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 오전 4도 오후 15도 소나기 살짝 지나감
농장 하우스의 비닐을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보통 비닐은 3년에서 5년에 한번씩 갈아줘야만 한다. 강풍에 날아가 찢기기도 하거니와 자외선 투과도가 떨어져 작물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비닐을 다 걷어낸 하우스 골조를 바라보자니 고래뼈가 생각난다. 고래뼈가 생각나니 바비킴의 고래의 꿈이라는 노래가 생각나고... 그러다 보니 나의 고래는 무엇인가 상념에 잠긴다. 물론 잠깐이다. 지금 이렇게 상념에 잠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농장은 바쁘다.
오늘은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심을 하우스에 두둑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먼저 로타리(땅을 얕게 갈아 평탄하게 만들어줌)를 치고 두둑의 갯수에 따라 너비를 정하고 골을 만든다. 두둑은 반듯하고 평탄할수록 작물을 심고 관리하기가 편하다. 즉 작물을 심는 기초공사인 것이다. 그래서 두둑을 반듯하게 만들기 위해 양쪽에 줄을 걸고 그 위를 걸어 발자국을 낸다. 마치 모델들이 무대 위에서 캣워크를 잘하기 위해 연습을 하듯 일자로 걷는다. 부드러운 흙위에서 발에 힘을 주며 걷는 모양새가 우습다. 농부의 걸음걸이가 모델과 같은 순간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 발자국을 따라서 관리기로 두둑을 판 후 평탄하게 다듬는다. 나무판자기로 밀어내는 작업 후 점적호스(땅에 호스를 묻고 물을 주기 위한 장치. 호스 중간중간에 구멍이 뚫려있어 일정한 양의 물을 동시에 줄 수 있다)를 깔고 그 위에 멀칭(비닐을 덮는 작업)을 한다.
상추를 심었을 때 잘못한 바람에 같은 일을 세번이나 하는 낭패를 당한 경험이 이번 작업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 팽팽하게 멀칭을 하고 나서 바라보니 뿌듯했다. 제법 농사일이 손에 익어가는 걸까. 그래도 관리기나 트랙터를 다룰 기회가 아직 없어 갈길은 멀어보인다. 하지만 이젠 제법 발걸음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이렇게 한 발 한 발 걸어가 보자. 뚜벅뚜벅 가다보면 꼬박꼬박 실력이 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