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건대 스파이더맨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왜 2편을 봤냐고?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왜 할리우드 영화는 그렇게 유혹적인가? 전편이 실망감을 줬다면 2편 또한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는데 왜...아무래도 광고의 파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1편보다 더 발전되어진 CG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입소문에 솔깃, 마땅히 볼 영화가 없던 차에 그냥 표를 끊는다.

2편은 1편보단 낫다. 그러나 그냥 나을뿐 썩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전철에서의 전투씬 정도가 조금 기억에 남을뿐 쓱쓱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화면에 그냥 정신을 놓을 뿐이다. 가끔 하품을 한다. 몸이 굉장히 피곤했다면 잠을 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묘한 것은 왜 그렇게 이다지도 재미없다고 생각한 영화를 진지하게 생각하는냐는 것이다.

2편에선 영웅들의 내면, 왜 내가 나를 희생하고 대중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나 내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고민등등이 녹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영웅 만세를 외치는 따분한 면이 많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런 영웅주의에 대해 냉소를 퍼붓는데 이상하게도 눈은 흐릿해진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군대시절 유격훈련중 편을 갈라 상대편을 웅덩이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있었는데 이런 훈련들을 마지못해 그리고 우습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저 멍하니 당하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지 못한다. 어느새 난 헐크가 되어 상대편을 하나 둘씩 밀쳐내고 있다. 머리는 가만 있으라고 하는데 몸은 머리를 따르지 않는다.

감정에 휘말려 움직이는 몸뚱아리. 몸은 무엇을 기억하고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복수심이나 오기, 또는 충정의 마음같은 것은 원초적 본능인가 문화적인 배움으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울고 하는 것일까? 왜 난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에 대해 동정의 눈물을 흘릴뻔 했단 말인가? 속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래서 파시즘은 무섭다.(정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일상적 의미에서. 내가 내 감정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이끌려 움직인다는 그 자체가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다. 내가 잠깐 의식을 놓는 순간 감정은 누군가에 의해 조정될 수도 있는 끔찍한 현실을 상상해본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말똥말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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