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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평점 :
건강이란 무엇인가? ... 삶이 왜곡되면 생리적 리듬도 어긋나게 마련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전쟁도, 지순한 사랑의 파토스도 삶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 병이 된다. .. 건강은 삶에 대한 지혜와 분리될 수 없다.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은 병을 지혜의 결핍으로 정의한다. 동의보감의 의학적 비전인 양생술은 원칙적으로 유불도 삼교회통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수행의 핵심은 비움이다. 무지와 탐착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생술이란 무지로부터의 자유, 곧 내 안에 있는 지혜를 일깨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혜의 핵심은 소통이다. ... 소통하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병이다.
아프고 괴로우면 그때 비로소 세상과 타인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앓는 마음의 병은 놀랍게도 그 반대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해 왜 사람들은 나만 미워할까 등등. 오직 자신만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불행은 안중에도 없다. 그만큼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다. 더 정확히는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역지사지라는 윤리가 사라져버렸다. 대신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겠다는 인정욕망은 하늘을 찌른다.
불행을 위해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생명의 본질은 비극이 아니라 명랑함이다. ... 존재 안에서 생명의 리듬을 찾아내고, 그걸 통해 사회적 표상과 통념을 날려 버리는 능력, 그것이 곧 유머요 명랑함이다.
연애와 성욕으로 이루어진 홈 파인 회로를 벗어나려면 혹은 가족이 타자들의 공동체가 되려면, 무엇보다 우정과 신의라는 가치의 복원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우정은 윤리적 덕목을 넘어 정치적 명제에 해당한다.
마을은 공동체의 최소단위다. 마을을 움직이는 동력은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다. 자치와 자율이다. 전자가 경제적 자립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윤리적 주권에 대한 것이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길, 가족주의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이것뿐이다. 121
잠을 잘 자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집중력이 생기려면 청심을 유지해야 한다. 부질없는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은 말한다. 심이 고요하면 신명과 통하여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밖을 보지 않아도 하늘의 도를 알게 된다. 그때 비로소 존재의 무게중심을 오롯이 걸게 된다. 마음을 비운 채 온몸으로 터득하는 것, 그것이 공부이자 곧 쿵푸다. 136
언어는 자신과의 소통이자 타자와의 능동적 교감행위이다. 이 소통과 교감의 욕망이 서사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서사는 그 자체로 집합적이다. 여기서는 다다익선의 법칙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차이가 더 핵심이다. 타자들의 시끌벅적한 향연, 그것이 곧 서사적 네트워크요 길이다. 따라서 이 길 위에선 늘 유머가 생성된다. 유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기존의 통념과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역설 혹은 아이러니다. 이 전복적 여정 위에서 또 다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고로, 서사와 유머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최고의 다리다. 169
평생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고 섹스와 번식 이외에 어떤 삶의 기쁨도 누릴 수 없었던 노예의 삶이 그토록 그립단 말인가? 또 사랑과 연애만 잘 되면 생로병사의 근원적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삶을 규정하는 그 같은 전제를 바꾸지 않고서 좋은 팔자란 결단코 불가능하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결핍 아니면 공허다. 상처뿐인 영광 혹은 팔자.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