시기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며, 이 시기를 감수성기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적 발달을 좌우하는 뇌의 시기가 바로 20세 전후이며, 따라서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다양한 지의 스펙트럼을 만나야 할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런 스펙트럼의 다양화를 외치면서도, 특히 자연과학 분야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현재 우리가 놓여져 있는 사회가 과학분야를 근간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양자역학과 분자생물학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는 세상. 따라서 세상을 바로 이해하고, 그것에 그치지않고 세상에 주역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연과학에 대한 기본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대학이 이런 중요한 자연과학에 대한 교육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은 그의 또다른 책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등에서 이미 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의 이런 계속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찌된 것이 정말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그런 지식, 즉 교양이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더 강하게 든다. 분명 신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인간복제나, 환경, 에너지 문제등과 직면해 있고, 그런 기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에 대한 밑바탕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신문을 읽지 않는다고, 또는 뉴스를 접하지 않는다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따르던가? 하는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런 자연과학적 지식보다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수 있는가, 그리고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이 그 사람에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주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든단 말이다. 아니면 차라리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듯 보이는 자연과의 합일점을 찾는 삶이 보다 행복하지 않는가 하는 의심말이다. 이것은 세상이 발전하는 것인가나 행복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전제되어야 할 듯 보이지만, 아무튼 교양인의 소양이라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줄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저 지적유희라고 한다면 또 모를까? 세상을 한눈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며, 앞으로 나아가 미래를 예측하는 재미말이다. 따라서 이 책 제목이 말하듯 뇌를 단련하는 의미는 교양인으로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지적 게임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승급쌓기 정도로 이해되어진다.
반쪽 지식인들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 반쪽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마음에 딴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