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일 먼저 우리는 누구나 다 그런 꿈을 꿀 것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적한 시골에서 팔베개하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나물에 밥 비벼먹는 한가로운 삶 말이다. 맑은 물, 맑은 공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도시의 삶 속에서도 누릴 수 있다면 굳이 시골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은 한가로운 목가적 삶 보다는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많이 갖게 되기를 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돈을 쥐고 있어야 만족의 크기도 커진다는 것을,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야지만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데 누가 높은 자리를 바라지 않겠으며, 돈이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모든 물건, 욕망을 충족시켜주는데 누가 많은 벌이를 바라지 않겠는가?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오르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경쟁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인이 평등하길 원한다고, 돈벌이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세상이길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해일지 모른다. 영화 속이나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부자들의 삶-무지하게 큰 집에, 멋진 자동차, 아름다운 별장 등등-을 지켜본 사람들의 욕망의 크기는 이미 그 부자들보다 커져 있다. 역사 속의 인물을 비롯해 현재의 권력자들이 법을 무시하고도 무사태평하며, 다툼 속에서 항상 우위를 지키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맨 꼭대기에 서고 싶어한다. 어떤 이들에겐 평등보다는 차별이 더 나은 세상일 수 있는 것이다. 차별의 꿀 맛을 느낄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말이다.

하지만 점차로 사람들은 알아채고 있다. 차별의 혜택이 누구나 노력을 하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물려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그 달콤한 사탕은 한정되어져 있고, 지금 개천에서 뛰놀고 있는 나와 우리의 아이들은 절대 용이 되어 그 사탕이라는 여의주를 입에 물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이런 불가능성 때문에만 삶의 태도를 바꾸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아직도 누군가는 '그래도 나는 꼭 가능하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 그럼 눈을 잠깐 돌려볼까? 그렇게 경쟁적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잠깐만 생각해보자. 맞벌이 하는 이유는 아이들 교육 때문이다.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더 좋은 교육인가? 학교성적이 좋아지는 교육. 아이를 1, 2등 만들기 위해서 부모는 아이 얼굴을 평생 얼마나 볼 수 있는가? 돈을 벌면 마음대로 레저나 여행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다고? 여행이나 레저는 맑은 공기나 물을 찾아서 모험, 스릴을 즐기는 것인데 우리가 경쟁으로 이루어진 도시적 삶을 버리고 생태적 삶을 살았다면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이 바로 그 맑고 상쾌한 물과 공기롤 이루어져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살림살이를 위해서는 돈벌이,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진정 건강하게 먹고 사는 일(경세제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먹고 무엇인가 해보려 하면 그 마음을 마구 쥐어잡아 흔들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지금 이렇지만 자식은 일류대를 보내 일류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냐? 매일 학원도 보내야 하고, 과외도 시켜야 한다. 만일 나중에 자식들이 왜 어렸을 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냐고 원망할 때 뭐라고 변명할 것이냐' 등등. 옆집 아줌마(아저씨)의 염려섞인 목소리에 자뭇 겁을 먹게 된다. 더군다나 옆집에 성공한 아저씨(아줌마)가 살고 있다면 또 어떻겠는가? '봐라! 너도 공부 잘하면 저렇게 살 수 있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살림살이를 살겠다고 다짐했다고도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마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죄수와 닮아 있다. 경쟁이라는 구도를 공생과 협동이라는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계속 그 경쟁의 구도 속에 알맞은 생활방침을 그대로 고수하게 되면, 막상 공생의 생활을 모색하던 사람들도 혹 경쟁에서 떨어져나가 자신은 낙오자의 삶을 살게 되고, 상대방은 달콤한 사탕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시기와 질투, 의혹에 사로잡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말로 이렇게는 못살겠다' 라거나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또는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 라는 생각을 가져봤다면, 이제 예전의 삶의 태도를 변경하겠다는 그 의지를 강하게 가져야만 한다고밖엔 말할 수 없다. '나부터'하지 않으면 끝끝내 그 유혹에 빠져 절대로 그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부터' 의 어려움.

사람들은 진보를 말하고 그것이 좋은 것인냥 하지만 우리의 몸은 여전히 보수의 그림자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못함을 절실히 느끼며 '언제부터' 과연 '나부터' 의 발걸음을 내디딜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하다. 그러나 언젠가 내디딜 그 첫 발이 분명 참다운 살림살이일 것임을 확신하며 그 첫발을 내딛기 위한 의지를 오늘도 또 한번 불살러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oninara 2004-11-1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옆집 아줌마가 안되려고 하지만..살다보면 그중에 하나가 될수밖에 없네요..

저도 재미있게 읽은책인데..추천하고 갑니다.


하루살이 2004-11-19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한 배를 타고 가는데 나만 떨어져 나와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간다는 건 어찌보면 무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이타닉과 같은 큰 배에서 안주하며 조각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건네겠죠. 진정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자신이 타고 가는 바로 그 배가 빙산에 부딪힐 것은 알지도 못한채 말이죠. 아, 제발 타이타닉의 안락함에서 벗어날 용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