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를 찍었던 크리스터퍼 놀란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영화를 봤다. 하지만 대 실망이다. 아주 평범한 블로버스터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전작이 주던 감동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껏 준비한 것이 소설 <바람의 화원>같은 반전과 풍뎅이를 닮은 더 배트라는 전투기 뿐이었다.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를 안겨주며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여과없이 드러내보였던 조커라는 캐릭터를 대신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는 악당을 쳐부수고 말겠다는 영웅과 아버지의 뜻을 받들겠다는 악당,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악당2라는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들의 치고받기다. 조커같은 입체적인 캐릭터는 없다. 이것이 밋밋해서인지 감독은 희망의 두 가지 성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건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이지 않는가.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나온 절망과 희망을 대하는 두가지 태도라고나 할까. 희망은 절망의 친구이기도 하고, 절망의 그물을 뚫고 나오는 꽃이기도 하다는.

또한 악당이 말하는 혁명이라는 것도 너무 유치하다. 상위 1%는 무조건 악이고, 그렇기에 그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은 무조건 처분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즉석 재판으로 말이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곳에서 혼돈이 어떻게 발생하고,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그저 분노의 발산만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분노는 주인공들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다. 그리고 분노의 격돌로 도시가 파괴되는 모습만이 영화가 돈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 뭐 이런 볼거리라도 있어야지...

새로운 배트맨의 탄생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은 놀란 감독의 배트맨은 끝났을지 모르나 이어지는 속편은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같다. 하기야 놀란 감독도 교체될 때가 됐긴 됐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