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한다.
영화 <토탈 리콜>-23년 만에 리메이크 되어 8월중 개봉한다-중에 한 박사가 주인공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에게 건넨 말이다. 주인공이 평범한 노동자인지 첩보원인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기억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사탕발림'이었다.
가끔씩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보곤 한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지만 지금은 관심을 받게 되는 장면을 만나게 되는 기쁨 때문이다. 또는 예전의 그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거나.
어쨋든 20여년 만에 다시 보게된 <토탈 리콜>에선 위의 대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정체성이란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의 집합체일지 모른다. 과거의 수많은 내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됐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들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는가. 스필버그 감독의 <A.I>에서는 로봇에게 기억을 심어주자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이니 기억이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부터 시작해 재패니메이션 <공각기동대> 등등 수많은 SF영화 속에선 이렇게 기억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그 기억이 조작된 것이라면 진짜 나란 누구일까. 이런 고민은 공상이나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면 우리의 기억이란 것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일어난 사건은 똑같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마치 일본영화 <라쇼몬>처럼 말이다. 즉 기억의 조작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진화한 방식이기도 하다. 기억은 정확한 재생이 아니라 특정 정보를 얻고자 할 때 제공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형되어 저장된 것이 바로 우리의 기억인 것이다. 어렸을 적의 소중한 추억 중 실제로 일어난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남에게서 들었거나 영화, TV,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한 것을 섞어서 자신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추억을 스스로 조작하는 것은 현재와 관련이 있다. 자신의 어떤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자신임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인 것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영화 <토탈 리콜>에선 그렇게 말한 박사가 죽게 된다. 주인공을 속이려한 긴장 탓에 땀방울을 흘렸기 때문이다.
어쨋든 기억이란 정확한 재생이 아니라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매트릭스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가상공간 속에서 살아가다 현실과 맞닿은 곳에서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영화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가 선택한 알약에 따라 다른 세상이 펼쳐지듯 우리에게 나타난다. 즉 우리는 선택이라는 행동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