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저쪽에 사다리좀 가져와 줘"

하우스 안쪽에 비닐막을 치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사다리가 어디 있는거야?' 멀리서 사다리를 찾고 있는 L씨를 지켜보는 나도 궁금했다. 저쪽에 있다는 사다리가 L씨와 내 눈엔 비치지 않은 것이다. 지켜보다 못한 K 형님께서 직접 사다리를 찾아 가져오신다. '어라, 이게 사다리였네!'

 

 

 

고정관념이란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아니, 우스운거다. 멀쩡하게 있는 것도 보이지 않게 만드니 말이다. 평상시 자주 보아왔던 사다리와 조금만 다르게 생겨도 사다리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다니.. 분명 사다리인데 사다리인줄 모르고 지나쳐갔다는게 민망하다. 고정관념 속에 쌓여 실체를 모른 체 지나쳐버린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 반성해본다.

 

오늘은 비닐하우스 안에 물을 잔뜩 뿌리고 있다. 스프링쿨러를 통해 골고루 뿌린다. 홍수가 난다는 기분으로 뿌려야 한다. 발로 찍었을 때 발바닥에 물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말이다. 다른 하우스 안의 땅을 쟁기로 갈던 중 파이프가 파손됐다. 물을 잠그로 파이프를 고치느라 또 진땀을 뻈다.

 

 

기계의 편리함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 함께 공존하는 순간이다. 기계란 결국 말썽을 피우기 마련이지 않던가. 기계가 주는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우리는 그 말썽에도 대처해야만 한다. 편리와 말썽 사이 그 어디쯤의 이득에 따라 우리는 기계를 더 사랑할 수도, 또는 폐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문명은 어느 정도의 자리에 처해 있을지 궁금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