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누군가가 당신에게 알약을 주며 선택하란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곳,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이곳과 진짜로 진짜로 너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를.

나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곳이 보다 살만한 세상임을 확신할 수 있다면 선택에 대한 갈등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질지 전혀 알 수 없는 암흑에 쌓여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곳이 진정 현재보다 나은 곳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선택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네오마냥 선택되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온다. 현실에 대한 한치의 의혹도 가져보지 않은 사람에겐 선택이란 우스운 상황일 뿐이다. 아마 그들에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가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니. 이렇게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살고 있는데...

자, 난 그래도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다. 갈등이란 그래서 좋다. 무엇인가 다른 것을 행할 기회가 1%라도 있는 상태가 갈등이라는 상활일 수 있다. 알약을 집는다. 삼킨다. 내가 삼킨 알약의 색깔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엄습해 온다. 몸에 전율이 돋는다. 고통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 고통이 끝나면 난 현재라는 발판에 서 있을것인가? 현재를 망각할 것인가?

참, 그 알약은 누가 만들어서 준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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