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일지 4월 9일
오늘 날씨는 요상하다. 여우비를 이렇게 흔하게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겨울이 봄을 시샘하는 것을 넘어 이건 완전히 해꼬지다. 하우스 안은 더웠다 추웠다 종잡을 수 없다. 온몸의 근육이 아프다고 신음을 하고 있는데, 날씨까지 이 모양이니 감기라도 들 모양새다.
농장에서 같이 연수를 받고 있는 L씨와 K씨
오늘은 트랙터를 가지고 하우스 안에 로타리(땅을 15센티미터 정도 갈아엎어 고르게 하는 일-땅속 부산물과 퇴비 등이 골고루 섞이도록 하는 목적) 작업을 했다. 물론 트랙터는 내가 운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는지는 배웠다. 크게 어려울 것은 없어보이지만 막상 올라가 시운전을 해보니 이것도 자동차를 모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장농면허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연수를 받듯 몇번 실전 감각을 익혀야 제대로 운전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누가 트랙터를 몰았냐고? 나보다 40여일 먼저 연수생활을 시작한 K 형님께서 그나마 경험이 있어서 전담하셨다. 그럼 나는 뭘 했지.ㅋㅋ. 그냥 풀이나 뽑았다. 트랙터가 지나가지 못하는 곳에 자라난 풀들은 일일이 손으로 뽑아줘야만 한다. 겨울내내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보니 풀이 너무나 무성하다. 풀뽑기가 이리도 힘든 일인지는 미처 몰랐다.
뽑고 또 뽑고... 몸이 지쳐가도 뽑고 또 뽑기를 수십번. 도대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ㅎㅎ 연수 이틀째 벌써 놈이 찾아왔다. 회의라는 이름의 친구. 이놈은 뭔가 작정을 하고 덤벼드는 일에 느닷없이 나타나는게 특징이지 않던가. 아무튼 이 친구 덕에 내가 귀농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한 건 아닌가 되돌아본다. 그런데 귀농이 낭만이 되어서는 안될 일은 또 무엇인가 반항심도 인다. 그래서 풀을 뽑다 살짝 일부러 놓치고 갔다. 야생화가 아름다워서 뿌리를 뽑아내는게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이 한포기 꽃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잠시라도 너의 아름다움을 뽐내기를 소망해본다.
그리고 또 하나. 농장에 친구가 하나 생겼다. 오른발을 다친 암탉이다. 사람 무서운줄 모르고 주위에서 어슬렁거린다. 뭐 먹을것 없나 서성이고 있는 모양새가 꼭 강아지같다. 때마침 사과를 먹고 있던 K형님에게 이 암탉이 다가갔다.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향해 뛰어오르더니 쪼아먹는다. 어라, 이놈 겁을 상실한게 아니더냐. 그래도 어쩔 것인가. 이놈? 덕분에 한바탄 웃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그래, 암탉아 너라도 있어 다행이다. 몸이 천근만근이니, 개뿔, 낭만은 코빼기도 안보인다. 그래도 느닷없이 만나는 너희들이 낭만의 그림자라도 되어주길 바란다.
아, 그러나 현실은 슬프다. 저녁에 딸과 화상통화를 하는데 그만 딸아이가 "아빠, 보고싶어"라며 눈물을 터뜨린다. 이런 제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가 도대체 지금 왜 여기 있는냐고! 안돼겠다. 다음부턴 딸아이와 화상통화를 포기해야 겠다. 그냥 목소리만 듣자. 그런데 딸아이는 전화통화를 싫어하는데 어떡하나. 오늘밤은 아무래도 엄청 길어질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