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먼저 이 리뷰는 전적으로 오독에 의해 쓰여진 것임을 밝힙니다. 번역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원서 자체의 난해함이 책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저 개인의 독해 능력이 부족한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소설은 서사적 양식을 띄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초반부 단어들의 나열은 읽는 속도를 저해합니다. 게다가 사건이라는 것이 발생하지 않는 곤혹스러움으로 책을 계속 읽어나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을 읽어나간 것은 이 책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터키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점차로 로드무비 형식의 사건 전개가 이뤄짐으로써 어느 정도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기도 하고요.

터키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식은 소설을 읽어나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충돌이라기 보다는 서구 현대화의 물결이 가져다 주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굳이 터키가 아니라 최근 개방되어진 동구유럽이나, 심지어 몇십년 전의 우리나라를 가져다 놓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식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과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책의 주인공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읽고 자신의 모든 인생이 뒤바뀌는 체험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주인공 아버지의 친구이며, 직장 동료로서, 자신의 집 바로 맞은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저씨입니다. 아버지와 이 아저씨는 철도청에서 근무한 사람들로서,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철도산업보다는 자동차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게 됩니다. 이러한 발전은 소설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주인공의 버스 여행에서 드러납니다. 책을 읽고나서 그 책과 연관이 있었던 한 남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모두 버스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시 <새로운 인생>이라는 사탕을 만든 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변화된 버스와 휴게실을 통해 사회의 변동을 보여줍니다. 철도와 버스는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전통과 외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외래란 미국을 의미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은 자동차 산업을 근간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달리기 위한 도로와 석유의 필요성, 그리고 달리면서 먹어야 하는 휴게실과 패스트푸드 등, 그들의 생활 전반이 모두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요? 따라서 터키의 철도산업이 쇠약해지고 자동차 산업이 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단순한 산업이나 교통수단의 교체가 아니라, 삶의 양식이 미국화 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급변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이 문제를 언제 어느때고 마주칠 수 있는 교통사고로 표현하는듯 합니다. 삶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끝내버리는 우연한 사고의 가능성. 문명화되고 발전한다는 세상은 사고의 가능성 또한 키워가는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얼핏 인간적인 냄새가 사라져버리고 초호화스러운 휴게실을 통해 현대화가 결코 따뜻한 변화는 아니라는 듯이 말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또한 소설의 종반부에 사탕을 만든 아저씨를 찾아 떠나는 것은 그 사탕껍찔 속에 그려진 전통에 대한 향수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현재의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힘들듯 합니다. 얼핏 주인공이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통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듯 보여지던 이야기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인물의 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과거를 지키고자 하는 집단에 동화되어지는 듯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은 이 모든 과거로의 벽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되풀이해서 육필로 옮겨쓴느, 그가 찾고자 했던 바로 그 인물을 제거함으로써 통과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사이의 어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관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알고보면 주인공이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책이 가져온 변화가 주된 동력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한 눈에 반한 사랑하는 사람의 음모이기도 합니다. 어쨋든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도, 사탕도 그 비밀을 밝혀보니 모두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과거의 짜집기였던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과거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은 아니였습니다. 그것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는 정말 새로운 인생을 터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이 가장 단순한 일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현명하게 파악하며, 거리에 비추는...(334쪽)

개인적으로 이 책의 주제는 바로 위의 글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로운 무엇은 무엇 그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새로워져서 일겁니다. 주변의 일상을 은혜로 바라보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자신의 모든 여행의 출발점이 사랑이었으며, 자신의 변화 또한 이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누구누구를 사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작고 단순한 것들을 그저 찬찬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정은 싹틀 수 있음을 그의 버스여행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이죠.

세상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볼 때 인생은 새로워질테지요. 그냥 이렇게 제 마음대로 해석해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살이 2005-01-21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가 되는 말이군요.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각자의 해석 또한 분명 중요하지만 그래도 정답 아닌 정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읽기는 정답에서 한참 벗어나지 않았나 하는 자문을 해보다, 님의 리뷰를 읽고 그 답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가끔이라도 들리는 길이 즐거운 나들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저도 님의 서재에서 신선한 생각들을 많이 얻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