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
스티븐 비진체이 지음, 윤희기 옮김 / 해냄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글쎄... 학창시절 소위 빨간책이라 불렸던 음란서적들.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흥분에 들떠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게 했던 그 끈적끈적한 글들.

<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은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걸 읽은 나는 빨간 소설이 떠올랐다. 두 책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우스갯소리만큼이나 이 잘 쓰여진 책과 음란 서적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 것인가?

작가는 전쟁으로 인해 어렸을적 평탄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전쟁 전엔 수사들에 의해 경건한 삶을 살았다면 전쟁 와중엔 미군 캠프에 기생하면서 헝가리 여인과 미군과의 뚜쟁이 역할을 했던 어린아이.

종교적 배경하에서 성장하면서 내 가슴에 박힌 것은 성에 관한 죄의식이었다.(중략) 그렇게 많은 시체를 보았으니 살아 있는 몸뚱어리에 대한 자기 욕망의 억제나 금지를 그냥 쉽게 상실해 버린 것이다. (33쪽)

극과 극의 경험을 한 아이는 성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자기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또 하나의 자아, 즉 죄의식으로 가득찬 자아와 자꾸만 만나게 된다.

우리는 어른들의 종교적 도덕성을 거부했다.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의 본능에 반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실제로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취한 행동인데도 그것 때문에 죄의식에 눌려 살게 만들기 때문이다. (240쪽)

그래서 그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보다 연상의 여인들이다. 나이 어린 여자아이들의 첫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나 서툰 연애로 인한 갈등이 없이 편안하게 육체적 정신적 탐닉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많은 여자들이었던 것이다. 남편이 있는 여자들이라 하더라도 그에게선 종교적 도덕성의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여자에 대한 탐닉은 돈주앙과는 꼭 닮아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여자를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면 또 실제로도 그렇게 능력있는(?) 남자도 아니었으니까. 그에게 있어 사랑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육체적인 것임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하나가 되는 그런것. 편안함을 주는 그 무엇. 그러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또 한 대상만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또한 우리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리 성격과도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이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중략) 궁극적인 공허함이 늘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고, 우리는 늘 불안 속에 흔들린다. 우리는 우리 삶에도 솔직하지 못하다. (241쪽)

그러니 우린 마음속에 움트고 있는 불안과 공허함을 벗어던지고 영원성에 대한 강박관념과 죄의식을 떨쳐내고서 우리의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 감정의 물결이란 작가의 말처럼 연상의 경험많은 사람들이 잘 헤아려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금기라는 가상의 선에 갇혀 살지 말것이며 그 선을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내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영원이 주는 죄의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은 이미 영원하지 않으니, 나의 삶 또한 영원하지 않으니, 나의 감정에 충실하게 즐길지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