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탄성이 나온다. 시골이나 도시나 내리는 눈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린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그것을 대하는 마음은 바뀌기 시작한다.

 

도시는 쌓이는 눈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연의 시간대로 녹아내리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도시의 시간은 빠름이 장기다. 자연현상마저도 이 빠름에 휘둘린다. 쌓인 눈을 빨리 치우지 않으면 사방에서 비명이다. 그런데 시골이라고 다를까. 시간을 거슬러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키우다 보니 눈이 많이 내리면 노심초사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질까 계속 눈을 쓸어내려야만 한다.

 

물론 이렇게 시간을 재촉하는 행위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풍요-겨울철에도 푸르른 녹색채소를 먹는 일 따위 말이다-는 누리지 못할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얻는 대신 우린 자연스러운 풍광이 주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눈마저 짐이 된 것이다. 얼어붙은 땅 위에서 겨울 작물을 따뜻하게 보온해주는 눈의 역할은 쌓인 눈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쓸모를 따질 때에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눈 그자체가 주는 마음의 평온 또한 이익을 따지는 계산기 속에서 눈씻고 찾아봐도 차지할 공간이 없다.

 

흔히들 나이가 드니 눈이 주는 즐거움 대신 걱정이 쌓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걱정의 근원은 나이가 아니라 바로 이해타산에 젖어든 우리의 습성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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